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리뷰를 쓸까하다, 그냥 아래의 글을 퍼왔다. 아이들이 인간으로서 갖는 여러 권리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아이들의 삶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어른들, 특히 교사들이 아이들의 '인권'을 올바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도 이 조약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 권리가 있고 어른들도 역시 이 권리들에 대해 배워야 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4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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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뚝딱뚝딱 인권짓기

대학원 근처에 가본 적이 없어서, 말하자면 석박사가 아니라서 대학의 정규 강의엔 거의 갈 일이 없다. 주로 총학생회 같은 곳에서 여는 강의를 할 뿐이라 몇 해 전 음악원(한예종)에서 '음악과 사회'라는 강의를 진행한 건 좀 특이한 일이었다. 음악이론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만나는 것도 흥미롭고 강의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니 나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엔 혼자 진행하려 했으나 좀 더 풍부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은 마음에 세 번인가 사람을 불러 진행했다. 그 중 하나가 인권운동사랑방의 배경내 활동가다. 그러나 소개말을 하고 학생들 틈에 끼어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혹은 대개의 우리가 인권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경내’가 워낙 강의를 잘하기도 한다.)

다음날부터 나는 인권 관련 책을 구해 읽고 모자란 건 활동가들을 귀찮게 해가며 ‘인권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인권을 누리려면 인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진보적인 인권운동이야말로 진보운동의 가장 풍성하고 치밀한 방식일 수 있다(진보적 생태운동이 그렇듯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들을 살펴보길. 아, 곧 인권영화제도 열린다.)

고래가그랬어를 구상할 때 ‘인권 꼭지’를 가장 먼저 생각한 건 당연했다. 고래는 인권교육만화(뚝딱뚝딱 인권짓기), 인권 상담(고민 있어요), 인권 토론, 해서 세 개의 인권 관련 꼭지를 갖고 있다. 그 가운데 메인 꼭지인 '뚝딱뚝딱 인권짓기'가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왔다. 배경내, 김영원 등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글을 쓰고 윤정주 씨가 그림을 그린 ‘만화 인권교과서’다. 책은 내가 '펴낸이'라 찍힌 게 명예로울 만큼 근사하다.

아이나 조카를 위해, 그보다 먼저 스스로를 위해 한권쯤 구해 보길 권한다. 온 식구가 돌려 읽은 다음 다른 식구에게 빌려주어도 좋을 것이다. 아이의 학급이나 도서관에 보내주거나 형편이 좋지 않은 공부방이라면 슬그머니 몇 권 보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낱권은 알라딘이 편하고, 혹시 열권 넘게 필요하거나 '공감할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엔 담당자에게서 좀 더 싸게 구할 수 있다.


인권하루소식 기사
한국일보 기사
한겨레 기사
부산일보 기사
오마이뉴스 기사

출처: http://gyuhang.net/archives/2005/04/19@01:09A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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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자본주의 경제이론의 수립자 스미스는 [...] 공장제 생산에 의해 생겨나기 시작한 몸과 마음의 불건강을 방지하고, 또 사회불안에 의해 생겨나는 폭동이나 반역의 지도자에 대한 노동자의 부화뇌동을 예방하기 위해서 노동자를 계몽할 필요가 있다는 두 가지 새로운 관점에서 노동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6-2. "자본주의 생산의 발전에 따른 노동자 및 그 자식들의 정신적, 신체적 타락과 불행이 노동자교육, 노동자 자녀의 교육이라는 문제를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일요학교, 자선학교, 모니터시스템(조교법), 맬서스 [인구론]의 교육론 들.

