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타오르고 싶다 - 그림 혹은 내 영혼의 풍경들
김영숙 지음 / 한길아트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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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 어려서부터 미술에 콤플렉스가 많았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이던가 한두 달 화실을 다니면서 그림을 배워 본 적도 있었지만, 아마 우리 엄마는 그때 돈이 아깝다고 느끼셨을 것이다.(자식 키워보니까 알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네가 미술이 부족하니 중고등학교에 가면 고생을 할 것 같다'고 얘기하셨다.
아니나다를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미술시간이 즐거웠던 적은 단 한 시간도 없었다.

단순히 미술만이 아니었다.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하다 보니 스스로 나의 색채감각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고, 뭔가를 꾸미고 가꾸는 일, 심지어는 나 자신을 꾸미고 가꾸는 일에도 무심한 척하게 되었다.
옷 한 벌을 고를 때도 난 내 취향이 없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무심한 척이었지, 무심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대기업의 문화재단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전공이 도서관학이니 뭔가 분류하고 보관하는 일은 잘 할 거라는 윗분의 근거 없는 기대감에 재단이 소유한 수백, 수천 점의 미술품을 관리하는 일을 덜컥 맡게 되었다.
오 마이 갓!
그때까지 난 사무실 내에 있는 미술관조차 발걸음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터였다.

의무감 반, 그리고 오기 반으로 고3때보다 더 열심히 벼락치기 공부를 했다.
재단 소장품을 작가와 매치시켜 외우고, 작가의 프로필을 외우고, 미술잡지를 목차부터 편집후기까지 샅샅이 훑었다.
서양미술사의 사조를 외우고, 작가마다 형성되어 있는 가격대를 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쿠르베의 그림 화보가, 그리고 강연균의 그림이 좋아 보였다.
이발소에 걸려 있는 밀레의 그림도 좋아 보였고, 만화도 아니고 뭣도 아닌 것 같던 샤갈도 좋아 보였다.
미술평론가 이주헌 씨의 말처럼, 자꾸 보다 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고, 조금 알 것 같으니 더 좋아 보이는 것이었다.
감히 내가, 서양미술사를 전공하면 좀 행복해지겠다... 생각을 한 날도 있었다. 미술사를 전공하기 위해 대학원을 가는 친구가 부럽게! 느껴졌다.

요즘은 미술에 대한 책들이 무척 많다. 한젬마의 그림에 관한 책들이 잘 팔리고, 교육방송에서도 그림에 관한 방송이 많아졌다. 손만 뻗으면 그림에 대해 알고싶은 욕구들을 충분히! 충족시켜줄 만한 책들도 많아졌다. 굳이 유럽의 어느어느 미술관에 직접 가지 않아도 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들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김영숙의 <나도 타오르고 싶다>는 책을 좀 일찍 만났었으면, 한 10년 전에 만나서 내가 그림을 좀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녀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보면서도 '저거 팔면 돈 되겠다'고 생각하는 아줌마이다. 지금은 어느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다지만, 이 책을 쓸 때만 하더라도 혼자서 보던 그림에 대해 인터넷의 어느 사이트에 글을 올리던 아줌마였다.

난 이런 어줍잖은 리뷰 하나를 쓰기 위해서도 끙끙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올릴까 말까를 망설인다. 그런데 그녀의 글은 그냥 말을 타고 달리듯 휘익~ 갈겨 놓은 것처럼 보이는 글인데, 읽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아니 끌어당기는 정도가 아니라 집어 삼키는 마력이 있었다.
- 어쩌면 그녀도 고민 고민하면서 쓸지도 모른다. 그가 글을 쓰는 걸 본 적은 없으니까. 그렇지만, 난 그렇게 느껴진다는 얘기다.
난 살리에르 근처에라도 가 보려고, 살리에르마저 부러워하면서 사는데, 그녀는 모차르트였다.

