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철학적인 소설가가 있다. 엄청난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작가의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왠지 그 미로에서 헤매는 행위 자체에 중독된다. 꼭 출구로 향하는 지름길을 찾지 못해도 그 혼란, 불안에서 학습되는 것이 있고 그 여운은 읽기 행위를 사소하지 않은 것으로 승화시킨다. 나에게는 카프카와 보르헤스가 유난히 그렇다. 특히 보르헤스에게는, 특별히 그가 천착한 시간, 미로, 거울, 죽음에 대한 난해한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은 언제나 다시 회귀하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것은 누구나 일상의 분주함에서 대부분 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유한한 우리가 이 불합리한 삶, 이 모든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너지를 짜내어 무언가를 향해 노력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질문을 떨쳐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하여 보르헤스는 직설적인 대답 대신 가장 훌륭한 질문과 고민의 시간을 선물한다.

















<죽지 않는 사람>에는 말 그대로 죽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로마 군관 사령관인 '나'는 그 도시에서 그러나 나를 포함한 그 모두를 발견한다. 역사 속 과거의 인물도, 이윽고 과거가 될 나도, 미래가 될 나도 혼재되어 모든 무한한 것이 됨으로써 유한함은 종식되지만 그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일까?


죽음은 인간을 사랑스럽고 애처롭게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환영적인 조건, 즉 그들이 행하는 각각의 행동은 마지막 행동이 될 수 있고 꿈속의 얼굴처럼 희미해져서 지워지지 않을 얼굴은 하나도 없다는 것 때문에 동요한다. 그렇게 죽을 운명의 모든 존재들에게는 모든 것이 회복할 수 없고 불안정한 가치를 지닌다.

-<죽지 않는 사람> 보르헤스


인간을 사랑스럽고 애처롭게 만드는 장치는 놀랍게도 '죽음'이었다. 이 존재가 영원하고 무한 반복된다면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존재를 사랑할 수 있을까? 도발적인 질문이다. 


그는 하나의 운명이 다른 운명보다 더 나을 게 없지만,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품고 다니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데오 이시도로 크루스의 전기> 보르헤스


보르헤스에게 모든 추상적인 삶은 각각의 개별적인 삶으로 구체화되지만 그것은 경쟁할 것도 비교할 거리도 아니다. 다만 개개인이 받아들이고 감내하여야 할 저마다의 몫이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구획으로 이것이 한정되기는 하지만 결국 더 큰 영원으로 합쳐지는 것이다. 그는 개인적 차원의 불멸은 믿지 않지만 우주적 차원의 그것은 믿는다고 한다.


















벨그라노 대학에서의 다섯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강연을 모아놓은 책이다. 시간, 영원, 불교, 죽음, 단테의 신곡 등에 대한 그의 말은 글만큼이나 아름답고 청중, 독자 중심적이다. 현학적이거나 사변적이지 않다. 무수한 예시와 보르헤스 특유의 심오한 통찰이 버무려진 그의 강연은 그가 만들어 낸 그 숱한 철학적 이야기들의 약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의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이해가 쉽다. 


항상 나는 내 운명이 무엇보다도 문학이란 걸 느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게 수많은 나쁜 일과 몇 개의 좋은 일이 일어나리란 걸 예감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 모든 것, 특히 나쁜 일들이 장기적으로 글로 변하리란 것을 알았습니다. 행복은 다른 것으로 변화될 필요가 없으니까요.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보르헤스> 보르헤스


그의 운명에 대한 태도에 숙연해졌다. 나는 내 인생에 수많은 좋은 일 정도가 아니라 좋은 일만이 일어나기만을 바라지 않았나,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지 않았다고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았나.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나쁜 일과 몇 개의 좋은 일이 일어나고 그 나쁜 일들마저 내가 소명의 과정에 있다는 깨달음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들이 뒤섞이지 않고 있는 곳"일 알레프를 볼 때 오늘 나의 미소, 눈물 한 방울은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과거, 미래의 그것들과 섞이지 않겠지만 극히 미소할 것이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고 거기 여전히 남아 떨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보르헤스가 말하는 영원의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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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1 0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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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1 0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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