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우리교육 대담과 관련하여 며칠 전 한겨레에 실린 이수일위원장과 홍세화씨의 대담 "공교육개혁, 전교에 묻다"도 읽어봄직하다. 홍세화씨가 작정하고 대담에 나선듯해보이며, 적절한 문제제기였다는 생각이다. http://www.hani.co.kr/section-001065000/2005/03/001065000200503141727024.html

한 대목만 옮겨본다.

홍세화=개량적인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외유내강’의 논리가 필요하죠. ‘외유’는 ‘내강’일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사회 현실과 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 단단하고 투철할 때 긍정적일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포섭되는 과정일 뿐입니다. 지금 노동운동을 보더라도, 국가주의·권위주의에 저항하면서 일부는 시장주의 공세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잃고 헤매거나 시장주의에 포섭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외압에 대한 ‘저항’으로 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스스로 운동을 ‘생산’해내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투철하게 시장주의에 맞설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전교조 10만 조합원들이 사회에 대한 내적 성찰과 비판적 안목으로 단련이 되어있느냐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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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남한의 적지 않은 인사들이 지녀왔던 전쟁책임론에 대해, 진실이 밝혀진 뒤까지도 자기의 희망이나 선입관을 너무 고집하는 것은 지식인의 과학적 태도가 아니라고 봐요. 어차피 이승만도 분단된 민족을 통일하기 위해서 통일전쟁을 하려다 못한 것이고, 김일성은 같은 목적의 전쟁을 훨씬 더 치밀한 계획과 준비하에 감행했다는 차이뿐이지."...... "미국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이런 일까지 너무 고정관념으로 단정하는 일일랑 경계해야 해요. 좀더 과학적이어야 하지!"

 "그냥 막연한 이해로는 만족하지 못해. 한치의 오차가 있어도 건축물은 무너지니까. 그런식으로 치밀한 설계 위에 완전히 균형이 잡힌 조직체로 짜기도 하고, 정책이나 사물 관계나 구조물의 구성에 필수불가결한 재료들 즉, 논증자료를 찾아모아서 철저하게 해체,분해,해부해서 알맹이를 드러내지 않으면 멈추지 않는 기질이에요." [...] "자기 나름의 문제의식이나 분석방식 없이 남의 이론을 빌려서 자기의 권위로 이용하는 작태를 나는 멸시해요. 내 글에는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는 식이 없어. 정치이론도 사회비평도 다각도로 교차검증한 다음에 일단 소화하고, 내 머릿속에서 내 것으로 만들고, 충분히 반죽해서 자신의 누룩을 가미해서 발효시켜서, 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의식'이 없으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국제법을 몇십 년을 공부해도, 박사학위를 몇 개씩 받아도, 아무런 '회의'도 없이 그저 정부가 내놓은 대로만 '지식화'하면 영원히 무식자로 남을 뿐이라. 그것이 우리 교수들,전문가들,박사들의 실정입니다."

 "지금의 논의와 관련해서 제일 중요한 것인데, 미군은 핵무기의 직접적 원호를 받을 수 있는 상황아래서만 해외에 배치한다는 것이요. 그러니까 미군이 왔다거나 주군한다면 그 배후에는 핵무기가 와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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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우리교육]에 실린 대담이 화제였던가 보다. 드문드문 뛰어넘으며, 짜집기한 것이 맥락상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겠으나, 일부를 옮겨본다. 주요 논지는, 아이들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기존의 지식권력 구조를 바꾸지 못한 것이 참교육 담론을 멈춰서게 했다는 것, 공공성 개념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  변화된 아이들에게 맞게 지식의 목적을 주고, 새롭게 지식을 구성하고, 지식을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여, 학교교육의 체계를 새롭게 짜야한다는 것, 그리고 지금 시기에는 이것이 대정부 투쟁식의 교육운동보다 더욱 시급한 것이다라는 점이 아닌가 한다.  이에 대한 비판의 글 역시 나옴직 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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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 "...급속한 사회의 변화는 곧 아이들의 변화로 나타났지요. 교육이란게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건데 아이들의 근본적인 변화를 읽어내는 것에서 막힌 겁니다. 사실상 이 지점에서 참교육 담론은 멈춰섰다고 볼 수 있어요....결국, 근본적인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니까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들이 이해관계로 가 버린 것 같아요."
.......
김진경: "아이들의 변화가 굉장히 심각해서 당장에 교사들이 감당이 안되는 판인데, 이런 심각한 문제를 다룬 교육학 논문이 단 한편도 없다는 건, 교육과 관련된 기존의 지식권력 구조에 개혁이 너무나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솟아오르는 아이들의 변화를 끌어안고, 기존의 지식권력 구조를 변화시키는 개혁을 전교조 같은 데서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1990년대에 했어야 하는데 못한 거죠. 10년간의 공백이 굉장히 아쉬운 겁니다."

