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이윤학)

 

하루종일,

내를 따라 내려가다보면 그 저수지가 나오네

내 눈 속엔 오리떼가 헤매고 있네

내 머릿속엔 손바닥만한 고기들이

바닥에서 무겁게 헤엄치고 있네

 

물결들만 없었다면, 나는 그것이

한없이 깊은 거울인 줄 알았을 거네

세상에, 속까지 다 보여주는 거울이 있다고

믿었을 거네

 

거꾸로 박혀있는 어두운 산들이

돌을 받아먹고 괴로워하는 저녁의 저수지

 

바닥까지 간 돌은 상처와 같아

곧 진흙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섞이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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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의식의 표면으로 솟아올라 생채기를 내고 진물을 흘리고 피를 쏟게 만드는 상처들. 그것들을 겨우겨우 가라앉혀도, 시인은 그 상처가 없어지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의식의 밑바닥까지 가닿은 상처는 그것의 존재의 일부가 된다고요. 

그러니까 지금의 우리를 이루는 것은 많은 부분 내가 입어온 가지가지 상처들이죠. 그 중의 몇가지는 치명상이었고, 나머지는 중경상이었을 그 상처들. 기억이 없어지기를 빌며 간신히, 간신히 그 암초들을 눌러박으며 지내는 동안 그 돌들은 마음의 바닥에 가라앉았고, 그런 후엔 그 돌들이 아예 뿌리를 내려, 결국 우리들 자신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혈관 속에 그 돌들이 부서져 만들어진 모래알들이 흐르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아요...

 

p.s.

[그런데 요리까지 이렇게 말하고 다시보니 갑자기 혈전이 혈관 속에서 부유하는 상상이 들어 좀 끔찍스럽군요... T.T  낭만이 한 방에 날아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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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이 2005-05-26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애기같이 생긴 친구가, 아마도 스물 네 다섯 살 쯤, 어느 식당에 앉아 할머니같이 지혜로운 말을 했어. 식탁 옆에 서 있는 나무가 진짜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면서. 모든 살아있는 것엔 상처가 있는 법이라고. 그런데 그 나무는 상처가 없다고, 자세히 보라고 했지. 상처도 삶의 무늬일까.

검둥개 2005-05-2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숙 소설에 나오는 구절 같은데요... 아닌가?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