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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니의 일기
에마 매클로플린. 니콜라 크라우스 지음, 오현아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소재는 얼마든지 더 흥미롭게 다루어질 수도 있었는데, 책의 전개는 상당히 느리고 극적 구성도 약하다는 느낌이다. 지은이들이 8년을 유모로 일한 경험을 모아 썼다는데 아무래도 소설이라기보다는 가명을 사용한 유사 수기 같은 느낌을 준다.

부유층 사람들의 호사스런 삶과 희한하고 (약간 역겨운) 행동거지를 보는 재미를 주지만, 정작 내니는 소설에서 행동의 주체라기보다는 객체에 불과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행동의 주체여야 한다는게 소설 작법학의 제일원칙이라는데 이 원칙이 무시되는 것을 보면 이 소설의 저자들이 적어도 이 책을 쓸 당시에는 아마추어 소설가들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내니보다 오히려 황당할 정도로 모성이 결여되고 희한할 정도로 자신의 불행을 외면하는 데 재능이 있는 Mrs X의 캐릭터가 더 인상적인데, 소설이 이 인물을 보다 깊이 탐구했더라면 책이 좀더 흥미로웠을 것이다.

시간 때우는 재미로는 그럭저럭 읽을 만 하다.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가 된 건, 아마 부유층 사람들의 삶을 엿보려는 관음증적 흥미가 이 책의 구매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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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lady 2005-06-13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이 있길래 좋아라했더니 흠흠..

검둥개 2005-06-13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너무 박하게 별을 줬나봐요. 재미도 꽤 있었는데 ^^;;;
 
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폴 오스터는 오래 전 한 때 내가 무척 좋아했던 작가였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아마 그의 수필집 <굶기의 예술>이 시인 최승자의 번역으로 나오면서부터였지 싶다. 시인이 번역한 책들에 나는 특별한 애착을 보이는 경향이 있는 데다가, <굶기의 예술>이라는 그 제목은 정말이지 그 당시의 나에게는 너무나 멋지구리하게 들렸다. 게다가 그는 내가 좋아하는 오스트레일리아 배우 하비 케이틀이  나오는 <스모크>라는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한 작가이기도 했다.

<뉴욕삼부작>을 읽고 나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이 책이 제공하는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나 새로왔다. 그래서 대학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전부 빌려 읽고 심지어 당시에 번역되어 있지 않던 책들은 영어본으로까지 읽었다. <리바이어던>이 그렇게 읽었던 책인데, 딸리는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결말이 궁금하던지 거의 날새다시피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읽은 폴 오스터의 책들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찾아보니까, <달의 궁전>, <우연의 음악>, <팀벅투 (동행)>, <미스터 버티고 (공중곡예사)>, 까지 소설은 도합 7권을 읽었고 (<신탁의 밤> 포함), 에세이집도 <빵굽는 타자기>와 <고독의 발명>까지 모두 다 읽었다. [지금 보니 정말 무식하게 읽어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신나게 읽으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이 작가에 대해 품었던 나의 경외감은 사그러들었다. 너무 단시간에 그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가 흥미위주의 극단적인 소재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소재가 선정적이네 어쩌네 하며 독자가 작가에 대해 트집을 잡을 때 독자가 하고싶어하는 말은, 재밌는 소재도 반복되니 지겹다는 게 아니라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그 메세지에 비해 소재가 과장되고 허풍스럽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즉, 하려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풀어놓는 매체인 소재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고 겉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폴 오스터는 딱 한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우연과 우연이 바꾸어놓는 사람들의 삶; 우연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들; 그 속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행동과 그들의 생각. <신탁의 밤>에서는 여기에다가 소설쓰기에 대한 성찰이 덧붙여진다. (대개의 포스트모던 소설들과 비슷한 길을 그도 가는 것이다.) 

소설가는 평생 단 한 가지 이야기를 한다는 말도 있으니까, 한 가지 주제를 탐구하는 게 폴 오스터의 잘못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가지 주제를 밀고나간다면 최소한 그에 대한 작가의 성찰도 비례해서 깊어지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기대가 아닐까? 폴 오스터가 나를 실망시키는 것은 바로 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머리를 쓰는 것을 싫어한다. 머리를 써야 하더라도 나로 하여금 그걸 즐기면서 자발적으로 해주도록 하는 작가를 좋아한다. 주석이 덕지덕지 붙은 이 소설은 그래서 처음부터 나에게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내 물론 보르헤스를 존경해마지 않지만, 보르헤스도 주석을 이런 식으로 남용하지는 않았다. (결국 중간에 나는 주석 읽기를 중단했다!) 이게 무슨 포모식 글쓰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대체 아무렇게나 늘어놓고 안 닫히는 이야기만 무성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나에게는 작가의 무성의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안다, 이게 작가가 그토록 건드리고 싶어하는 우연 어쩌고와 관련이 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래서 작가는 이 구성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나에게 비규범적 소설구성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내가 그 구성에 빨려들어가서 확 속아넘어가느냐 아니냐에 달렸다, 그리고 그 구성을 만드는 데 작가가 들여야 했을 공력이 얼마 정도였을까 하는 데 대한 약간의 고려 정도. 물론 오스터에 대면 대작가기는 하지만 예를 들어 보르헤스의 단편들은 얼마나 짧으면서도 간명하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가. 거기다 대면 무지하게 길고, 반면 생각할 꺼리는 그냥 별로 없다고 생각이 된 (물론 이건 이미 그의 다른 작품들을 다 읽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지만은, 구성의 효율성도 작품에서는 중요한 요소다) 내게 폴 오스터의 이 책을 읽는 것은 거의 고난의 길이었다. 그리고 이 책이 이렇게 된 건 작가가 쉽게 쓰는 길을 택하다보니 그랬을 거라는 혐의까지 품으면서 (물론 본인은 힘들었다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었다.

