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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 이야기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불란서 안경원>을 읽은 후, 나는 조경란의 열혈팬이 되기로 했다. 단편 "환절기"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출렁이는 무거운 바께쓰를 이고지고 가 남의 집 대문 앞에 늘어선 푸른 화분에 김이 펄펄 끓는 물을 쏟아붓던 주인공. 터널처럼 어둡고 길고 음습하던 한 시절을 다시 보듯, 나는 오싹한 동질감에 사로잡혔다. 삶이 끔찍한 것은 누구에게나 대개 마찬가지다. 그러나 누구는 목을 매고, 누구는 케세라 케세라 하며 살아간다. 여기에 그 들여다보기 섬찟하고 또 지긋지긋한 끔찍함을 오랫동안 응시해온 작가가 있다.
조경란을 생각할 때면 이제는 중년이 된 작가 오정희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철저한 절망이라는 친연성이 그들의 소설 사이에 있다. 오정희도 조경란도 읽기에 쉬운 작가는 아니다. 그들의 문체가 아름답고, 그들 소설의 구성이 치밀하지만, 문장과 기교가 그들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조경란의 소설 대부분은 일인칭이며 그들의 경험은 쉽게 작가의 추체험으로 읽힌다. 소재의 새로움이란 루이제 린저에게처럼 조경란에게도 별 의미가 없는 개념이다. 그들 소설의 가치는 진정성과 치열함에 있다. 진정성과 치열함은 상상력이나 쿨함처럼 지어낼 수 있거나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 속의 권태를, 삶의 지리멸렬함을, 생존의 끔찍함을, 나와 타인이라는 지옥을 눈이 빠지도록 들여다보는 데서 얻어지는 단 한 줌의 성찰이다.
무엇에 대해 우리는 성찰하는가? 삶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가?
딱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나와 타인의 관계, 사랑과 증오다.
진부하다고?
인간의 진실이 거주하는 장소는 원래 그렇게 진부한 법이다. 지방소도시의 먼지 뒤집어쓴 여인숙처럼.
<국자 이야기> 속 단편들은 <불란서 안경원> 속의 단편들보다 구성이 느슨하고 문장의 무게와 밀도가 덜하다. 분노와 적의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뜨거운 백열전구 같던 주인공들은 여전히 '나'를 탐구한다. 그러나 그 탐구는 <국자 이야기> 속에서 훨씬 더 유연하고 여유로운 방식으로 전개된다. 물론 비교의 대상이 남의 집 식물에 펄펄 끓는 물을 부어 죽이는 종류의 인물이던 것을 고려하면, 그 "훨씬 더 유연하고 여유로운 방식"이라는 것은 여전히 이를 악물어야 간신히 수행할 수 있는 정도의 고된 노동을 수반한다. 이를테면 조경란 소설의 원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과의 불화, 가족의 붕괴는 "잘 자요, 엄마"의 주인공에게서 제어할 수 없는 거미공포증에 비견된다. 그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주인공은 행동치료를 시도한다.
"나의 가족은 이제 거미가 되었다. 작게 나와 있는 가족사진을 들여다보았다. ... 나는 내 왼팔에 아버지를 올려두고 동생은 오른팔에 조카는 어깨 위에 죽은 막내동생은 내 가슴 위에 올려두고 그리고 엄마는 내 머리 위에 올려두었다. 그들이 내 몸 위를 걸어다니고 나를 만지고 핥고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공포는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으나 나는 후퇴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반복하곤 했다." ("잘 자요, 엄마" 135)
절망에서 치유로 행동과 깨달음으로 <국자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아주 작은 발걸음을 내디딘다. 그 작은 발걸음은 물론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좁은 문"에서의 금박의 메타포가 사용되는 방식엔 조금 작위적이란 느낌이 있고, "입술"의 구성은 독자에게 상당한 혼란을 안겨주며, "돌의 꽃"의 박쥐남자라는 소재엔 확실히 어색한 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는 전진과정에서의 시행착오로 보인다. 나는 법을 배우려면 걷는 연습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조경란에겐 날고 싶은 욕망과 날아오르려는 의지가 있다.
"그러고 보니까 당신, 아무 말도 안 했구나, 내 얘기만 했네. 미 미안해. 하지만 이 이게 내 이야기의 끝 끝은 아 아니야. 난 한 번도 모 못 해본 마 말들이 너 너무나 많아. 이 이제 나는 인생이 너무나 노 놀랍고 신비로워서 입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어. 내 시 심장 소리는 내가 모 못 듣는 거잖아. 호 혹시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건 하 한 가지가 아닐까. 한 한 가지 비 빛깔처럼 말이야. 가 가까이 다가오는 사 사람한텐 자 자리는 내주는 거야. 내가 마 말을 하는 건 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야. 말을 해. 말을 안 하면 귀 귀신도 모르는 거야. 말 말을 하지 못하면 살아도 주 죽은 거야. 말을 해, 사 사랑이 사라지거나 혹은 죽거나 아 아주 자 잠들지 않게끔. 나 나는 정말 마 말을 자 잘하는 사 사람이 되고 싶 싶었는데. 당신, 나 나를 좀 쳐 쳐다봐. 내게 마 말해줘, 다 당신에 과 관한 것. 자, 이 이젠 다 당신 차 차례야." ("입술" 223-224)
작가후기에서 이런 구절을 읽고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장엄한 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될 때, 나는 나의 일부가 그 나무 속으로 서서히 미끄러져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 분리할 줄 아는 힘, 아마도 나는 그런 것을 원했던 것 같다. 저항과 흥분과 체념과 냉담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이 불완전하며 변덕스럽고 위협적인 세계를 만질 수도 입을 수도 껴안을 수도 없는 이 연약한 언어가 과연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는지. 나를 표시해줄 수 있는 어떤 점 하나 같은 게 저 길 끝에 정말 있을지." (292)
이런 작가에게라면 좀더 많은 열혈팬들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내게 말해줘, 당신에 관한 것,
<국자이야기>는 드디어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된 작가가 '나' 아닌 '너'에 대해 쓴 自敍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