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에서 인류의 자손들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성인(부모)들이 처해 있는 여러가지 사태로부터 생긴 필요와 이해타산, 그리고 부모나 자손들을 지배하고 있는 국가권력이나 지배계급의 요구와 이익에 의해 교육되어왔다는 사실, 특히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는 사실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인류의 자손들은 오랜 동안 전쟁을 위해, 즉 인간끼리 죽이는 것을 교육받아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했다......그리고 국가교육이라든가 의무교육제도라고 하는 근대교육이 자랑하는 제도도 결국은 이러한 전쟁을 위해, 일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에 불과한 것임을 사실(史實)로써 분명히 밝히려했다...이런 슬픈 역사 속에도 올바른 교육을 하려는 노력, 전쟁 없는 평화, 그리고 민중의 불행을 점차 없애고 모든 민중을 행복하게 하는 교육을 하려는 것, 그 위력이야말로 어린이와 모든 성인들의 행복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교육사(敎育史)상의 사실(事實)에 근거하여 서술하려 한다. 이것이 이 책의 개요이다."
1. "성년식은 인류의 자녀들이 부모들이 구성하고 있는 공적 집단조직에 의해, 그 족장의 권위에 의해, 말하자면 공공(公共)적으로 행하는 제도로서 계획적으로 교육된 최초의 사례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공공제도로 교육이 이루어진 것은 집단이, 즉 성원 각자가 생존하기 위해 음식물을 만들기 위한 일상적 노동 외에 자연이나 다른 집단과 격렬하게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공동으로 대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공동으로 방위할 필요가 생기고 따라서 자녀를 부모의 자연양육에 맡기지 않고, 즉 모친의 손에서 자녀를 뺏어내 국가적 권력 밑에 두고 그 권력으로 강제교육시킬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성년식은, 말하자면 최초의 의무교육제도이다. 의무교육제도라는 것은 그 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항상 이와 같은 성년식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2-1. “누군가 계획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원시의 자연상태로부터 부족사회의 전원이 한명도 빠짐없이 조직적인 교육을 받는 전민(全民)교육을 거쳐, 소수의 지배계급만이 지배권력의 유지를 위해 교육받는 단계가 되는, 이것이 고대 국가의 성립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교육제도의 발자취였다.”
2-2. “......이리하여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일만하는 부류와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머리만 짜는 부류가 분명하게 구별되게 된다. 이것은 인류 지성의 역사와 교육의 역사에서 상당히 중대한 전기(轉機)였다. 이때부터 인간은 소수의 지자(知者), 곧 생각하는 사람과 다수의 무지자(無知者), 곧 생각하지 않고 일만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졌다고 볼 수 있다. 노예제 사회 혹은 고대 국가라고 하는 사회는 바로 이런 사회였다.”
2-3.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널리 볼 수 있는 사실, 곧 국가권력에 의한 서민대중의 학교교육 보급이 계획적으로 된 것은 국가통일을 위한 정신적 기준인 이데올로기와 신앙 통일을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엘리트 학교교육은 지배 기구의 충실한 관료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고, 설령 서민에 대한 학교교육이 국가정책으로 강행되었다 해도, 그것은 지배당하는 서민대중을 순종시키는 신앙을 통일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고대 제국의 국가 차원의 교육은 국가권력을 위한 하나의 기관이었다.”
3-1. “세계사적으로 볼 때 12-13세기 유럽의 상업 경제의 발달은 앞서의 상업발달과 달리 전세계의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준, 구미 자본주의의 단초를 연 것으로 상당히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3-2. “자유도시의 시립학교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이것은 후에 발달한 근대국가의 공교육제도와 의무교육제도와는 근본적으로 입장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위로부터 민중을 어딘가로 끌고 가려고 하는 제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시민의 편익에 봉사하기 위한 제도였던 것이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그 같은 상공자유시의 면목을 볼 수 있는 것이다.”
4. “근대적인 자연과학과 기술의 기초를 배양하기 위한 학교가 동시에 신화를 가르치고 충효인의를 가르치며, 진보적 세력을 방지하는 보루로서의 임무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러한 사태의 추이를 우리는 거의 모든 절대주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5-1. "농민의 대부분이 노예도 아니고 자작농, 혹은 임금노동자도 아닌 소작농(아직 신분적으로 해방되지 않아 농노라고 불리는 단계까지를 포함하여)이었던 시대, 그것이 소위 봉건사회의 전형적인 형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소작인들로 하여금 순종적이고 근면하며 폭동을 일으키지 않고 나쁜 것은 보지 않고 착실하게 일하여, 어김없이 연공을 바치는 선량한 농민으로 묶어두기 위해서 힘으로 누르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현명한 영주들은 농민을 그러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교화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거기에 힘을 기울였다."
5-2. "중산계급은 상업도시가 발생한 이래 수백 년 동안의 유럽에서 점차 생겨나 이윽고 이 계층, 특히 중산생산층이라고 부르는 계층 가운데에서 후일의 산업자본가가 나타나 근대자본주의의 담당자가 되는 것이다. 유럽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그러한 계층이 성립하고 있었다." ; "그들의 교육장소는 가정과 도제생활을 하는 작업장이었다. 학교는 그저 잠깐 동안 다녔고 그곳은 초보적인 읽고 쓰기를 배우는 기관일 뿐으로, 그들의 인간형성에 학교가 담당하는 역할은 극히 작은 것에 불과했다......신앙이나 도덕, 직업적인 기능 그리고 여러가지 취미나 교양 등은 모두 가정생활이나 도제생활,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난 후에는 혼자서 얻었던 것이다."
5-3. "...특히 농촌의 어린이들의 교육은 중세 이후 수백년 동안 거의 같은 정황에 처해 있었다. 농촌의 어린이들도 간간이 학교교육을 받고는 있었으나 그 학교라는 것이 대단히 허술하였고, 봉건적인 분위기에 가득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