폴 오스터는 한 번 읽어볼 만한 작가다. 하지만 내게 이 책은 실망이었다. 다른 분들이 별을 많이 주셨으니까 나는 과감하게 두 개만 떨군다. 그의 작품 한 두 개를 추천한다면, 나는 오직 <뉴욕 삼부작>과 <고독의 발명>만을 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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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6-05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폴 오스터 너무 좋아하는데요, 이 책은 참 별로였어요 동어 반복이라고 해야 할까, 소재의 고갈이라고 해야 할까... 전 달의 궁전이 너무 좋았어요 거기 나오는 에핑 같은 은둔자, 혹은 환상의 책에 나오는 헥터 만 등이 막연하게 꿈꾸던 이상향이었거든요 책 읽는 것만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자들,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이런 캐릭터들이 너무 멋지더라구요 특히 굶기의 예술이라는 문구에도 완전히 맛이 가 버렸죠 정신의 명료함을 위해 극단적인 굶기를 감행하는 치열함에 소름이 돋더라구요 그런데 저도 신탁의 밤 부터는 매력이 감소해서 잘 안 읽습니다 그래도 폴 오스터, 문장력도 좋고 대단한 이야기꾼이지 않나요? 고전을 정말 많이 읽는 것 같아요 전 가끔 이문열이 생각나더라구요

검둥개 2005-06-05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말고도 이 책에 실망한 분이 있었군요. 나나님도 별로였다고 하시니까요. 다른 분들이 워낙 호평을 하셨길래 원래 조금 쫄았었답니다. ^^;;
 
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히 신문에 서평이 난 것을 보고 결국 사서 읽고 말았다. 등장인물들은 인상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고 줄거리의 전개도 점점 빨라지기 때문에 확실히 시간 때우며 읽는 재미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하루끼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다 읽고 난 이후에 남는 여운은 감상적 이미지 몇 가지뿐이어서 실망스럽다. 귀결도 대부분의 성장소설의 그것과 마찬가지여서 맥빠지는 느낌이다. 플롯 자체가 여러 군데 열려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나름대로는 철학적 의도를 배경에 깔고 있었던 듯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실패라는 느낌을 준다. 읽고 나서 줄거리를 꿰어맞추어보려고 시간을 소비하게 되기도 하는데, 어떻게 꿰어맞추건 결국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관계들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곳곳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철학을 빙자한 대화는 상당히 거슬린다. (빼어난 미모의 철학 전공의 창녀는 솔직히 너무 진부한 캐릭터다; 혼시로의 캐릭터가 유일하게 좋은데 그 인물에게까지 어색한 철학용어를 덮어씌운 것이 특히 안타깝다. ) 

결론적으로,  마술적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이라는 변명으로 넘어갈 수 없는 결정적 흠들이 많고, 무엇보다도 비현실적이고 마술적인 인물과 줄거리를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 가장 큰 결점이다. 좀 잔인한 말이지만, 이 소설에는 깊이가 없다. 그러나 시간 때우는 재미도 소설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니까, 별은 3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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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3-27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 공감입니다. 추천하고 갈께요~

지킬박사 2005-04-15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재밌는 글을 쓰는 베스트셀러작가임엔 분명하지만 깊이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부풀려져서 추앙받고있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검둥개 2005-04-18 0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 도서관에서 <코끼리 사라지다>라는 하루끼의 초기 단편집 (그런가요?) 을 빌려와서 읽고 있습니다. 단편들이라 그런지 훨씬 마음에 드는군요. 한국작가들에게 하루끼가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더니 그게 뭔지도 조금 알 것 같고요. 초기가 이 작가에게는 전성기였나, 모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봄날의곰돌이 2006-09-06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거의 하권을 반쯤 읽었을때 이미 하루키가 벌려놓은 줄거리들이 귀결되지 않은채로 끝날것을 예상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거의 다 읽어내려갔을때는 맥빠지는 기분이었구요. 님 말씀대로 저도 어떻게 끼워맞추건 결론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것들인것 같아서 생각하기를 관뒀습니다. 오컬트적 요소와 하루키적 문장력은 필시 매력적입니다만, 지나친 관념적 대화나 추상적 결론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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