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을 처음 언제 읽었는 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중학교 때였을 수도 있고 고등학교 때인 것 같기도 하고 대학교 때 한번 더 읽은 것도 같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읽지 않았고 큰 감동도 없었다는 점이다. 주인공 싱클레어와 비슷한 나이대였음에도 그에게 크게 공감할 수 없었다. 죽기 전에 헤세의 <데미안>을 자신의 관 속에 함께 넣어달라고 말했던 어느 소녀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다.


중년이 되어 대표적인 성장소설이라는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참 이상하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헤세의 문장들이 하나 하나 가슴에 와 박힌다. 아직 제대로 삶을 다 살아낸 것도 아닌데 이제는 싱클레어가 왜 아벨이 아닌 그를 죽인 카인의 표적을 지니고 있었는지 이해가 간다. 왜 삶을 사는 것이 외부 세계가 부여한 기준에 맞춰 사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자기 자신에게 걸어가는 길의 도정이 되어야 하는지도... 사람과 삶이 얼마나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것인지 받아들여야 그 모든 어리석은 단정과 편견과 편협함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도 가슴으로 와닿는다. 
















<데미안>을 비단 거대한 은유와 추상으로만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우연히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싱클레어를 가해자로부터 마침내 해방시켜 주는 '데미안'의 등장과 그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성장하는 싱클레어의 구체적인 성장기는 혹독한 성장통을 겪은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여지가 많다. 밝고 정연한 세계에서 어둡고 엄혹한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싱클레어의 모습은 이 두 세계를 모두 경험하지 않고는, 이 도저히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지대를 이해하지 않고는 결국 자기 자신의 모습도 제대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없다,는 암시를 담고 있다. 내면의 어두운 지대로 내려가지 않고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조차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많은 작가들이 결국 저마다의 서사로 풀어내려 한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닌가 한다. 비근한 예로 하루키가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내면의 어두운 우울의 풍경은 <데미안>의 그것과 닮았다. 싱클레어를 둘러싼 어두운 외부의 세계는 결국 싱클레어 내면의 자신의 그것이 투영된 것이다. 하루키가 끊임없이 형상화하려 한 부분이다.


요즘 밝고 아름답고 질서 정연한 세계가 삶의 대부분이 아님을 절절하게 알아가고 있다. 때로는 그 밝고 건강하고 무지스러운 세계로 후진하고도 싶다. 그 세계를 돌아볼 때 싱클레어가 그랬던 것처럼 때로 눈물이 흐를 만큼 심경이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결코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성장하여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난 이 문장이 오래도록 아팠다. 이상스러울 만큼.


Demian had gone away. I was alone.



데미안은 떠나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새가 날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알을 부수어야 하는 것처럼 자신을 어려움에서 구출해 주고 수많은 유용하고 값진 조언을 해주던 이와도 결국 작별하여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처절한 고독과 사투를 벌이며 결국 어른이 된다. 그 다음에는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산다. 데미안의 엄마 에바의 말처럼 힘들지만 전적으로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 고통스럽지만 빛나는 지점들을 통과한다. 그리고 또 걷는 것이다. 끝에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버티고 '나'를 맞아줄 것이다. 수고했다고, 너는 마침내 너 자신으로 돌아온 거라고, 다독여주기를 바란다.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던 <데미안>은 바로 이러한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소년의 성장기는 중년이 되어 읽어야 이해할 수 있다는 후일담과 만난다. 복기하지 않고는 제대로 천착할 수 없다. 그 지대를 통과하는 당사자는 그 의미와 그 행간의 암시를 알아낼 길이 없다. 그것을 다 안다면 삶은 살아볼 만한 매력과 가치를 지니지 못할 것이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어리석어야 살 수 있고 , 현명해져야 이해할 수 있다니 말이다. 이제 노년이 되어 다시 이 이야기를 읽어보고 또 다른 깨달음과 해석을 자아낼 시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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