미술 감상이 (난 아직도 내 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어야 할 일이 생기면 식은땀이 흐른다. 아이들에게 해 주는 종이접기조차 내겐 힘겹다) 조금씩 즐거워지면서 미술평론가들의 미술작품 소개서들을 사서 읽기를 즐기게 되었는데, 최소한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 김영숙이라는 이 아줌마처럼 거침없이 써 내려가진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고3때보다 더 열심히 외웠던 그 그림 사조들을 그녀는 참 쉽게 설명한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자세히 보면, 수련을 그린 게 아니라 물감만 찍어놓은 것처럼 되어 있답니다. 모네는 자기가 묘사해내려는 대상 위로 내리쬐는 그 순간적인 빛을 포착하기 위해서 몇날며칠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를 서성거렸지요. 수련 연작도 시시각각 변하는 수련 연못을 그린 겁니다. 모네의 그림을 신고전주의 화가인 앵그르의 그림과 한 번 비교해보시겠어요?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오달리스크는 누워 있거나 비스듬하게 누운 누드 그림을 말합니다)는 붓자국이 전혀 나 있지 않고 아주 평평합니다. 그리고 유심히 들여다봐도 살갗은 살갗처럼 그려져 있지요. 인상주의 그림이 신고전주의 그림과 다른 점이 바로 그런 거지요.

그리고는 모네의 그림과 앵그르의 그림이 바로 편집되어 있다.
이제 인상주의가 뭔지, 신고전주의가 뭔지 누구라도 절대로 잊지 못한다.

아, 그녀의 또 다른 인상주의 설명,

소개팅할 때 실내에서는 그렇게 잘 생겨 보이던 얼굴이, 애프터로 공원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전혀 달라 보이던 거 기억나시지요?

누가 인상주의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그녀의 책을 보여주었다.
(사실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이라는 그림을 비롯하여 몇몇 그림들 때문에 단 몇 초이긴 했지만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아이들은 내용보다는 마치 그림책을 보듯이 그저 넘기면서 본다.
간단한 그림 설명을 내가 옆에서 덧붙이려다 그만 두었다. 그림을 그림으로서 즐기도록, 그 속에서 마음껏 자유를 느끼도록,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도록.

그러면서 생각했다.
왜 나 어렸을 때는 이런 책이 없었던 거야.
왜 내가 그림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을 때 이 책은 없었던 거야.
그 두꺼운 잰슨의 [서양미술사]를 뒤적이고 있을 때 도대체 이 아줌마는 뭐했던 거야.

내가 그림을 좋아하기까지 돌아온 25년 이상의 세월이 아깝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지금 이 책을 만난 것을 행운으로 느끼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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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6-05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숙님의 <지독한 아름다움>을 읽고, 정말 미술이 알고 싶다고 몸이 떨리더군요. 정말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인가봐요. 자신의 열정을 독자에게 전염시키는 것을 보면.
이 책도 궁금해 지네요.^^

panda78 2004-06-0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독한 아름다움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은 도판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책은 제대로 읽지를 못해서 아쉽습니다..

호랑녀 2004-06-05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먼저 나왔고, 지독한 아름다움이 그 후에 나온 책이지 싶네요 ^^
처음에는 단순히 그림을 좋아하는 아줌마였는데, 그것으로 책도 내고, 공부도 하는 걸 보고, 취미생활도 한우물을 파면 저렇게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면 참 좋겠습니다 ^^

책읽는나무 2004-06-06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미술성적이 그닥 좋지 않았던 저였기에...그림이라면 그냥 무심히 지나치곤했더랬습니다..
그런데...대학을 들어가서...전공때문에라도...그냥 단순한 스케치도 멋지게 해보았으면!!
판넬작업을 할때도 좀 멋지게 색의 조화를 만들어 리포터를 제출했으면!!...하다 보니...
미술이란것에 관심이 생겨지더군요!!...ㅡ.ㅡ;;
그래도 그냥저냥 그림이란걸 무심히 지나치다....알라딘에서 우연히 검은비님의 화가를 만나고서부텀...그리고 또다른 그림에 관심 많은 서재인들을 만난 후부터....자꾸 클릭하여 그림들을 보고 있으려니.....또 그냥 막 좋아지더군요!!
님의 말씀처럼...그냥 자꾸 보면 알고 싶고..알다보면 좋아진다는 그말에 공감합니다..^^
모르면 좋아질수가 없죠!!..사랑도 관심에서 비롯된다고...그림도 매한가지인듯합니다...
덕분에 리뷰 잘읽고 갑니다......그리고 저도 그림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

호랑녀 2004-06-07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는 대학 다닐 때, 리포트에 예쁜 리본 매고, 이쁘게 꾸며서 내는 친구들! 미워했습니다. 그 시간에 내용에 정신 쏟아라... 하믄서...
사실은, 제가 그러지 못함에 대한 방어였습니다.
도서관학(요즘말로 하면 문헌정보학)을 전공할 때, 내가 손재주 없는 것이 별로 표가 안 나겠거니...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재주만이 아니라 예술은 눈썰미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눈썰미가 예술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참 중요하더군요. 나한테 없는 건 늘 중요합니다. 나한테 있는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고...
 
