하지만 거기 앉아 있는 동안 난 거의 사람을 미치게 만들 만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누군가가 벽에다가 <이런 씹할>이라고 낙서를 해놓은 것이다. 피비나 다른 아이들이 이런 걸 보게 된다고 생각만 해도 정말 사람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이들은 이 말의 뜻을 궁금해할 것이다. 그러다 문득 어떤 나쁜 놈이 아이들에게 잘못된 뜻을 가르쳐주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중략> 그런 곳에다가 이런 말을 써놓은 놈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가 않았다. <<호밀밭의 파수꾼>>  
   

놀이터에 두돌 딸아이를 데리고 갈 때마다 놀이터에는 지렁이처럼 꼬부라지는 글씨로 온갖 욕설과
"철수는 어젯밤 열두시에 야동을 봤다.'" 같은 웃기지도 않은 문장들이 저마다 갈겨져 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 대목이 떠올라 기분이 묘해진다. 읽을 때는 웃고 말았는데
정작 그런 상황을 일상적으로 목도하게 되니 나도 콜필드처럼 그걸 쓴 아이를 찾아 죽이고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강박적으로 다 지우고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왜냐하면 어느 날 내 딸이 분명 물을 것이기에.
"엄마, 야동이 모에요?" 이건 차라리 낫다. "엄마, XX(상상에 맡김)가 모에요?"
아무 의미도 없는 욕설의 정의를 궁금해 하는 네돌 정도의 딸아이에게 적절한 설명을 찾아주지 못해, 혹은 정말
콜필드의 우려처럼 어떤 나쁜 사람이 아주 잘못된 뜻을 가르쳐 주어(그것이 긍정적인 의미라거나)
다음날 부터 그 욕설을 하고 다닌다면, 그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사실 저 정도까지 연장된 심각한 우려를 매일 하는 것은 아니고,
콜필드가 여동생 피비를 위해 저 저속한 낙서들을 강박적으로 지우고 다녔던 풍경이 때때로 떠올라
낙서를 더욱더 유념해 보게 된다는 정도. 그리고 때로는 오히려 저 낙서를 언젠가는 읽게 될 딸아이보담은,
저런 낙서를 숨어서 하고 있었을 녀석들 생각에 대체 무신 의도에서 무신 욕구로 저런 낙서를 하게 된 것인지
궁금도 하고, 벌써 그런 숨어서 하는 약간의 불량스런 행동에 대한 공명심에 대한 기억을 깡그리 놓쳐버린,
나의 단단해진 감수성이 서글퍼지기도 하고. 그렇단 얘기. 

그래도 밤12시에 야동본 얘기를 놀이터 미끄럼틀에 신고하는 건 아니잖아.! 중요한 건 안웃겨!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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