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는 파리의 1871년 코뮌으로부터 연대기적으로 출발한다. 빅토르 위고, 마네, 모네, 르누아르, 로뎅, 에펠(맞다, 그 에펠탑의), 리츠(역시, 리츠호텔의 리츠), 에밀 졸라, 공쿠르 형제, 드뷔시 등 오늘날도 여전히 빛나는 작가들, 화가들, 명사들 개개의 삶이 태피스트리처럼 정치, 사회적 격변과 얽혀 있다. 저자 메리 매콜리프는 남아 있는 기록 틈새에 자신의 추정이나 상상을 끼워넣지 않으면서 그 공백을 허하게 만들지 않는 재주가 있다. 나열되어 있는 자료들은 건조하거나 서걱거리지 않으면서 당대의 가난하고 다사다난했지만 예술사적 역사적 족적을 남긴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르누아르와 로뎅이 자전거 타기를 함께 배우는 장면, 거의 대명사처럼 굳어버린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고 서로의 결핍을 다독이고 메워주는 정경은 우리가 흔히 연상하듯 위대한 예술은 괴팍하고 고독한 과정이 아니라 사람들간의 지지, 우정, 격려로 가능했음을 알게 한다. 불가능이란 없어 보이는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불꽃 같은 삶도 흥미롭다. 열기구를 타고 올라 샴페인을 마시고 그림을 그리고 심지어 '햄릿'을 연기하는 여배우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이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하면 경탄스럽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에펠탑이 완성되고 자유의 여신상을 미국으로 싣고 가고  반유대주의로 억울하게 누명을 썼던 드레퓌스의 무죄가 드디어 밝혀지던 날, 이 아름다운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된다. 

















마네의 동생의 아내이자 그녀 자신이 화가이기도 했던 베르트 모리조 모녀를 끝까지 의리 있게 보살핀 친구들 드가, 르누아르, 모네의 모습도 감동적이다. 그들은 가난했고 인정받지 못하는 이단아들이었지만 결국 함께 스스로들을 하나의 역사적 존재로 만들어냈다. 때로 오해하고 반목하고 다퉈도 아픈 친구를 간병하고 서로의 그림을 응원하고 그 그림의 자리를 추천하고 남은 가족을 보살피며 끝까지 어려운 예술의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는 위대한 예술 작품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의 하나였다. 벨 에포크는 유달리 예술에 호의적이거나 경제적인 호황이었던 분위기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때로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어도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꿈을 허무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믿어주며 사람 간의 교감과 우정, 사랑을 믿었던 그 순수한 무모함이 남아 있던 시대였기 때문이 아닐까. 설사 그것이 망상이고 때로 실패했을지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등을 두드려주는 친구가 있었던 모네 또한 결국 눈부신 <수련> 연작을 완성하고 그 친구의 품에서 죽는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2020년에서 1890년 대로 시간여행을 가는 듯한 읽기였다. 죽고 나서 남을 것들을 의식하며 살았던 그들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들의 최후와 그들이 남기고 간 것들을 이미 스포일러로 간직하고 다시 그들의 삶을 함께 하는 경험 또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외롭고 어려운 시간을 채워준 모네와 마네, 졸라, 드뷔시와 친구들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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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0-05-13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고 임팩트 있는 후기에요. 이 책의 군더더기를 다 떨어내고 정확히 essential 부분을 정리하신 듯, 이 글이면 책 한 권이 다 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