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라틴어 수업 1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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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문과계열 전공자는 제2외국어를 필수로 수강해야 했다. 고등학교 때 불어를 제2외국어로 배웠지만 열심히 안 하니 못하고 못하니 더 열심히 안 하는 악순환으로 이미 질려버렸던 터라 무언가 전혀 새로운 언어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선택한 언어가 스페인어다. 단짝동기도 설득해서 함께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강의실에 들어가니 스페인어 수강생 중 많은 학생들이 이미 스페인어를 배웠거나 스페인 체류 경험이 있었다. 교수님은 그들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는 대신 다행히도 초급자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수업 난이도를 조정해서 우리가 포기하지 않게 도움을 주셨다. 스페인어는 영어와 유사한 단어가 대부분이고 문법이나 발음 규칙이 다른 언어들보다 까다롭지 않아 대체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외국어로 느껴졌다. 차근차근 열심히 따라가다 보니 그 과정에서 맛보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 그리고 좀 흔하지 않은 언어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허룩한 자부심 등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전공공부보다 더 열중해서 하는 경지까지 나아갔지만 졸업 후 나는 스페인어는 전혀 쓸 일도 쓰일 일도 없는 세계에서 그 매력적인 언어의 야트막한 기초공사를 방치하다 거의 흔적도 없이 떠나오게 되는 허무한 결론을 맞게 되었지만, 지금도 나의 스페인어 공부에 관한 추억은 아스라한 대학 교정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남아있다. 


이 책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10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5년여 동안 저자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초급,중급 라틴어의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교회법학을 공부했고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기도 한 그는 한동일 신부다. 라틴어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책은 아니고 로마에서부터 현대 유럽의 역사, 법, 문화, 종교,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라틴어를 둘러싼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곁들여 라틴어의 아름다운 경구를 현실과 접목시켜 마치 강의실에서 실제 진지하고 잔잔한 강의를 하듯 엮은 책이니 만큼 잘 읽히고 쉽게 들어와 박힌다.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Prima Schola alba est.)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느 대목을 펼쳐 읽어도 좁게는 생소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해 노력을 경주하는 것부터 젊게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대면하는 것까지 어마어마하게 확장되는 외연을 경험할 수 있다. 기성세대로서 젊은 세대에게 막연한 이상주의나 고정관념을 주입시키려 하는 것보다는 기성세대가 공정한 경쟁,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에 가지는 책임감과 한계를 자인하고 자신이 가진 종교관의 틀 안에서만 세상을 재단하려 하지 않는 유연함이 구태의연하지 않아 와닿았다.


막연하고 공허하고 자신의 삶과 무관한 언어로 자신과는 다른 세계관과 보여지는 삶을 직조하기 쉬운 세태다.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런 부류에 편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지나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의 솔직한 자기 고백과 인정, 겸허한 모습들은 그런 의심을 스러지게 했다. 삶과 죽음 앞에서 많은 언어의 모어가 된 라틴어의 단순하고 기본적인 명제로 돌아가 깊이 있게 천착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독자를 참여시키는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한뼘쯤 더 진지해지고 유의미에 가닿은 느낌이 든다.


나의 스페인어는 그렇게 스러져갔지만 아직도 어떤 언어를 통해 미지의 세계로 가는 하나의 경로를 제대로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당신도 그렇다면 이 책은 올바른 선택이 될 듯하다. 꼭 언어에 대한 것이 아니어도 무언가를 배우고 경험하는 데에 대한 호기심이 줄지 않았다면 그것을 어떻게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제대로 간직한 채 삶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소중한 지침들을 < 라틴어 수업> 청강을 통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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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1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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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5 05: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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