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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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데, 난 이상한 습관이 있다. 주연보다는 조연이나 엑스트라에게 자꾸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았던 건, 그러니까 남들은 조연 내지는 엑스트라의 감정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건, 대학 1학년 때였다.

기숙사 친구들끼리 톰크루즈 주연의 영화 <탑건>을 보러 갔는데, 톰크루즈가 적군을 모두 물리치고 귀환하는, 웅대한 배경음악과 이글거리는 태양을 뒤로 하고 착륙하던 그 멋진 화면에서 난 전혀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못했다.
적국의 조종사들, 그러니까 단지 주인공의 상대편에 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자비한 폭격을 맞고 죽어야 했던, 그들도 자신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건만 관객들로부터는 죽어서 참 잘 된 인간들이 되고 만, 그 사람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내 이런 조연병?은 최근의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더 깊어져간다. 이젠 도저히 회복 불가능이다.)

다시, 탑건으로 돌아가서, 그때 친구들은 황당해했다. 기분 좋은 영화를 보고 왜 눈물을 짜는지 그들은 다소 난해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약대생이던 친구는 진지하게 심리상담을 권유하기도 했고, 특수교육과에 다니던 다른 친구는 그 순간 내가 다른 일로 기분이 울적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여하튼 그날 이후로 난 같은 문제로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의 뇌 구조가 바뀐 건 아니었다. 확실하게 선과 악이 구분되는 영화만을 골라봤고, 혹시 그런 느낌이 들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기분대로 움직이는 편이 서로를 편안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은희경이 소설 <마이너리그>를 출판했다는 얘길 듣자마자 난 도서구입 예정 목록 맨 위에 그 책을 올렸다. 나를 위한 소설인 것 같았다. 세상의 조연 혹은 엑스트라들의 이야기에 난 기대가 컸다. 나에게 조금만 문재가 있다면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그런 주제였다.(물론 요즘은 비슷한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봤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도 비슷했다.)

책을 잡으니 생각보다 쉽게 빨려들어간다(사실 그동안 은희경의 소설에 난 잘 몰입하지 못했다. 그동안 게시판에 끊임없이 추천되었던 은희경의 소설들을 애써 외면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58년 개띠인 4명의 고등학교 동창생(형준, 승주, 조국, 두환)과 그들 모두의 우상이었던 한 여학생(소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종일관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교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소설 속에서 일어났고, 그 시대의 굵직했던 사건들은 모두 담겨 있었다.
무협지 흉내만 잔뜩 내다가 어설프게 끝나는 폭력조직,
펜팔책을 베껴서 외국 학생들과 펜팔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베낄 책이 없어서 외국과 교류가 끊어지는 동아리인 국제펜팔부,
숙제를 해가지 않은 학생들에게 행해지는 온갖 종류의 고문(?)들과 모셔오라는 부모님 대신 나타난 중국집 주방장 아저씨까지...

비주류로서의 삶, 마이너리그에 속한 그들의 삶은 고등학교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에서, 군대에서,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까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없는 잔머리까지 굴려가며 최선을 다하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실소를 머금게 한다.

항상 소설을 읽으면서 마이너의 인생에 호기심을 표하던 나마저, 정작 그들을 대할 때는 마이너의 인생으로 사는 것이 그들에게 마땅한 세상의 배려라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소설은 객관성을 가장한 냉소를, 기분 나쁘지 않도록 유쾌한 문체로 무장하고 있었다.

권투선수로 얘기하자면, 맞으면서도 달려들던 김태식보다는 가벼운 풋웍과 재치있는 플레이로 상대방을 쉽게 제압하던 박찬희에 가깝다고나 할까.
(은희경 덕분에 나도 나의 유년시절을 기억해냈다. 아주 어렸을 때 난 프로권투의 팬이었다.)

나도 모르게 마치 그들은 마이너요, 나는 그래도 그들보다는 좀 낫다는, 그러니까 나는 메이저까지는 안된다고 하더라도 트리플 에이는 되지만, 그들은 더블 에이도 못될 것 같은 우월감까지 갖게 된다.
난 작가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갈수록,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통속적이지만 심오한 얘기들이 보인다.
그저 실소를 머금게 하는 것이 아니다. 책장을 덮었을 땐 나도 모르게 그들의 삶에 진한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인 그들의 삶에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사회적으론 조연급도 못 되는, 그러니까 거의 엑스트라 급인 그들이지만, 최소한 은희경의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이었던 그들 네 명의 삶을 느끼고 있었다.

