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코로나를 낙관하지 않는다. 단기간에 깔끔하게 끝나고 모두 한꺼번에 마스크를 벗어버릴 날이 조만간 올 거라고 개인적으로 믿지 않는다. 국경을 예전처럼 자유롭게 넘나들고 지구촌 일일 생활권이 회복될 거라 쉽게 낙관할 수도 없다. 특히 유럽의 상흔은 더 오래 남을 거라 생각한다. 이민자와 여행자에 대한 관용과 너그러움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방역을 위하여 개인을 통제하는 것이 당연시될 때 그것은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성도 직시해야 하는 일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서로를 믿지 않고는 인간적인 신뢰에 기대지 않고는 도저히 방역을 달성할 수 없다. 


이것은 지구의 인간에 대한 반격이다,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 야생동물의 포획과 가금류의 집단 사육이 코로나의 단초를 제공했으리라 보는 시선은 그것의 일부일 것이다. 지구의 온난화가 바이러스의 활성화를 도왔다는 것 또한 전부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결국 우리의 존재 자체로 코로나에 기여했다. 그리고 그것을 막고자 쓰고 버리는 일회용 마스크들, 일회용 식품 용기들은 역설적으로 다시 지구 환경 파괴에 일조하고 있다. 그것은 다시 지구의 온도를 올리고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우리는 살기 위해 끊을 수 없다. 그것은 분명 암담한 역설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대지와 마시고 있는 공기와 물을 더럽히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살기 위해 사랑과 접촉과 신뢰를 거부해야 하는 비대면의 관계의 풍토에도 적응해야 한다. 때로는 이것이 인간인가, 이것이 삶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친구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일, 부모님과 식사를 하는 일, 연인과 입맞추는 일이 가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아찔하다. 나의 모든 일상이 최악의 경우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간접적 가해가 될 수 있다. 




















저자 정혜윤은 피렌체의 보카치오가 흑사병으로 부모와 친구를 잃고 쓴 <데카메론>의 열 가지 주제를 가지고 21세기의 코로나 시대의 사랑의 이야기를 쓴다. 디스토피아를 통과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의 감각을 중세에서 근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던 시대의 인문학자의 농염한 사랑의 테마로 재편한다. 그것은 여기에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지엽적이고 구체적인 재해를 조금 더 본질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에서 다시금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욕망하고 생존하느라 짓밟고 간과했던 것들을 비로소 응시할 수 있는 관조의 시간을 선물받는다. 그것은 아프고 사무치는 일이다. 우리가 파괴하고 우리가 떠나보낸 지구의 근원적인 아름다움, 생명들을 다시금 찬찬히 돌아봐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카뮈의 <페스트>,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마거릿 애트우드의 <오릭스와 크레이크>, 어슐러 K. 르 귄의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등 수많은 텍스트들이 정혜윤의 언어를 통과하여 정리되고 팬데믹의 시대의 각주이자 미주가 된다. 우리가 막상 온몸을 담그고 있어 그 어떤 전체적인 조망도 불가능한 현실이 무언가 조금 더 투명하고 명징하게 떠오르는 느낌이 드는 읽기다. 


그녀는 잃어버린 사랑, 회복기의 사랑에 기댄 낙관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그럴 수 있을 때 우리가 꿈꾸는 내일은 디스토피아를 통과하고 유토피아로 상승한다. 믿고 싶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고 친구와 함께 떡볶기를 먹고 노래를 부르는 게 꿈이라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건 내가 누렸던 어제인데 그 어제를 마치 내일처럼 기약해야 하는 건 참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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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2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3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1-02-13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인류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쉽게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이 전대미문의 팬데믹은 과연 얼마나 더 인류와 지구 곁에 머물지 궁금합니다.

blanca 2021-02-14 10:49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은 더 잘 체감하실 것 같아요. 인정하고 나면 순간순간 더 마음이 내려앉아요....그냥 인간의 존재 자체가 지구에 해가 되는 느낌...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단발머리 2021-02-15 1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작년 3월, 4월이 제일 힘들었구요. 차라리 지금은 반 정도 포기한 상황인데 조카 아이를 보면 이제 초등 2가 되는 조카를 생각하면 맘이 그렇게 우울해요. 학교 들어가서 제일 먼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옆에 친구랑 이야기 하지 마‘였구요. 짝궁이 뭔지 몰라요. 거리두기 때문에요 ㅠㅠㅠ
저도 이 책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나온 줄은 알고 있었는데 블랑카님이 읽으셨다니 저도 읽어야겠다는 그 어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염 도시>가 기억나네요. 저 그 책도 블랑카님 소개로 읽게 되었더랬죠^^

blanca 2021-02-19 15:40   좋아요 0 | URL
흑, 제 아이가 그 코로나 1학년입니다. 친구들 얼굴도 잘 몰라요. 요새는 아이들 몸을 서로 터치하는 놀이를 하면 애들이 운다면서요. 저도 어느새 마스큼 안 쓰고 걷던 때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요. <감염 도시> 다시 읽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