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는 버나드 쇼의 말은 옳을까? 요즘 드는 생각은 젊음을 그것의 찰나성을, 그것이 가지는 남녀 간의 게임에서 가지는 위력을 항상 의식하는 젊음이 과연 그 특유의 무모함과 무지를 내칠 만할까 반문하게 된다. 젊음은 몰라야 젊음이다. 자신의 그 치기와 그 무모한 열정의 유효기간을 의식하지 않아야 진짜다. ‘이건 순간이야, 난 곧 늙을 거야.’라는 자기예언은 나이듦에 기꺼이 양보해야 한다.

Cat Person은 이런 젊음이 남녀 관계에서 가지는 역학을 명민하게 들여다보고 형상화한 책이다. 사건이랄 것도 없다.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대생이 손님으로 만난 남자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일종의 게임을 하다 관계를 맺게 되고 여자는 갑자기 이 나이 들고 자신에게 흠뻑 빠져버린 남자가 소름 끼치게 싫어져 피하는 게 줄거리다. 여자는 자신의 젊음이 남자에게 성적 판타지와 결부된 욕망으로 소비되는 과정을 목격하며 극도의 염증을 느끼게 된다. 처음 문자를 주고 받을 때 느꼈던 호감은 이내 극도의 반감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여자는 심지어 집에 고양이를 키운다고 지나가듯 말했던 남자의 이야기마저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남자는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을 Cat Person으로 위장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면의 음험하고 위험한 욕망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안전한 서사를 매개로 그 출구를 찾아 헤맨다. 여자는 직감적으로 이 남자가 자신의 젊음을 소비하고 이용하려 했음을 눈치챈다.

여기에는 선과 악의 대치 구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불가피한 전락의 비극성이 형상화되어 있다. 남자도 여자도 그 찰나의 조우로 화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반목한다. 젊음이 자신의 젊음을 강렬하게 인식하는 지점은 이런 파국에서 비롯된다.


이것을 이미 예리하게 인식하고 묘사했던 ‘그’가 있다. 필립 로스의 시점은 Cat Person의 대척점, 바로 그 늙음에 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만다. 그래서 그 늙음은 백전백패다. 욕망했지만 사랑하고 말았으므로. 그리고 그 젊음 앞에 자신의 젊음까지 환기해 세우는 그의 처절함은 어쩐지 서글프다. 나이 든 남자는 나이 어린 자신을 다시 불러와 나이 어린 그녀 앞에 세운다. 그런 가상의 공간에서 둘의 역학 관계는 균형을 이룬다. 그는 그러한 상상을 한다. 욕망과 사랑의 경계는 언제나 명쾌하지 않지만 더 많이 욕망하거나 사랑하는 자는 힘에서 밀린다. 결국 죽어가는 젊음 앞에서 늙은 남자는 절규한다.

다시 젊음을 돌려주어도 또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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