한 인터뷰에서 보니, 어떤 독자들은 '당신이 남자들의 삶을 얼마나 아느냐', '58년 개띠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등등의 비난을 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혹은 자신의 세대가 마이너에 속한 것이 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은희경은 얘기한다.

'이 소설은 남자들의 세계에 대한 탐문이 아니다. 그냥, 사람의 이야기이다.
사람의 삶이란 저 자신이 알게 모르게 사회 속에서 모양이 만들어지고 구부러지고 닳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내게 주어진 여성이라는 사회적 상황은 한때 나로 하여금 남성성에 대한 신랄함을 갖게 했다.
이제 나를 세상의 남성과 화해하게 만든 것은 삶의 마이너리티 안에서의 동료애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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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6-02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너리그를 읽을 때, 한창 영화 <친구>가 뜨고 있었다고 기억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영화 속에서 책가방을 들고 질주하던 그 장면이 오버랩 되었지요.
지금은 기억에서 아득해졌는데, 책보다 호랑녀님 리뷰가 더 좋습니다.^^

호랑녀 2004-06-03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진우맘님이 늘 인심이 후하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칭찬들으니 좋습니다. 고맙습니다.(칭찬 맞쥬?)
이 리뷰는 사실 마이너리그가 출판되자마자... 읽고 쓴 건데, 한군데 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조금 손봐서 올린 겁니다.
 
기쁨에 온 몸을 맡겨라
M.H.테스터 지음, 박봉원 옮김 / 정신세계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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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쁨에 온몸을 맡겨 본 일이 있는가.
새벽에 나가는 남편을 배웅하고,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잠시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기쁨에 온몸을 맡기려고 했는데, 솔직히 어떤 일이 기뻤는지 기억에 없어서 앞으로 다가올 행복한 미래를 꿈꾸려고 노력했다. 그것도 30분쯤 하면 좋다는데, 30분쯤 지났다고 생각이 되어서 눈을 떠보니, 5분도 안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5분의 노력에 오늘 하루 종일 즐겁다. <기쁨에 온몸을 맡겨라>라는 책을 읽고 내가 실천에 옮긴 일 중 하나이다.

매일매일이 힘겹다고 느끼다가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난 뭐가 힘든가. 혹시 남들 다 하는 일 나만 하는 것처럼 유세를 떠는 건 아닌가. 요즘 세상에 애 셋 키운다고 대단하다 대단하다 그냥 말해주니까 나 스스로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건 아닌가.

남편 말처럼, 아이 예쁜 짓 혼자 다 보고 살고, 그렇게 방치해두어도 엄마라고 엄마가 눈길 한번만 주면 너무나 좋아하는 세 아이들이 있고, 일용직이나마 전공을 살려서 일을 할 직장도 있고, 게다가 가끔 소일거리 삼아 글 올릴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는데 도대체 뭐가 그리 힘든가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나만큼 복받은 사람 찾기가 어디 쉬운가.

<기쁨에 온몸을 맡겨라>라는 책은 남편이 먼저 읽었던 책이다.
친구가 책 여러 권을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정말 복이 많다. 이런 책을 선물한 친구도 있으니까.) 다른 비슷한 몇몇 종류의 책들 때문에 난 이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런데 제목이 기가 막히게 좋다고 남편이 이 책을 드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읽는다.

사실 남편과 나는 책 취향이 아주 다르다. 남편이 주로 보는 책은 실용서나 아니면 종교적인 책이다(그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법구경이다).
그래서 우리 집 책은 딱 두 파로 나뉘어 서로의 책꽂이에 별로 눈길을 줄 일도 없다.
그런데 남편이 내 책꽂이이에서 이 책을 발견해서 읽더니 다 읽고선 마치 자기 책인양 자기 자리에 놓는 것이다.(이렇게 말하니까 무슨 큰 서재에 책이 굉장히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데, 절대로 그런 건 아니다.)
전에 읽던 책을 한켠으로 미뤄둔 나는 순전히 그가 어느 대목에 줄을 그었는지 보기 위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옳은 소리만 해대는 책은 밥맛 없기 십상이다. 특히 요즘의 나처럼 세상에 꼬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땐 더 그렇다. 그 소리가 옳은지 누가 모르는가 말이다. 알고도 못 지키니 그게 더 속상해서 괜히 더 꼬이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별로 기분 나쁘지 않게 증세를 진단하고 처방하고 있다. 읽다 보면, 와, 이거 나를 보고 만든 책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얘기하고, 그 마음을 이겨내는 방법, 우주의 절대자와 영혼이 교감하는 방법을 얘기하고 있었다.