박복선: "...공공성이란 개념도 새롭게 바뀌어야 합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지금 교육운동에서의 공공성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가 운영하는 학교교육 체제를 공공성 그 자체로 보는 거죠..."
김진경: "...국민이 국가에 교육권을 위임했다, 국가가 그 교육권을 행사한다는 식의 권위적인 형태를 계속 공공성이라고 이야기하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헷갈려해요...기존의 논의를 넘어서려면 근대 산업사회형의 교육관 개념이 지금의 변화된 사회와 맞지 않는다는 걸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국민이 국가에 교육권을 위임해서 형성된 공공성 개념을 넘어서야지요."
박복선: "방금 말씀하신 부분이 교육운동 전체에 대한 고민 같기도 해요. 예컨대 처음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도 아직 우리는 모더니즘도 달성하지 못했는데 무슨 포스트모던이냐 하는 식의 단계론적 인식이 운동 진영에서 나왔거든요. 그리고 교육부문에서 시장 논리가 나오니까 국가권력을 통해서 그것을 제어하려는 생각이 강했어요. 교육운동하는 사람들의 그런 발상이 가져온 결과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데, 그런 것 가지고는 답이 안나온다는 게 문제지요. 기존의 것을 넘어서는 그림을 적극적으로 그려 내지 않으면 교사운동이나 교육운동이나 정말 할 일이 없어지는 겁니다. 저는 기존의 습성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
김진경: "...공공성이란게 결국은 아이들을 위한 공공성이어야 되는데 그게 무너져 있는 상태에서 교사들이 자꾸 공공성 지키자고 주장을 하면 자기 이해관계를 주장하는 것밖에 안돼요. 아이들을 위한 공공성이 철저하게 허구화되고 무너져 버렸는데 이것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이런 것들을 고민해 나가면 교사들의 지위도 거기서 보장받는 거거든요."

