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다 했더니,
드디어는 찬장에서 유리병이 통채로 떨어져서 부엌 카운터에서 산사조각이 나는 사태가 일어났다.
부엌 바닥에 널린 유리조각, 시큰한 피클 국물 냄새, 순식간에 젖어버린 티셔츠.
으.
생각해보니,
이번 주 내내 피곤했으며
요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보스의 꿀꿀한 심기에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고 있고
다니는 학교에선 새 학기가 시작되어 벌써부터 숙제가 생겼으며
일하는 학교에선 새 학기가 시작되어 일이 쌓이고 있는 데다가
어제는 테레비를 보며 열심히 건포도를 우물거리고 있는데 어금니 씌운 것이 그만 쓱 하고 빠져 버렸다는!
금쪽같은 그 이빨 씌운 것이 말이다.
(충치가 재발하지 않아서 제발 그 비싼 것을 도로 붙일 수 있어야 할텐데, 신경치료라도 받아야 한다면 정말 괴로울 것이다.)
그래서 내일은 치과에 가야 하며
치과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몇 시간 휴가시간을 써먹어도 되느냐고 허락을 받아야 하며
허락을 받기 위해 보스와 대화를 해야 한다는.
거기다가
(동네 병원 환자들과 간호원들 모두 사이에서 인기 짱이며)
(게다가 수 년 전 슬림하다는 형용사를 한 번 써준 이래 줄곧 검둥개의 우상 자리를 확고히 지켜왔으며)
(영화 류망의생의 양조위 만큼 멋지고 친절한)
나와 기타 많은 동네 병원 환자들이 친애하는 의사 양반이
딴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이제 생판 모르는 의사로 담당 주치의를 바꿔야 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으로 파까지 넣어서 라면을 끓였는데,
맛이 영 아니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