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경이로운 작품이었다. 자신의 죽음과 실존을 직시하는 게 인간으로서 얼마나 두렵고 거대한 과업인지 적나라하다. 사형 집행을 앞둔 뫼르소가 참회와 사후세계를 설득하려는 사제 앞에서 거기에 반기를 드는 모습이 절정이다. 


나는 유신론자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약하고 죽음을 직시할 수 없기에 유신론자다. 종교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악행과 이기심이 합리화되는지를 경험하고 보고 들었다. 최근 정인이 사건만 해도 그렇다. 소위 종교의 지도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이 행한 악행과 그것을 알고도 모르고도 방조했던 또 다른 그들의 행태에 분노한다. 신앙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최선의 것이 되자고 기도하는 것을 합리화는게 아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자신들과 피를 나눈 가족 안에서만 유효하고 그들의 부귀영화를 이 생에서 이루기를 기도하며 타인의 삶, 타인의 고통에 눈 감고 때로 온갖 편법, 폭력을 저지르는 행동도 그저 그 종교 안에서 다 사면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자인한 것이다. 자신의 모든 행동을 합리화하는 도구로써 신을 동원하는 일은 악행 중의 악행이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지금까지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보던 캐릭터의 전형성과 어긋난다. 정의롭지도 않고 매력적이지도 않고 감정 과잉도 아니다. 오히려 양로원에서 죽은 어머니의 나이도 모르고 장례식에서 돌아와서는 푹 잘 수 있음에 행복을 느끼고 다음날 바로 데이트를 나가는 등 어떻게 보면 소시오패스처럼 보일 지경이다. 심지어 이웃의 치정 사건에 기꺼이 연루되어 대신 복수를 해준다. 그는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시로 삶의 자잘한 일상들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표현한다. 독자들은 그를 때로 불가해하다고 황당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는 우리 내면의 가장 꺼내어 놓기 힘든 부분을 직설적으로 대변한다. 사회에서 기대되는 그 모든 어떤 전형들에 철저하게 위배되는 모습.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지만 생의 쾌락

에는 기꺼이 열려 있는 모습. 


거기에는 카뮈가 투영되어 있다. 
















스물두 살에 쓰인 카뮈의 에세이들은 그가 한참 지난 뒤에 다시 출판하며 붙인 서문에서 그는 이 글들이 서툴지만 여기에 다른 어떤 책들보다 진실한 사랑이 담겨 있다고 얘기한다. 자신의 원천인 "가난과 빛의 세계"가 이 <안과 겉> 속에 있다고 고백한다. 


인생이라는 꿈 속에, 여기 한 사나이가 있어, 죽음의 땅 위에서 자신의 진리를 발견했다가 다시 잃고 나서 전쟁과 아우성, 정의와 사랑의 광란, 그리고 또 고통을 거쳐, 죽음마저 행복한 침묵이 되는 이 평온한 고향으로 마친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 <안과 겉> 서문


여기에 있는 <아이러니>는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바라본 늙음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담겨 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이 떨어진 그 거리를 뚫고 노년의 고독과 소외, 권태에 대하여 마치 단편소설처럼 노인들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그들 자체가 되어 이미 그 초라하고 외로운 노년과 죽음을 경험한 듯하다. 자신의 역할, 자리,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고독하게 구석에서 소외되는 그들의 이야기를 스물두 살의 청년이 들려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아랍의 까페에서 카뮈가 회상하는 어머니와의 가난한 유년,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 <긍정과 부정의 사이>는 노벨 문학상을 받는 위대한 소설가로 아들을 키워냈다는 것을 예감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은 빈민가의 한 어머니의 고단한 삶에 대한 아름답고 슬픈 추도사다. 아픈 어머니와 함께 누워 세상에서 격리된 두 사람만의 그 엄청난 고독, 고통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서글프다.


어떤 사나이가 고통을 당하며 거듭되는 불행을 겪는다. 그는 그 불행들을 참고 자기의 운명 속에 자리를 잡는다.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에 모든 것이 허망해진다.

-알베르 카뮈 <긍정과 부정의 사이>

그 사나이는 자살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 모든 것을 이룬 나이에도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단순함과 투명함만을 받아들이려는 의기도 때로 꺾인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지점을 안다.


표제작인 <안과 겉>에서 카뮈는 우리가 가지고 갈 카뮈의 이야기를 응축하여 표현한다. "인생은 짧은 것이기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큰 용기란 빛을 향하여서도 죽음을 향하여서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직시하는 일이다."라고. 


그것은 여전히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노력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빛과 죽음을 동시에 바라보는 것이 결국 인간이 평생에 걸쳐 달성해야 하는 과업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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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7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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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8 09: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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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7 1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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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8 0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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