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소설가의 사물 - 사소한 물건으로 그려보는 인생 지도
조경란 지음 / 마음산책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 저녁에 가족의 안부에 관련된 안좋은 소식을 들었다. 순간 멍해졌고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아연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처럼 커피를 마셨다. 그 순간 만큼은 찡하고 쌉싸레하지만 결국 남길 그 진한 여운으로 마음이 가라 앉았다. 일상은 다시 예전처럼 단단하고 안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능케 하는 순간, 비록 그것이 순간의 착각일지라도 감사했다. 


책상 앞에 앉기 전에 예가체프를 천천히 간다. 커피 향이 퍼지면 마음은 누그러져버리면서 뭐 이 정도도 괜찮잖아? 싶다. 삶의 바닥에는 수많은 단층선이 있고 그것 중 언제 하나가 일상을 뒤흔들게 될지 알 수 없다.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순간, 커피를 내리는 순간, 좋아하는 책 한 페이지를 읽는 순간, 괜찮은 순간들이 모이면 정말 괜찮은 하루가 될지 모른다.

마침 지금의 내 마음을 읽은 것 같은 이런 문장과 함께 위안을 받았다. 이 대목은 소설가의 사물 중 '핸드밀'에 나온 것. 그녀처럼 커피 원두를 직접 볶거나 핸드 드립을 하여 마침내 마시게 되는 커피는 아닐지라도 이제 나를 전혀 처음 보는 혹은 스쳐 갈 낯선 이로 치부하지 않는 점원의 다감한 눈빛과 함께 받아 드는 아메리카노는 나를 지금 흔드는 삶의 단층선의 진동을 조금 떨어져 느낄 수 있게 언젠가는 그것이 다시 단단하게 나를 지지해 줄 것임을 기대하게 한다.


소설가의 사물은 달걀, 레몬, 연필, 뒤집개, 타자기, 깡통따개 등속이다. 그녀의 삶과 그 안의 사물과 그녀가 읽고 쓰는 일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이야기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여행하며 간절했던 손톱깎이는 마침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인도 남자가 손톱깎이를 자신에게 주는 대신 주겠다고 얘기하는 영원히 여행할 수 있는 차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다와다 요코의 <용의자의 야간열차>. 주섬주섬 펜을 꺼내 이 부분을 메모한다. 언젠가는 이 영원히 여행하는 차표와 손톱깎이의 교환의 등가여부를 판단할 수 있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사물은 작가의 일화와 작가의 독서와 작가의 쓰기와 어긋남이 없이 만나 어느덧  그 사물과 그 책을 찾게 한다. 뜬금없이 텀블러를 꺼내고 손톱깎이를 꺼내어 별로 길지 않은 손톱이나마 자르기 시작하는 것. 오후에 커피 한 잔을 더 마시는 것은 저녁잠을 망치게 되는 일이라 좀 망설여지지만.


시간은 앞으로 간다. 우리는 분명히 지금보다 늙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을 명백히 살아내야 한다. 나는 나답게 당신은 당신답게.


사물에 대한 이야기인데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 사물을 쓰고 경험하고 기억하고 기록하고 망각하는 시간 자체가 삶일 테니 당연한 결론일 것같다. 나답게 잘 버티어내야지. 명백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