왜 자꾸 아플까?
뜻밖의 사고나 선천적인 질병도 있지만 대부분의 병은 정신적인 데서 기인한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자꾸 아픈 것은 자연스러움을 거스른 죄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뼈가 삐끗하거나 디스크 같은 병들도 모두 정신적인 데서 오는 것이다. 일이 엄청 쌓여 있는데 골프장에 갔을 때, 마음이 복잡하면 순간적으로 밸런스가 깨지면서 다치게 된다고 한다. 일리가 있다.
(나의 길은 왜 이렇게 가시밭길인지 모르겠다고, 한걸음 내딛으면 넘어지고, 겨우 일어나 또 한걸음 내딛으면 또 넘어진다는 노대통령도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그럼 건강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
매일 아침 30분씩 기쁨으로 온몸을 채우라고 얘기한다.
인간의 신경 체계는 외부의 신호에 정직하게 반응을 보인다. 그 신호란 마음가짐이다. 그 마음이 진실이든 가상이든 중요한 게 아니다. 그대로 느끼고 행동할 뿐이다.
자고 일어났을 때 갑자기 눈앞에 뭔가 헛것이 보일 때가 있었다. 누군가 우리 집 부엌에서 서랍을 뒤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난 수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일어난 기척을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바로 현관문으로 뛰어나가야 할 것인가. 다리에 힘이 쫙 빠지고 후들거리고 심장 박동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다시 보니 없어졌다. 아마 그림자였나보다. 아니면 가위에 눌렸거나.
다른 경우를 생각해본다.
몸이 물 먹은 솜처럼 축 쳐져서 그저 이부자리밖에 안 보일 때, 그때 만일 내가 응모한 글이 1등으로 당선되었다고 연락이 온다면? 아마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더라도 졸리운지도 모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당신의 몸은 당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비록 가상 현실이라 하더라도 몸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니 매일 아침 30분씩 정말 행복에 겨운 사람처럼 기쁨으로 온몸을 채운다면, 하루 30분씩만 아주 건강한 사람처럼 연기한다면 그날 하루종일 기쁘고 그날 하루종일 건강이 유지될 것이라고 책에서는 얘기한다.

우리 몸에는 자가 치유 능력이라는 신비로운 잠재력이 있다. 상처가 나면 더 이상 감염이 되지 않도록 소독만 해 두면 스스로 상처가 치료되는 것이 바로 그런 능력이다. 이런 자가치유력은 건강할 때 빠르고 효과 있게 발휘된다. 이렇게 건강하고 튼튼한 몸이 되려면 마음을 좋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구체적인 얘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성공은 어떻게 하면 얻어질 것인가, 돈을 '끌어들일' 수 있는 확실한 방법 뭐 그런 것들이다.

돈을 벌려면?

1. 돈에 대한 죄의식이나 돈이 하찮다는 생각을 버려라. - 언젠가 가진 재산이 너무 많아서 공직에서 쫓겨난 코미디도 있었지만, 돈이 많다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힘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2. 건전한 동기 부여를 하라. - 사고 싶은 물건의 목록 말고, 돈을 벌어야 하는 동기들을 적어 본다.

3. 당장 벌어야 될 금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쪽지에 기록하여 몸에 지니고 다녀라.

4. 목표를 달성했을 때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라.

5. 아침 저녁뿐만 아니라 할구에도 여러 번씩 목표를 적은 쪽지를 들여다보고 소리내서 읽어라.

6.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라.

7. 만나는 사람들에게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도움을 주어라. - 계산 없이, 자연스럽게, 봉사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처음엔 다소 황당했는데, 책을 읽다 보면 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내가 귀가 얇아서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외에도 이 책에서는 부자들의 비밀은 무엇인지, 그리고 위대한 철학자들이 도달한 공통된 결론은 무엇인지 얘기한다. - 답이 뭐냐구요? 다 얘기하면 안되니까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읽어보시길.

