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 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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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올릴 때는 기분이 완전히 다운일 때라 뭐라고 말은 한마디도 써서 못 붙이고 그냥 시만 올렸더랬다. 대학시절에 (나름대로) 열심히 읽었던 황지우의 시들이지만, 이 시는 당시 읽은 기억이 없다. 황지우의 시들은 기술적으로 모던하고 시가 똘똘하다고 해야 하나 스마트해야하다고 해야 하나, 대체로 그런 느낌인데, 그러면서도 희한하게 가슴을 후려치는 충격을 주는 것들이 많다. 하기야 그러니까 좋은 시인이겠지.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라는 구절이 절절하다. 찬밥으로 연명되는 것이라도 우리 목숨은 그렇게 더운 것이다.
이건 이 시의 내용이나 주제와는 별 관련이 없는 이야기지만,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갑자기 학교 다니던 시절 점심시간이 떠올랐다. 아무도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제일로 좋았던 건 아무 때나 나 먹고 싶을 때 밥을 먹어도 된다는 것, 아무 때나 먹고 싶으면 혼자서 먹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였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것 중에 일순위를 꼽으라면 내게 그것은 점심시간이었다. 왜 아이들은 그렇게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점심을 먹는 것일까, 나는 지금도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원래 낯을 심하게 가리는 나는 사람들과 오래 함께 있는 것을 무척 불편해하는 탓에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 희한하게 밥을 항상 거의 혼자 먹다시피 했던 것 같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서도 다른 애들은 다 모여앉아서 온갖 수다와 잡담을 늘어놓아가며 밥을 먹는 시간에 혼자서 잘 안 넘어가는 밥을 넘기던 때의 느낌은 여전히 생생하다.
시인이 들으면 자기 시를 읽고 엉뚱한 소리 하고 있네, 하겠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내게는 눈물겨운 경험이었나보다. 학교를 다닐 적에는 학교시절이 평생 안 끝날 것만 같아 얼마나 불안했던지 모른다. 학교시절이 끝나니 잠시 숨통이 트이는가 싶더니만 그리고나도 막막한 것은 어쩌면 삶의 본성인가 보다.
그래도 안 넘어가는 찬 도시락밥을 꾸역꾸역 넘기며 학교시절을 살아냈듯이, 그 다음도 어떻게든 넘어가겠지. 그것도 삶의 본성인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