박복선: "교과모임도 교사운동이 가지고 있는 비슷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교과가 가지고 있던 자유 교양인 양성, 필수 소양으로서의 교과 이런 게 그동안의 교과를 떠받쳐 주고 있던 근거인데 이런 부분 역시 재개념화되어야 되겠죠. 교과모임의 최근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대안교과서 같은 것도 결국 기존의 교과관이나 운동관에서 나온 것이죠."...
김진경: "지금까지는 학교교육에서 지식 전수 기능이 굉장히 핵심적인 기능이었는데, 이것이 근본적인 위기가 맞닥뜨렸어요. 학교 지식에 대한 태도나 인식이 우리 세대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죠.......그러니까 지금 학교의 가장 근본적인 위기는 아이들에게서 지식 전수의 목적이 사라진 데 있는 거죠...기존의 틀이 깨졌으면 이제 변화된 아이들에게 맞게 지식의 목적을 주고, 새롭게 지식을 구성하고, 지식을 만드는 방법도 모색해야 하는 거죠. 요즘 많은 아이들은 마니아적인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아이들의 마니아적 기질에 지식에 대한 욕구와 적극성을 어떻게 연결시켜주느냐 하는 게 학교교육 체계를 새롭게 짜가는 데 핵심적인 지점 같아요. 그리고 아이들 자신들이 생각하는 진로를 중요시하고, 조기에 자기 진로를 탐색할 수 있게 학교에서 지도하는 게 굉장히 필요한 거겠죠. 진로교육이라는 고민 하에 학교교육과정이 전반적으로 다시 짜여야 하고, 국가수준에서 그런 고민이 이루어져야 되겠지요. 그리고 지역마다 아이들이 놓여져 있는 삶의 조건이나 학교에서 접근할 수 있는 맥락이 전혀 다르니까 그런 부분도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교사에게 교재 재편성권이나 평가 권한을 적극적으로 줘야겠지요."
박복선: "지금 말씀하신 게 핵심이고, 오늘 논의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교육은 결국 아이들이 정말 하고 싶은 것에서 시작해야 할 거에요.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아이들의 학습 동기를 어떻게 형성시킬 건가 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아이가 잘하고, 하고 싶은 것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조금 더 진지하고, 조금 더 깊이 있는 학습을 해 나갈 수 있는 통로를 계속해서 만들어주고 디자인해야 되겠죠.......그리고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개혁이 계속해서 실패했고 한계가 드러났다고 인정한다면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에너지를 조직해 학교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해요. 사실 그 역할은 교육운동이 해야 하는 거죠. 교사운동이 맡아야 하는 굉장히 중요한 과제이기도 한 거고요. 대정부 투쟁 식의 교육운동도 필요한 시기에는 꼭 해야 하겠지만, 교사들의 삶의 에너지가 학생들의 자기 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이끌어 내는 데 맞춰지도록 큰 물줄기를 돌릴 필요는 있어요. 그게 아마 지금 시기 교사운동의 가장 큰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출처: [우리교육] 2005.02. 대담_김진경, 박복선, "교육운동, 새로운 화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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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이 결국 누군가에 의한  "선택"과 "배제"겠지만, 이젠 이 정도는 자연스럽게 "공적인" 학교 안으로 들어와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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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교섭,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뒷북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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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위원장 선거를 준비하는 노동자들이 고민을 전해왔다. 나이 많고 근속연수가 오래된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명예퇴직과 자녀들의 취업을 맞바꿀 것을 바라고 있는데 그것을 선거공약에 포함시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정년퇴직을 앞둔 직원들이 자신들의 자녀가 그 회사에 취업할 때 우선권을 부여하라고 회사에 요구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 노동조합 간부는 “그것이 요즘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요구하는 최대 요구사항”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11월 비정규직노조 간부들이 서울 국회도서관 증축 공사장에 설치된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문석기자
실제로 노사간에 “동일한 조건일 경우 (일정한 요건을 갖춘) 직원의 피부양 가족을 우선 채용한다”는 단체협약 규정을 체결한 기업들도 있고, 그러한 명문 규정은 없더라도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 직원 자녀에게 유리한 조건을 적용하는 관행을 마치 미풍양속처럼 지키고 있는 기업들도 많다.

요즘처럼 청년실업이 심각한 시대에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노동자라면 당연히 자녀의 취업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자녀 우선 채용 요구”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

그 요구를 노동자에게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해보자. 정부가 국가유공자 자녀에게 일정한 혜택을 주는 것이나 산업재해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자녀에게 그 회사에 취업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처럼 한 회사에서 오랜 세월 열심히 일하며 회사 발전에 기여한 직원의 자녀에게 그 정도의 혜택을 주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회사로서는 회사 직원들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것이 그 회사의 특징과 사정을 훤히 알고 취업을 원하는 사람을 선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으니 향후 인사노무관리에 유리한 측면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한 대상의 권리를 보호할 때에는 항상 그 권리가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것은 모든 ‘권리’에 따르는 바뀔 수 없는 명제다. 발명에 대한 특허권조차 그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다른 이들이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할 때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조합원 자녀 우선 채용 규정이 다른 사람들의 직업 선택 권리를 박탈하는 대표적인 상황은 직원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져 있는 사업장에서 정규직만 노동조합원 자격을 갖는 경우이다.
정규직 사원이 정년퇴직할 때 자신의 자녀를 그 회사에 취업시킬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그 정규직 노동자 가정에는 커다란 혜택이 되겠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정규직의 부당한 ‘세습’이나 다름없다. 비정규직 노동자 자녀들의 취업 가능성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이다.

강한 존재와 약한 존재가 대립하는 갈등 구조에서는 대개 약한 쪽의 권리가 강화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할 때가 많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대립할 때처럼…(“인사·경영권까지 간섭하는 대기업 노조가 약한 존재인가?”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부분 대기업 노조도 자본과 맞서는 관계에서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아주 소수의 노조가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구조에서는 비정규직의 권리가 보호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본질적인 책임은 상대적으로 나은 대우를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경영자에게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동일한 노동조건을 적용한다면 비정규직 차별이란 문제가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엄연한 차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자녀가 취업 우선권을 갖기를 바라는 것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만일 공정하게 신입사원을 채용할 수 있는 방안이나 제도의 확립도 없이 지금 당장 단체협약의 그런 조항들을 폐기한다면 현재의 기업 풍토에서는 회사 관리직 사원이나 인사노무 담당자나 지역 유력인사나 (하청회사의 경우) 원청회사 직원의 추천을 받은 자들만 취업하는 꼴이 될 것이 뻔하고, 그렇게 취업한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니 노동조합은 조직력 방어의 차원에서도 그 권리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올바로 판단할 능력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할 능력을 우리나라 어느 제도권 교육과정에서도 제대로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정규수업시간에서부터 노사관계를 가르친다. 교과서에서 노사관계에 대하여 “가족관계를 제외하고 인간이 자기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관계”이며 “민주주의와 공동결정”의 장이라고 정의한다.

