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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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가까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미래지향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놀라운 책이었다. 일정한 서사도 드라마틱한 반전도 없이 시종일관 몰입하게 만드는 제발트의 이야기는 사실 제사에 이미 이야기의 방향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존 밀턴의 <실낙원>의 선과 악의 불가분성, 콘래드의 "걸어서 성지순례를 떠나기로 결정한 사람들, 패배자들의 투쟁과 깊은 절망의 끔찍함...", 그리고 제목이 된 '토성의 고리'에 대한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의 설명의 인용. "파괴된 결과 남게 된 파편들" 그러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묻어둔 희생자들과 패배자들의 서사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 될 것이다.


어쩌면 제발트 자신일지도 모를 화자는 1992년 여름도 끝나갈 무렵, 거대한 작업을 끝낸 뒤 "공허감에서 벗어나고자" 영국 동부의 써퍽주 도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17세기 노리치 의사인 토머스 브라운이 두개골이 보관된 병원 박물관을 이야기하며 때로 토머스 브라운의 목소리를 빌려 시간과 삶의 덧없음과 비참함을 상기한다. 우리가 소위 역사로 서술하는 것들이 얼마나 취사 선택적인 조작적 시선하에 가공되는지 그 틈새에서 빠져나가는 것들이 얼마나 실재에 가까운지 그 충격적인 왜곡을 담담하게 차분하게 서술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아이러니의 극치다. 


나는 이런 고도에서 우리 자신을 내려다보면 우리가 우리의 목적과 결말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가 끔찍하리만큼 분명해지다는 생각을 한다.-pp.112


코로나 시국에 제발트가 화자가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본 문명의 잔해들을 통해 한 생각들을 일상에서 깨닫고 있다. 이전에 우리가 일상이라고 누렸던 것들의 기조에는 분명 눈부신 문명의 진보가 있었다. 비판 없이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고 소비하고 온갖 쓰레기와 오염 물질과 잔해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붙인 채 먹고 마시고 춤추며 즐겼다. 이것의 끝은 무한하리라고 믿고 아이를 낳고 교육시키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이 모든 것들을 더 많이 누리라고 추동했다. 그러나 인간이 제압할 수 없는 이 작디작은 바이러스의 무한 증식 앞에서 우리들은 우리가 누린 것들의 대가를 고스란히 우리가 믿었던 미래를 저당잡고 낳았던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마는 결과를 낳았다. 아이들은 컴퓨터 화면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교실 안에서는 KF94 마스크를 쓰고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앉고 그것을 어기고 손을 잡는 행위가 마치 이적 행위처럼 간주되는 나날들에서 과연 제대로 된 사랑과 인간 간의 접촉이 주는 따뜻함의 정서를 배워나갈 수 있을까. 


우리의 목적과 결말을 비판적으로 인식한 자는 역사 속에서 죽임 당했다. 1916년 런던에서 반역죄로 처형당한 로저 케이스먼트의 이야기는 비통하다. 그의 반역은 바로 아프리카 식민정책을 비판한 영국의 영사로서의 직무 유기였다. 마땅히 그는 제국주의의 식민정치에 무비판적으로 복종해야 했다. 그러지 않았기에 그는 처형 당했다. 태평청국의 난 또한 그렇다. 제발트는 이 모든 것에 결국 인간의 문명을 가장한 무비판적인 탐욕의 견인이 있었음을 간파한다. 삼림이 파괴되고 심지어 인간이 인간을 집단으로 살육하고 우리는 눈부신 진보와 문명을 이루어냈다고 우리의 오늘이 영원한 내일을 낳을 것처럼 서로를 기만하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하지만.


우리가 고안해낸 기계들은 우리의 신체나 우리의 동경처럼 서서히 작열하는 심장을 갖고 있다. 인간 문명 전체는 애당초부터 매시간 더 강렬해지는 불꽃일 뿐이었으며, 이 불꽃이 어느정도까지 더 강렬해질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서서히 사그라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장은 우리의 도시들이 빛을 발하고, 아직은 불이 번져간다.

-pp.199


제발트의 예언은 서글프게도 적중했다. 이제 우리의 불꽃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다.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달릴 수 없다. 우리의 유한함과 우리의 생존이 빚을 지고 있는 지구가 얼마나 황폐화되었는지를 직시할 수 있는 최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 이후에는 분명 서서히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제발트는 절망을 이야기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침잠하지 않는다. 그 위대함은 그의 대리 화자처럼 보이는 토머스 브라운의 이야기처럼  "침잠해 있는 세계의 건물 속에서 드문드문 나타나는 빛의 조각들"을 응시하는 신중함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것들에 대한 심원한 지도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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