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면서 두 분만 사시는 시부모님께 연락이 왔다. 행여 자식들 걱정할까봐, 웬만해서는 편찮으신 얘기를 안 하시는 분들인데, 이번엔 좀 다급하셨나보다.
시동생이 살고 있는 광주에서 차로 1시간 반쯤 걸리는 곳에 두 분만 계시는지라 가끔 위급한 일이 발생할 때가 있다.
언젠가는 경운기에 부딪혀 심장 판막이 찢어지셨는데, 겉으로 보이는 게 아니니 한참을 방치하셨다가 우리가 가 봤을 때는 이미 간은 배 밖에서도 만져질 만큼 붓고, 폐에도 배에도 물이 차 있었던, 정말 조금만 늦었다면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셨다.
이번에는 길을 가시다 갑자기 팔다리에 잠깐 마비가 온 모양이다. 갑자기 모리 교수가 떠올랐다. 하필 바로 그 전날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막 다시 읽었던 터였다.
죽음도 아름답다고, 죽음이라는 것도 어차피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아름답게 늙고 그리고 죽고 싶다고 내내 생각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는데, 혹시 아버님이 모리 교수가 걸렸던 바로 그 루게릭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암담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네가 하면 스캔들이라더니, 모리 교수가 서서히 죽음을 준비해가는 과정은 아름다웠지만, 막상 내 가족이 매일매일 몸이 점점 굳어져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보다 더 잔인한 병이 없었다.
아름답게 죽고싶다고? 천만에. 난 죽기 싫었다. 내 가족 중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 자연스워야 할 사실이 싫었다. 싫고 좋고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머리는 잘 알고 있었지만, 가슴은 잘 모르는 모양이다.
모리 교수야, 이 책을 내기로 하고 미리 선인세를 받아 그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했다지만, 1년에 8천만원 가까이 들었다는 이 병의 병원비도 미리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정말 눈꼽만치도 관심을 갖지 못했던 희귀병에 걸려 투병하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고통과 외로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좀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면, 난 10여년 만에 정말로 절실하게 기도했다. 아버님이 그 병이 아니시라면, 다음부터는 희귀병에 걸린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언젠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기도를 하면서 뭔가 조건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그게 무슨 종교냐고 핏대를 세웠는데... 이성이 살아 있었다면 내가 그랬던 게 부끄러워서라도 그런 기도를 못했겠건만.... 난 정말 다급했었다.)
아직 검사중이시지만, 그보다는 훨씬 가벼운 근육염 정도인 것으로 의사는 소견을 말한다. 합병증이 오면 위험할 수도 있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약물치료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제 이성을 좀 찾고 보니, 어느 누구도 아버님이 그 병에 걸렸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진단하고 나 혼자 불치병을 만들어 혼자 기도하고 울고... 했던, 정신이 좀 나간 듯한 행동을 했던 것 같긴 하다. 모리 교수에게 너무나 빠져 있던 내가 일으킨 해프닝이었다면 해명이 될까?
어쨌든, 한번 잔인하게 느껴진 죽음은 좀체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미 남 얘기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다시 책을 집어본다.
"어느 교수의 마지막 강의 : 죽음"이라는 글귀를 읽으면서 느껴졌던 서늘함,
죽을 때까지 '위엄 있게, 용기 있게, 유머러스하게, 침착하게' 살기로 결정했다는 말,
열두 번째 화요일의 강의, "자신을 용서하게. 그리고 타인을 용서하게. 시간을 끌지 말게, 미치. 누구나 나처럼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야. 누구나 다 이런 행운을 누리는 게 아니지."라는 말......
피상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젠 가슴에 콕콕 박혀온다.
외국에서 오래 유학생활을 보냈던 언니는 가끔 그쪽 노인들에 관한 얘기를 한다.
미국에서 만났던 80대 변호사 부부. 변호사를 은퇴한 후, 무보수로 외국 유학생들을 위해 월급 없이 영어를 가르치거나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단다.
대학 내의 주차증 발급에서부터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 시내 지리 익히는 것까지 정말 모든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노인들이라 두 사람이 교대로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일년에 몇 차례인데, 큰 수술 앞에서도 늘 의연하고, 진심으로 서로를 따뜻하게 간호하고 방문객을 접대하는 것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한다.
'노인'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고집스러움, 말이 통하지 않음... 이런 이미지가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따뜻하고, 죽음에 대해서 의연한 그런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리라.
(결혼하고 마누라가 되면서, 며느리가 되면서, 엄마가 되면서 도를 닦는다고 닦았는데도 이 정도로는 어림이 없나보다.)
꼭 죽음 앞에서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면서 모리 교수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위엄 있게, 용기 있게, 유머러스하게, 침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