이 책의 기본 사상은 이런 것이다.
고통이나 질병은 하늘이 내린 벌이 아니다. 세상의 삶이란 영적 진화를 위한 교육과정이고, 고통이나 질병이라는 시험을 통해 영적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하느님이나 염라대왕이 지옥에 보내고 심판을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방금 끝마친 생을 돌아보면서 심판을 한다.
그러면서 다음 생에서는 고통을 많이 겪어 영적으로 진화를 하는 삶을 택할 수도 있고, 조금 쉬었다 가는 편안한 삶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제 이런 결론이 가능할까?

힘겹고 고통스럽다고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칠 게 아니라 나의 영적인 진화를 위한 과정이로구나 하면서 받아들이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항상 기쁨으로 온몸을 채우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계산 없이 봉사하고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라!
그에 필요한 것들은 진정으로 원하면 다 이루어진다.

갑자기 세상일이 단순해지면서 명쾌해지지 않는가.

한 친구를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부잣집 딸이라서 편하게 학교를 다녔는데(그렇다고 내가 고학을 하면서 다녔던 건 아니지만), 졸업을 하니 빵빵한 아버지 덕에 금방 취직을 했고, 지가 좋아하던 사람이랑 결혼을 했는데, 결혼 무렵 시댁도 갑자기 부자가 되어서 신년에 자식들 모아놓고 몇천 만원씩 나눠주더란다. 못 받을 줄 알았던 돈을 받았다고...
강남에 큰 아파트며 비싼 차는 친정에서 사주고, 시댁에선 가끔 목돈을 주고, 남편도 개업한 의사라서 돈도 잘 벌고... 게다가 그 친구는 예쁘고 착하기까지 하다(가끔 질투가 나는 우리는 그 친구의 착함이란 고생을 몰라 나오는 가진 자의 여유일 뿐이라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아마 그 친구는 이번 생이 쉬어가는 삶인 모양이다.
나는 힘겨운 만큼 영적으로 진화를 하고 있는 거다 생각하니, 갑자기 그 친구가 하나도 부럽지 않다.
너무 이기적이고 합리화한 발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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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양장)
이케다 가요코 구성, C. 더글러스 러미스 영역,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터인가, 큰아이가 굉장히 어두워졌다. 어릴 때는 나이에 비해 더 어른스러워서라고 주변에서 말하는 걸 믿었다. 그리고 어른스럽고 의젓한 큰아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가 7살 때, 서울에 이사와서 유치원에 넣었더니 유치원 담임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아이가 매사 비관적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선생님이 "오늘 재미있었어요?"하고 물으면,
애들은 다들 으레 "네!!!"하는 법인데,
이놈만 "아니요!" 한다는 거다.
무조건 딴지를 거는 스타일은 아닌 듯하고, 뭐가 재미없었느냐고 물으면 뭐 한 가지가 재미없었다고 대답한단다. 그러니까 열 가지 중 아홉 가지가 재미있었어도 한 가지가 재미없으면 이놈은 재미없는 것만 생각하는 것이다.
다행히 선생님이 큰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주셨고, 아이도 잘 따르는 편이어서 많이 나아졌다. 2학기가 되었을 때 최소한 유치원에서는 그런 태도가 많이 없어졌다.
그런데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선생님이 그런 대답을 싫어하는 듯하니 그냥 안 하는 것이지, 사실은 내내 그런 마음일지도 모른다.
한국이 4강에 들었다고 온 국민이 난리를 치면, 애들답게 좋아하고, 태극기도 좀 흔들고, 대~한민국도 외치고... 이런 게 정상 아닌가.
그런데, 우리 애는 "겨우 4등 안에 들었다고 이렇게까지 난리가 나요?" 라고 한다.
(쳇, 지는 받아쓰기 75점 맞아서 내가 놀랐더니 0점 맞은 애도 있어요 해놓구선...)
남편과 좀 심각하게 곰곰이 생각하면서, 문제는 우리에게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남편은 늘 아이들에게 "아빠 어렸을 땐 어땠는 줄 알아?" 이러면서 책에서나 봄직한 보릿고개 얘기, 학교도 안 가고 농삿일을 거들어야 했던 얘기... 들을 한다. 우리 애들처럼 행복한 애들이 없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다. 내가 어쩌다 애들 데리고 발레공연이라도 보러 가는 날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어김없이 그런 얘기들이 나온다.
어쩌다 한 번 간식으로 뭔가를 만들어주면 아예 아이들이 아빠에게 가서 "아빠 어렸을 때 얘기 또 해주셔야죠" 라고 먼저 말할 정도다.
세상에 그렇게 행복한 줄만 알았던 애들이 별로 안 행복해보이는 거다.

