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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히 신문에 서평이 난 것을 보고 결국 사서 읽고 말았다. 등장인물들은 인상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고 줄거리의 전개도 점점 빨라지기 때문에 확실히 시간 때우며 읽는 재미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하루끼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다 읽고 난 이후에 남는 여운은 감상적 이미지 몇 가지뿐이어서 실망스럽다. 귀결도 대부분의 성장소설의 그것과 마찬가지여서 맥빠지는 느낌이다. 플롯 자체가 여러 군데 열려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나름대로는 철학적 의도를 배경에 깔고 있었던 듯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실패라는 느낌을 준다. 읽고 나서 줄거리를 꿰어맞추어보려고 시간을 소비하게 되기도 하는데, 어떻게 꿰어맞추건 결국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관계들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곳곳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철학을 빙자한 대화는 상당히 거슬린다. (빼어난 미모의 철학 전공의 창녀는 솔직히 너무 진부한 캐릭터다; 혼시로의 캐릭터가 유일하게 좋은데 그 인물에게까지 어색한 철학용어를 덮어씌운 것이 특히 안타깝다. )
결론적으로, 마술적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이라는 변명으로 넘어갈 수 없는 결정적 흠들이 많고, 무엇보다도 비현실적이고 마술적인 인물과 줄거리를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 가장 큰 결점이다. 좀 잔인한 말이지만, 이 소설에는 깊이가 없다. 그러나 시간 때우는 재미도 소설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니까, 별은 3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