그 말이 백번 맞는다.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생활 그 다음이 직장생활이다.
실제로 가정에서보다 회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실에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장차 노동자가 되는 사회에서는 학교의 정규수업 과정에서부터 노사관계에 대해 중요한 비중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2002년 9월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삼호중공업 노조원들이 경찰과 대치한 채 대주주인 정몽준의원이 직접 나서 노사분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독일 중등학교 사회과목의 한 교과서에서는 모두 340쪽의 분량 중에 93쪽을 노동교육에 할애하고 있다. 청소년 실업에 관한 내용만 29쪽이나 되는 교과서도 있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내용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사실들”을 토론 주제로 다룬다. 독일 금속노조와 사용자단체가 체결한 임금협약, 금융노조와 사용자단체가 체결한 기본협약 등과 함께 노동조합이 발표한 성명서, 노동문제에 대한 신문기사 등이 수록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학년에서부터 ‘모의노사교섭’이 일상화된 특별활동으로 자리 잡혀 있어, 기업 경영에 관한 각종 자료들이 주어지면 학생들이 스스로 경영자 대표들을 뽑고 노동조합 대표들을 뽑아 임금협상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적정한 임금인상률에 대한 고민과 그 단체협약이 노동자의 삶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판단을 초등학교에서부터 경험하는 것이다.
한 사회과 교과서에서는 모의노사교섭을 모두 6회에 걸쳐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교사와 함께 모의노사교섭을 벌이고 있는 사진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독일 한 나라만 예로 들었을 뿐이지,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마찬가지이다. 궁금한 분들은 한국노동교육원이 발행한 400쪽이 넘는 보고서 “선진 5개국 학교노동교육실태”를 참고하기를 권한다.

그런 나라에서는 단체협약에 직원들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노동조합 조직 보호와 노동자의 구매력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직업 선택 자유를 박탈하거나 평등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판단을 제도권 교육 과정 속에서 이미 경험한 뒤에 노동자가 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노동자가 되는 사회와 노동에 대한 아무런 개념 정립도 없이 노동자가 되는 사회의 노동운동은 같을 수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도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노동문제에 대해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문제에 대해 올바른 인식이 사회에 자리 잡히면 치명적인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종강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출처>: http://wwr.khan.co.kr/series/index_column.html?mode=art_view&series_id=100006&art_id=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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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에서 인류의 자손들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성인(부모)들이 처해 있는 여러가지 사태로부터 생긴 필요와 이해타산, 그리고 부모나 자손들을 지배하고 있는 국가권력이나 지배계급의 요구와 이익에 의해 교육되어왔다는 사실, 특히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는 사실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인류의 자손들은 오랜 동안 전쟁을 위해, 즉 인간끼리 죽이는 것을 교육받아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했다......그리고 국가교육이라든가 의무교육제도라고 하는 근대교육이 자랑하는 제도도 결국은 이러한 전쟁을 위해, 일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에 불과한 것임을 사실(史實)로써 분명히 밝히려했다...이런 슬픈 역사 속에도 올바른 교육을 하려는 노력, 전쟁 없는 평화, 그리고 민중의 불행을 점차 없애고 모든 민중을 행복하게 하는 교육을 하려는 것, 그 위력이야말로 어린이와 모든 성인들의 행복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교육사(敎育史)상의 사실(事實)에 근거하여 서술하려 한다. 이것이 이 책의 개요이다."