어쨌든, 왜 아이가 그렇게 매사 부정적일까 생각하던 차에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 책을 읽었다. 한동안 화제가 되면서 알라딘에서 주문을 했었는데, 그때 읽지 못했더니 책이 얇아 다른 책들 속에 파묻혀 있다 이제야 읽게 된 것이다.
유명한 책이라 이 내용은 아마 누구나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 글을 올려두었던 글을 이미 읽은 기억이 있다. 63억이 살고 있는 세계를 100명이 살고 있는 마을로 축소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얘기다.

52명이 여자이고 48명이 남자이고, 아이들은 30명, 어른은 70명, 그리고 그 중 7명은 노인이란다. 동성애자도 10명이나 되고, 기독교인이 33명이나 된다.
1명이 대학교육을 받았고, 2명이 컴퓨터를 가졌고, 14명은 문맹이란다. 자가용을 갖고 있으면 7명 안에 드는 부자이고, 6명이 전 재산의 59%를 가졌는데, 그 6명은 모두 미국인이란다. 그리고 영어로 얘기하는 사람은 겨우 9명이다.
양심과 신념에 따라 움직이거나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48명이나 된다. 공습, 폭격, 지뢰로 인해 다치거나 죽고, 무장단체의 강간이나 납치를 두려워하면서 사는 사람도 20명이나 된다.

책은 이렇게 끝맺는다.

그러니까 당신은
맛을 깊이 음미하며 노래를 부르세요
신나게 맘껏 춤을 추세요
하루하루를 정성스레 살아가세요
그리고 사랑할 때는
마음껏 사랑하세요
설령 당신이 상처를 받았다 해도
그런 적이 없는 것처럼
먼저 당신이 사랑하세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당신과 다른 모든 이들을
진정으로 나, 그리고 우리가
이 마을을 사랑해야 함을 알고 있다면
정말로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갈라놓는 비열한 힘으로부터
이 마을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갑자기 난 과연 내가 행복한가 묻는다.
난 1명만 나온 대학을 나왔고, 2명만 가진 컴퓨터를 가졌고, 7명만 가진 자동차도 가졌고(물론 남편 것이지만), 은행에 예금이 있는 8명 안에도 든다.
그런데 지금 행복한가. 입으로는 행복하다고 늘 얘기하지만,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늘 얘기하지만, 정말 마음 속에서 그렇게 바라고 있는가 말이다.
아이가 미래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핑계를 대면서 아이를 다그치는 것은 없었는지, 아이 앞에서 세상에 대한 불만을 얘기한 적은 없었는지,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하나를 갖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을 아이 앞에서 보인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본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늘 세상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해 얘기한 것, 80점이나(!) 맞은 받아쓰기에 대해 왜 20점 씩이나 점수를 맞지 못했는지 아이를 다그쳤던 것, 30분만 하기로 약속했던 컴퓨터를 2시간이나 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일주일 동안이나 컴퓨터를 못하게 가혹한 벌을 내렸던 것, 스스로 물건을 챙기지 못하는 것에 대해 도와주지도 않고 끊임없이 잔소리만 해댔던 것... 모두모두 반성한다.
가장 반성하는 것은 내가 힘들 때마다 큰아이라는 이유로 그 아이에게 너무 많이 의지했던 것이다. 겨우 8살짜리 아이에게 혼자 스스로 해주기를, 혼자 알아서 해주기를 난 늘 바래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아이가 아이답지 못하다고 걱정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모순인가 말이다.

(여기에 관해 언니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어떤 엄마는 네살짜리 아이에게 '네가 아이냐?' 하면서 다그치고, 또 어떤 엄마는 중학생을 데려와서도 '우리 아이가요~' 이렇게 말하는데, 그 차이는 큰애냐 막내냐의 차이란다. 네살이어도 큰 애는 아이가 아니고, 중학생이어도 막내는 아이란다.)
오늘 당장 갑자기 너무 행복에 겨워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은 되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늘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에 속하는지 생각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요즘 많이 힘들어하는 동서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

6천8백원, 인터넷서점에서 사면 5천원 남짓의 돈으로 이렇게 큰 행복을 선물해주는 형님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어? 동서는 행복한 줄 알아! 이렇게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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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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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면서 두 분만 사시는 시부모님께 연락이 왔다. 행여 자식들 걱정할까봐, 웬만해서는 편찮으신 얘기를 안 하시는 분들인데, 이번엔 좀 다급하셨나보다.

