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한 가정 공동체로 묶여 서로의 가장 내밀한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애증의 관계는 행복의 원천이기도 하고 불행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우리 가정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나는 전부 다 드러내어 말할 수는 없다.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가슴이 미어질 만큼 슬픈 시간들은 더 많았다. 나와 아이들의 시간도 그럴지 모른다. 마냥 행복하기만 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운명의 힘 앞에서, 인간의 한계 안에서.




찬탄이 나올 만한 명작이었다. 다 읽고 나니 이 특수한 집안의 이야기가 왜 이리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 알았다. 유진 오닐의 가족사를 고스란히 반영한 자전적 이야기는 그 누구의 가족사와도 만나는 부분이 있다. 열심히 살아보려 했던 빛나던 부모가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이야기, 그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보려 했지만 끝내 넘어지는 성인 자식들의 이야기는 현실 그 자체다. 현실은 언제나 이상보다 먼저 도착해 있다. 사랑하지만 상대의 기대나 소망을 충족시켜 줄 수 없음은 실존의 치트키다. 이러한 일들이 더 빈번히 노골적으로 일어나는 역학이 가족 관계다. 


극 중 어머니 메리는 유랑극단 배우인 남편 제임스 타이론을 따라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다 거기에서 아이들을 낳는다. 한 명은 어려서 죽고 다른 한 명은 폐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 자신 아이 출산 후 처방받게 된 모르핀으로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된다. 여름 별장에 모인 네 가족은 저마다의 고통을 떠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서로 사랑하지만 미워하고, 기대했다 원망한다. 실제 유진 오닐의 어머니는 유진을 호텔에서 낳았다고 한다. 몰락한 배우 아버지 타이론은 어린 시절의 가난에 사무쳐 미친듯이 땅을 사모으고 가족에게 쓰는 현금은 아까워한다. 언제나 가성비를 따지는 선택을 하고 그게 가족을 위한 거라 둘러댄다. 심지어 어린 아들의 폐병 요양소도 가장 싼 곳을 찾아 헤맨다. 그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게 비극이다.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pp.72


이 가족의 부유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막내 아들 에드먼드가 이야기하듯 '바다 밑을 걷고 있는 기분'을 전염시킨다. 우리 모두가 여기, 현재 정주하는 삶이라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모두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타이론 가족들처럼 어느 누구나 '안개 인간'으로 언젠가는 흩어져버릴 수밖에 없는 현재를 살고 있다.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닌 이 슬픈 가족사를 재현한 희곡은 유진 오닐 사후 25년 후에 공개되는 것으로 약속을 맺었으나 그 약속은 깨지고 만다. 유진 오닐이 가장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던 아들의 자살로 더는 상처를 줄 사람이 남아 있지 않게 되어서. 가장 슬픈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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