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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평점 :
한 삼십여 페이지 가량 읽어가던 중 예전에 이미 읽었던 책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좀 충격을 받았지만 소설 속에서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기억할 수 없었으므로 계속해서 읽어내려갔다. 일단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는 기억이 회복되자, 책을 읽는 내내 왜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그렇게 까맣게 잊혀졌는지, 왜 이 책을 처음 읽고 이렇다할 인상을 받지 못했었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책이 나올 당시에 후일담 소설이 붐을 이루었던 만큼 다른 동종 소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을 테고, 게다가 도피중인 정치범과 그를 숨겨주다 사랑에 빠지는 여자, 라는 식의 이야기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다시 읽어보니, 이번엔 의외로 과거에 눈을 두지 않았던 부분에 관심이 쏠렸다. 자연경관의 변화를 묘사한 무척이나 서정적인 문장들이라든가, 감옥에서의 생활처럼 소소하고도 구체적인 일들의 언급 (독방 창문으로 철사줄을 내어 비둘기를 잡아 뺑기통 위에서 삶아 먹는 일, 드나드는 쥐라도 애완동물로 만들려고 애를 쓰는 죄수들, 단식과정에서 변화하는 감각경험 등), 그리고 먹는 음식 이야기들. 디테일.
황석영이 이 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구분된다면,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의 작품 속에 담긴 시대와 역사에 대한 의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완성도와 감동은 소재의 역사성만으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파리하고 몰개성적인 성격은 적이 실망스러웠다. 오현우, 한윤희, 송영태, 최미경. 그들은 모두 80년대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이기는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인간들이 아니고, 그냥 유신에 반대한 젊은 청년, 학생운동에 동조적이었던 빨치산의 딸, 부르조아 출신의 학생운동권,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젊은 여대생이었다.
역사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것이 우리와 같은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생운동 전략을 유창하게 토론하는 소설 속의 인물의 말빨에 반하지 않고, 광주사태 비디오를 보고 수배자를 도피시켜주다가 사랑하게 된 사연, 그 남자가 무기수로 징역을 가버리게 된 사연에 자동적으로 감동하지 못한다.
우리가 감동하는 건 소설 속의 인물이 우리에게 사소하게 말 걸 때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에서. 해방정국 좌익 지식인이었던 한윤희의 아버지가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났던 민청 소속의 젊은 여학생을 다음해 데모에서 다시 만나 스치며 이렇게 사과할 때: "지난번에 땡감 먹인 걸 사과하오. 난 정말 몰랐어요" (155) 새벽 세 시에 서울역에 도착하자 서울이 온통 비상경계 상태여서 동이 틀 때까지 아무 곳으로도 갈 수 없었고, 학생과 아버지는 어쩌다가 여인숙 방에 함께 가게 되었는데, 불을 켜놓고 우두커니 마주 앉아 있다가 아버지는 학생에게 시장기나 떼우라고 인절미며 감을 내주었단다. 그런데 여학생이 감을 아주 조금씩만 떼어먹더라는 거였다. 아껴먹느라 저러나 해서 아버지는 감 하나를 더 내어주고는, 화롯가에서 그만 졸았는데 깨어보니 여학생은 이미 가고 없더란다. 나중에 집에 와서 감을 꺼내 먹어보니 떫기가 얼마나 떫은지 뱉아버리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새댁이던 아내가 웃으면서 그건 땡감이라 햇빛에 익혀 먹거나 소금물에 담가두었다 먹어야 하는 거라고 설명을 해주었다고.
현대건축가 미에즈 반 데어 로에는 신은 세부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디테일,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역사의 디테일이건, 사랑의 디테일이건, 배신의 디테일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