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폴 오스터는 오래 전 한 때 내가 무척 좋아했던 작가였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아마 그의 수필집 <굶기의 예술>이 시인 최승자의 번역으로 나오면서부터였지 싶다. 시인이 번역한 책들에 나는 특별한 애착을 보이는 경향이 있는 데다가, <굶기의 예술>이라는 그 제목은 정말이지 그 당시의 나에게는 너무나 멋지구리하게 들렸다. 게다가 그는 내가 좋아하는 오스트레일리아 배우 하비 케이틀이  나오는 <스모크>라는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한 작가이기도 했다.

<뉴욕삼부작>을 읽고 나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이 책이 제공하는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나 새로왔다. 그래서 대학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전부 빌려 읽고 심지어 당시에 번역되어 있지 않던 책들은 영어본으로까지 읽었다. <리바이어던>이 그렇게 읽었던 책인데, 딸리는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결말이 궁금하던지 거의 날새다시피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읽은 폴 오스터의 책들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찾아보니까, <달의 궁전>, <우연의 음악>, <팀벅투 (동행)>, <미스터 버티고 (공중곡예사)>, 까지 소설은 도합 7권을 읽었고 (<신탁의 밤> 포함), 에세이집도 <빵굽는 타자기>와 <고독의 발명>까지 모두 다 읽었다. [지금 보니 정말 무식하게 읽어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신나게 읽으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이 작가에 대해 품었던 나의 경외감은 사그러들었다. 너무 단시간에 그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가 흥미위주의 극단적인 소재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소재가 선정적이네 어쩌네 하며 독자가 작가에 대해 트집을 잡을 때 독자가 하고싶어하는 말은, 재밌는 소재도 반복되니 지겹다는 게 아니라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그 메세지에 비해 소재가 과장되고 허풍스럽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즉, 하려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풀어놓는 매체인 소재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고 겉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폴 오스터는 딱 한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우연과 우연이 바꾸어놓는 사람들의 삶; 우연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들; 그 속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행동과 그들의 생각. <신탁의 밤>에서는 여기에다가 소설쓰기에 대한 성찰이 덧붙여진다. (대개의 포스트모던 소설들과 비슷한 길을 그도 가는 것이다.) 

소설가는 평생 단 한 가지 이야기를 한다는 말도 있으니까, 한 가지 주제를 탐구하는 게 폴 오스터의 잘못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가지 주제를 밀고나간다면 최소한 그에 대한 작가의 성찰도 비례해서 깊어지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기대가 아닐까? 폴 오스터가 나를 실망시키는 것은 바로 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머리를 쓰는 것을 싫어한다. 머리를 써야 하더라도 나로 하여금 그걸 즐기면서 자발적으로 해주도록 하는 작가를 좋아한다. 주석이 덕지덕지 붙은 이 소설은 그래서 처음부터 나에게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내 물론 보르헤스를 존경해마지 않지만, 보르헤스도 주석을 이런 식으로 남용하지는 않았다. (결국 중간에 나는 주석 읽기를 중단했다!) 이게 무슨 포모식 글쓰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대체 아무렇게나 늘어놓고 안 닫히는 이야기만 무성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나에게는 작가의 무성의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안다, 이게 작가가 그토록 건드리고 싶어하는 우연 어쩌고와 관련이 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래서 작가는 이 구성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나에게 비규범적 소설구성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내가 그 구성에 빨려들어가서 확 속아넘어가느냐 아니냐에 달렸다, 그리고 그 구성을 만드는 데 작가가 들여야 했을 공력이 얼마 정도였을까 하는 데 대한 약간의 고려 정도. 물론 오스터에 대면 대작가기는 하지만 예를 들어 보르헤스의 단편들은 얼마나 짧으면서도 간명하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가. 거기다 대면 무지하게 길고, 반면 생각할 꺼리는 그냥 별로 없다고 생각이 된 (물론 이건 이미 그의 다른 작품들을 다 읽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지만은, 구성의 효율성도 작품에서는 중요한 요소다) 내게 폴 오스터의 이 책을 읽는 것은 거의 고난의 길이었다. 그리고 이 책이 이렇게 된 건 작가가 쉽게 쓰는 길을 택하다보니 그랬을 거라는 혐의까지 품으면서 (물론 본인은 힘들었다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었다.

폴 오스터는 한 번 읽어볼 만한 작가다. 하지만 내게 이 책은 실망이었다. 다른 분들이 별을 많이 주셨으니까 나는 과감하게 두 개만 떨군다. 그의 작품 한 두 개를 추천한다면, 나는 오직 <뉴욕 삼부작>과 <고독의 발명>만을 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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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6-05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폴 오스터 너무 좋아하는데요, 이 책은 참 별로였어요 동어 반복이라고 해야 할까, 소재의 고갈이라고 해야 할까... 전 달의 궁전이 너무 좋았어요 거기 나오는 에핑 같은 은둔자, 혹은 환상의 책에 나오는 헥터 만 등이 막연하게 꿈꾸던 이상향이었거든요 책 읽는 것만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자들,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이런 캐릭터들이 너무 멋지더라구요 특히 굶기의 예술이라는 문구에도 완전히 맛이 가 버렸죠 정신의 명료함을 위해 극단적인 굶기를 감행하는 치열함에 소름이 돋더라구요 그런데 저도 신탁의 밤 부터는 매력이 감소해서 잘 안 읽습니다 그래도 폴 오스터, 문장력도 좋고 대단한 이야기꾼이지 않나요? 고전을 정말 많이 읽는 것 같아요 전 가끔 이문열이 생각나더라구요

검둥개 2005-06-05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말고도 이 책에 실망한 분이 있었군요. 나나님도 별로였다고 하시니까요. 다른 분들이 워낙 호평을 하셨길래 원래 조금 쫄았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