시동생이 살고 있는 광주에서 차로 1시간 반쯤 걸리는 곳에 두 분만 계시는지라 가끔 위급한 일이 발생할 때가 있다.
언젠가는 경운기에 부딪혀 심장 판막이 찢어지셨는데, 겉으로 보이는 게 아니니 한참을 방치하셨다가 우리가 가 봤을 때는 이미 간은 배 밖에서도 만져질 만큼 붓고, 폐에도 배에도 물이 차 있었던, 정말 조금만 늦었다면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셨다.
이번에는 길을 가시다 갑자기 팔다리에 잠깐 마비가 온 모양이다. 갑자기 모리 교수가 떠올랐다. 하필 바로 그 전날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막 다시 읽었던 터였다.
죽음도 아름답다고, 죽음이라는 것도 어차피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아름답게 늙고 그리고 죽고 싶다고 내내 생각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는데, 혹시 아버님이 모리 교수가 걸렸던 바로 그 루게릭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암담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네가 하면 스캔들이라더니, 모리 교수가 서서히 죽음을 준비해가는 과정은 아름다웠지만, 막상 내 가족이 매일매일 몸이 점점 굳어져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보다 더 잔인한 병이 없었다.

아름답게 죽고싶다고? 천만에. 난 죽기 싫었다. 내 가족 중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 자연스워야 할 사실이 싫었다. 싫고 좋고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머리는 잘 알고 있었지만, 가슴은 잘 모르는 모양이다.
모리 교수야, 이 책을 내기로 하고 미리 선인세를 받아 그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했다지만, 1년에 8천만원 가까이 들었다는 이 병의 병원비도 미리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정말 눈꼽만치도 관심을 갖지 못했던 희귀병에 걸려 투병하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고통과 외로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좀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면, 난 10여년 만에 정말로 절실하게 기도했다. 아버님이 그 병이 아니시라면, 다음부터는 희귀병에 걸린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언젠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기도를 하면서 뭔가 조건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그게 무슨 종교냐고 핏대를 세웠는데... 이성이 살아 있었다면 내가 그랬던 게 부끄러워서라도 그런 기도를 못했겠건만.... 난 정말 다급했었다.)

아직 검사중이시지만, 그보다는 훨씬 가벼운 근육염 정도인 것으로 의사는 소견을 말한다. 합병증이 오면 위험할 수도 있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약물치료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제 이성을 좀 찾고 보니, 어느 누구도 아버님이 그 병에 걸렸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진단하고 나 혼자 불치병을 만들어 혼자 기도하고 울고... 했던, 정신이 좀 나간 듯한 행동을 했던 것 같긴 하다. 모리 교수에게 너무나 빠져 있던 내가 일으킨 해프닝이었다면 해명이 될까?

어쨌든, 한번 잔인하게 느껴진 죽음은 좀체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미 남 얘기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다시 책을 집어본다.

"어느 교수의 마지막 강의 : 죽음"이라는 글귀를 읽으면서 느껴졌던 서늘함,
죽을 때까지 '위엄 있게, 용기 있게, 유머러스하게, 침착하게' 살기로 결정했다는 말,
열두 번째 화요일의 강의, "자신을 용서하게. 그리고 타인을 용서하게. 시간을 끌지 말게, 미치. 누구나 나처럼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야. 누구나 다 이런 행운을 누리는 게 아니지."라는 말......
피상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젠 가슴에 콕콕 박혀온다.

외국에서 오래 유학생활을 보냈던 언니는 가끔 그쪽 노인들에 관한 얘기를 한다.
미국에서 만났던 80대 변호사 부부. 변호사를 은퇴한 후, 무보수로 외국 유학생들을 위해 월급 없이 영어를 가르치거나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단다.
대학 내의 주차증 발급에서부터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 시내 지리 익히는 것까지 정말 모든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노인들이라 두 사람이 교대로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일년에 몇 차례인데, 큰 수술 앞에서도 늘 의연하고, 진심으로 서로를 따뜻하게 간호하고 방문객을 접대하는 것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한다.

'노인'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고집스러움, 말이 통하지 않음... 이런 이미지가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따뜻하고, 죽음에 대해서 의연한 그런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리라.
(결혼하고 마누라가 되면서, 며느리가 되면서, 엄마가 되면서 도를 닦는다고 닦았는데도 이 정도로는 어림이 없나보다.)

꼭 죽음 앞에서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면서 모리 교수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위엄 있게, 용기 있게, 유머러스하게, 침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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