 1. "성년식은 인류의 자녀들이 부모들이 구성하고 있는 공적 집단조직에 의해, 그 족장의 권위에 의해, 말하자면 공공(公共)적으로 행하는 제도로서 계획적으로 교육된 최초의 사례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공공제도로 교육이 이루어진 것은 집단이, 즉 성원 각자가 생존하기 위해 음식물을 만들기 위한 일상적 노동 외에 자연이나 다른 집단과 격렬하게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공동으로 대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공동으로 방위할 필요가 생기고 따라서 자녀를 부모의 자연양육에 맡기지 않고, 즉 모친의 손에서 자녀를 뺏어내 국가적 권력 밑에 두고 그 권력으로 강제교육시킬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성년식은, 말하자면 최초의 의무교육제도이다. 의무교육제도라는 것은 그 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항상 이와 같은 성년식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2-1. “누군가 계획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원시의 자연상태로부터 부족사회의 전원이 한명도 빠짐없이 조직적인 교육을 받는 전민(全民)교육을 거쳐, 소수의 지배계급만이 지배권력의 유지를 위해 교육받는 단계가 되는, 이것이 고대 국가의 성립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교육제도의 발자취였다.”
2-2. “......이리하여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일만하는 부류와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머리만 짜는 부류가 분명하게 구별되게 된다. 이것은 인류 지성의 역사와 교육의 역사에서 상당히 중대한 전기(轉機)였다. 이때부터 인간은 소수의 지자(知者), 곧 생각하는 사람과 다수의 무지자(無知者), 곧 생각하지 않고 일만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졌다고 볼 수 있다. 노예제 사회 혹은 고대 국가라고 하는 사회는 바로 이런 사회였다.”
2-3.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널리 볼 수 있는 사실, 곧 국가권력에 의한 서민대중의 학교교육 보급이 계획적으로 된 것은 국가통일을 위한 정신적 기준인 이데올로기와 신앙 통일을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엘리트 학교교육은 지배 기구의 충실한 관료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고, 설령 서민에 대한 학교교육이 국가정책으로 강행되었다 해도, 그것은 지배당하는 서민대중을 순종시키는 신앙을 통일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고대 제국의 국가 차원의 교육은 국가권력을 위한 하나의 기관이었다.”

 3-1. “세계사적으로 볼 때 12-13세기 유럽의 상업 경제의 발달은 앞서의 상업발달과 달리 전세계의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준, 구미 자본주의의 단초를 연 것으로 상당히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3-2. “자유도시의 시립학교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이것은 후에 발달한 근대국가의 공교육제도와 의무교육제도와는 근본적으로 입장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위로부터 민중을 어딘가로 끌고 가려고 하는 제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시민의 편익에 봉사하기 위한 제도였던 것이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그 같은 상공자유시의 면목을 볼 수 있는 것이다.”

 4. “근대적인 자연과학과 기술의 기초를 배양하기 위한 학교가 동시에 신화를 가르치고 충효인의를 가르치며, 진보적 세력을 방지하는 보루로서의 임무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러한 사태의 추이를 우리는 거의 모든 절대주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5-1. "농민의 대부분이 노예도 아니고 자작농, 혹은 임금노동자도 아닌 소작농(아직 신분적으로 해방되지 않아 농노라고 불리는 단계까지를 포함하여)이었던 시대, 그것이 소위 봉건사회의 전형적인 형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소작인들로 하여금 순종적이고 근면하며 폭동을 일으키지 않고 나쁜 것은 보지 않고 착실하게 일하여, 어김없이 연공을 바치는 선량한 농민으로 묶어두기 위해서 힘으로 누르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현명한 영주들은 농민을 그러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교화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거기에 힘을 기울였다."

5-2. "중산계급은 상업도시가 발생한 이래 수백 년 동안의 유럽에서 점차 생겨나 이윽고 이 계층, 특히 중산생산층이라고 부르는 계층 가운데에서 후일의 산업자본가가 나타나 근대자본주의의 담당자가 되는 것이다. 유럽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그러한 계층이 성립하고 있었다." ; "그들의 교육장소는 가정과 도제생활을 하는 작업장이었다. 학교는 그저 잠깐 동안 다녔고 그곳은 초보적인 읽고 쓰기를 배우는 기관일 뿐으로, 그들의 인간형성에 학교가 담당하는 역할은 극히 작은 것에 불과했다......신앙이나 도덕, 직업적인 기능 그리고 여러가지 취미나 교양 등은 모두 가정생활이나 도제생활,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난 후에는 혼자서 얻었던 것이다."

5-3. "...특히 농촌의 어린이들의 교육은 중세 이후 수백년 동안 거의 같은 정황에 처해 있었다. 농촌의 어린이들도 간간이 학교교육을 받고는 있었으나 그 학교라는 것이 대단히 허술하였고, 봉건적인 분위기에 가득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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