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은 상실의 누적이다. 매일이 평온하고 모두가 영원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없다.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이제 잘 기억하려 한다. 이 만남이 언젠가 결국 끝나고 만다는 사실을 이젠 상기한다. 나는 애도의 주체가 되겠지만, 그 대상이 되는 날도 결국 맞아야 한다. 깊이 생각하다 보면 두렵고 서럽다. 답이 없는 문제다. 명쾌한 해결책도 없다. 자꾸 잊으려 하지만. 하루하루가 결국 그런 날들을 향해 가는 그 자체를 막을 도리가 없다. 어린 사람들의 해맑음을 되찾을 수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상실과 발견>의 저자 캐스린 슐츠의 책은 사랑하고 존경했던 아버지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이 책이 다른 점은 그 상실과 대구를 이루어 평생의 반려자를 발견하는 일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잃어가며 사랑을 시작하는 이 아이러니라니. 그러나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을까. 레이먼드 카버 또한 그랬다고 한다. 아버지가 죽어가는 바로 그 병원에서 아이의 탄생을 맞았다. 저자가 발견의 장을 상실의 장 뒤에 둔 것은 섣불리 사라짐에 관련한 절망으로 마침표를 맺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삶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것들이 찰나와 같음에도 여전히 빛나는 유의미한 무언가가 있다는 그 희망을 꿈꾸는 어려운 길에 대해 나는 여전히 매혹을 느낀다.
사랑이 우리에게 처음 제기하는 문제는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이다. 한데 사랑이 꾸준히 제기하는 문제는, 삶이 꾸준히 제기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우리가 결국 그것을 잃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다루며 살 것인가이다.
-캐스린 슐츠 <상실과 발견>
이 이야기 또한 필멸자로서의 인간의 근원적 유한함에 대하여 다룬다. 다만 더 과학적으로. 저자 마리라 마르티논 토레스는 의사이자 고인류학자다. 우리 인간 종의 "병력전기학"에 대해 다룬다. 죽음, 늙음, 두려움과 불안, 수면장애, 암, 감염, 사춘기, 음식, 알레르기, 폭력, 죽음의 의식에 대해 과학적인 정보들과 더불어 저자 자신의 성찰과 문학적 식견을 안내자로 동행한다. 흥미롭고 감동적인 책이다.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 한계, 폭력성, 이기심에 대하여 언급하지만 그 한계 속에서 자신의 필멸을 의식하며 집단에 기억을 남기고 기여하는 방향에 대하여 고민하는 본성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다. 이렇게도 나약한데 그렇게 위대해질 수 있는 우리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듣는 순간, 상실을 애도하고 사랑을 발견하는 길을 찾아 떠나는 <상실과 발견>의 저자와 다시 만나는 느낌이다.
숱한 상실들로 인간들은 불완전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발견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우리 종이 비천해지지 않고 스러지지 않는 이유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