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양장)
이케다 가요코 구성, C. 더글러스 러미스 영역,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터인가, 큰아이가 굉장히 어두워졌다. 어릴 때는 나이에 비해 더 어른스러워서라고 주변에서 말하는 걸 믿었다. 그리고 어른스럽고 의젓한 큰아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가 7살 때, 서울에 이사와서 유치원에 넣었더니 유치원 담임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아이가 매사 비관적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선생님이 "오늘 재미있었어요?"하고 물으면,
애들은 다들 으레 "네!!!"하는 법인데,
이놈만 "아니요!" 한다는 거다.
무조건 딴지를 거는 스타일은 아닌 듯하고, 뭐가 재미없었느냐고 물으면 뭐 한 가지가 재미없었다고 대답한단다. 그러니까 열 가지 중 아홉 가지가 재미있었어도 한 가지가 재미없으면 이놈은 재미없는 것만 생각하는 것이다.
다행히 선생님이 큰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주셨고, 아이도 잘 따르는 편이어서 많이 나아졌다. 2학기가 되었을 때 최소한 유치원에서는 그런 태도가 많이 없어졌다.
그런데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선생님이 그런 대답을 싫어하는 듯하니 그냥 안 하는 것이지, 사실은 내내 그런 마음일지도 모른다.
한국이 4강에 들었다고 온 국민이 난리를 치면, 애들답게 좋아하고, 태극기도 좀 흔들고, 대~한민국도 외치고... 이런 게 정상 아닌가.
그런데, 우리 애는 "겨우 4등 안에 들었다고 이렇게까지 난리가 나요?" 라고 한다.
(쳇, 지는 받아쓰기 75점 맞아서 내가 놀랐더니 0점 맞은 애도 있어요 해놓구선...)
남편과 좀 심각하게 곰곰이 생각하면서, 문제는 우리에게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남편은 늘 아이들에게 "아빠 어렸을 땐 어땠는 줄 알아?" 이러면서 책에서나 봄직한 보릿고개 얘기, 학교도 안 가고 농삿일을 거들어야 했던 얘기... 들을 한다. 우리 애들처럼 행복한 애들이 없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다. 내가 어쩌다 애들 데리고 발레공연이라도 보러 가는 날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어김없이 그런 얘기들이 나온다.
어쩌다 한 번 간식으로 뭔가를 만들어주면 아예 아이들이 아빠에게 가서 "아빠 어렸을 때 얘기 또 해주셔야죠" 라고 먼저 말할 정도다.
세상에 그렇게 행복한 줄만 알았던 애들이 별로 안 행복해보이는 거다.

어쨌든, 왜 아이가 그렇게 매사 부정적일까 생각하던 차에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 책을 읽었다. 한동안 화제가 되면서 알라딘에서 주문을 했었는데, 그때 읽지 못했더니 책이 얇아 다른 책들 속에 파묻혀 있다 이제야 읽게 된 것이다.
유명한 책이라 이 내용은 아마 누구나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 글을 올려두었던 글을 이미 읽은 기억이 있다. 63억이 살고 있는 세계를 100명이 살고 있는 마을로 축소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얘기다.

52명이 여자이고 48명이 남자이고, 아이들은 30명, 어른은 70명, 그리고 그 중 7명은 노인이란다. 동성애자도 10명이나 되고, 기독교인이 33명이나 된다.
1명이 대학교육을 받았고, 2명이 컴퓨터를 가졌고, 14명은 문맹이란다. 자가용을 갖고 있으면 7명 안에 드는 부자이고, 6명이 전 재산의 59%를 가졌는데, 그 6명은 모두 미국인이란다. 그리고 영어로 얘기하는 사람은 겨우 9명이다.
양심과 신념에 따라 움직이거나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48명이나 된다. 공습, 폭격, 지뢰로 인해 다치거나 죽고, 무장단체의 강간이나 납치를 두려워하면서 사는 사람도 20명이나 된다.

책은 이렇게 끝맺는다.

그러니까 당신은
맛을 깊이 음미하며 노래를 부르세요
신나게 맘껏 춤을 추세요
하루하루를 정성스레 살아가세요
그리고 사랑할 때는
마음껏 사랑하세요
설령 당신이 상처를 받았다 해도
그런 적이 없는 것처럼
먼저 당신이 사랑하세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당신과 다른 모든 이들을
진정으로 나, 그리고 우리가
이 마을을 사랑해야 함을 알고 있다면
정말로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갈라놓는 비열한 힘으로부터
이 마을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갑자기 난 과연 내가 행복한가 묻는다.
난 1명만 나온 대학을 나왔고, 2명만 가진 컴퓨터를 가졌고, 7명만 가진 자동차도 가졌고(물론 남편 것이지만), 은행에 예금이 있는 8명 안에도 든다.
그런데 지금 행복한가. 입으로는 행복하다고 늘 얘기하지만,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늘 얘기하지만, 정말 마음 속에서 그렇게 바라고 있는가 말이다.
아이가 미래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핑계를 대면서 아이를 다그치는 것은 없었는지, 아이 앞에서 세상에 대한 불만을 얘기한 적은 없었는지,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하나를 갖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을 아이 앞에서 보인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본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늘 세상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해 얘기한 것, 80점이나(!) 맞은 받아쓰기에 대해 왜 20점 씩이나 점수를 맞지 못했는지 아이를 다그쳤던 것, 30분만 하기로 약속했던 컴퓨터를 2시간이나 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일주일 동안이나 컴퓨터를 못하게 가혹한 벌을 내렸던 것, 스스로 물건을 챙기지 못하는 것에 대해 도와주지도 않고 끊임없이 잔소리만 해댔던 것... 모두모두 반성한다.
가장 반성하는 것은 내가 힘들 때마다 큰아이라는 이유로 그 아이에게 너무 많이 의지했던 것이다. 겨우 8살짜리 아이에게 혼자 스스로 해주기를, 혼자 알아서 해주기를 난 늘 바래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아이가 아이답지 못하다고 걱정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모순인가 말이다.

(여기에 관해 언니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어떤 엄마는 네살짜리 아이에게 '네가 아이냐?' 하면서 다그치고, 또 어떤 엄마는 중학생을 데려와서도 '우리 아이가요~' 이렇게 말하는데, 그 차이는 큰애냐 막내냐의 차이란다. 네살이어도 큰 애는 아이가 아니고, 중학생이어도 막내는 아이란다.)
오늘 당장 갑자기 너무 행복에 겨워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은 되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늘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에 속하는지 생각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요즘 많이 힘들어하는 동서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

6천8백원, 인터넷서점에서 사면 5천원 남짓의 돈으로 이렇게 큰 행복을 선물해주는 형님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어? 동서는 행복한 줄 알아! 이렇게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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