6-3. "모든 아동에 대한 공공,무상교육, 현재와 같은 방식의 아동 공장노동의 철폐, 교육과 물적 생산의 결합."- 마르크스. [공산주의선언]

6-4. "결국 마르크스는 산업혁명에 의해 낡은 가족주의와 가족 본위의 교육은 소멸해가고 그를 대신하여 사회적 노동의 장으로서의 대공장이 인간교육의 장이 된다는 역사법칙을 간파한 것이다." ; "페스탈로찌가 가족노동에 의지하고 기대했던 교육적 기능(서로 나이가 다른 가족들이 결합하여 함께 일하면서 인간적 교양과 기술적 능력을 익혔던)을 마르크스는 공장노동에 의지하고 기대하였으며 또 가족노동이 인간형성의 지배적인 장이었던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인간의 형성이 그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며 또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사회적 제기능 중 어느 한 부문에 고정되어 그 일에만 숙달되어 있는 인간 대신에 이제 여러가지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교대로 담당하여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전면적으로 발달한 인간이 요구될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하여, 마르크스는 "종합(또는 총합)기술교육Polytechnische Bildung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시킨 새로운 과학,기술교육을 학교의 사명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7-1. "전체 민중의 취학은, 하층노동자 빈곤의 해소와, 자본주의의 발전- 결국 제국주의 단계로의 발전 -에 의해 대량으로 숙련노동자가 필요하게 되고 교양있는 군대가 필요하게 되면서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7-2. "단지 하나의 의무교육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다종다양한 의무교육이 있었다. 그것은 옛날에는 민중의 신앙을 지배권력이 인정하는 종교로 통일하기 위해서 만든 제도였다. 또한 그것은 어떤 시대에는 농민의 자녀들을 순종적이고 폭동을 일으키지 않으며 지긋이 참고 일하는 농민으로 만들기 위해서 계획되었다. 그후 시민혁명의 시대에는 새로운 민주적인 정치사회(직접적으로는 의회정치)를 목적한 대로 운용해나가기 위해서는 모든 민중이 지적으로 계몽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지에서 그러한 의무교육제도가 실시되었다. 그리하여 네번째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19세기의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기에 나타났던 의무교육제도는 말하자면 자본가의 이익과 임노동자의 이익, 그리고 그 자녀들의 행복을 고려하여 주장하는 두 가지 입장의 교차점으로 발생했던 제도였다. 자본가와 이러한 자본가들을 위해서 미래의 일을 계획하는 경우에 자본가의 입장에 서 있는 지식인들은 문맹 노동자가 없도록 하는 편이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의무교육제도를 주장했으며 지지했다. 노동자계급의 지도자들은 노동자계급 해방에 일익을 담당하는 것으로서 자녀들의 완전취학을 권리로서 요구하였다."

 8-1. "하층 민중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온정을 갖고 시작되어 계속 추진되어왔던 소년노동의 제한과, 대중적 보통교육제도를 수립하려는 노력의 시도는 지나고, 이제 관심은 제국주의의 하사급 일꾼을 양성할 수 있는 중등교육에 눈을 돌리기에 이르렀다. 특히 세계를 무대로 공업제품의 시장경쟁이 격화됨에 따라서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우수한 상품을 대량으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떨어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과학을 열심히 하여 뛰어난 기술을 몸에 익힌 하사관급의 노동자를 충분하게 길러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한 일이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산업계의 요청으로 추진되던 중등산업교육 진흥이 자본주의 열강의 교육정책으로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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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소개된 글한편을 꺼내 읽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교사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교원노조"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설명하는데 다음의 구절이 하나의 이유로나마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까?  (교원노조운동의 "성격"정립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라도)

"교사들이 왜 이러한 노조유형의 조직을 만드는가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교사들은 교수법이나 교육내용의 개선을 위하여 여러 다양한 종류의 토론조직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러한 학문적 요구 이상의 어떤 목적 때문에도 조직을 필요로 한다. 곧, 교사들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능률적이고 진보적인 조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또한 학교를 교육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맞서서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보호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교육행위를 기계적 전달의 노예행위로 전락시킬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조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그 많은 교육에 관련된 핵심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다른 어떤 조직도 교원노조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적이 없다."

출처: 존듀이. 강승규역.  "나는 왜 교원노조에 가입하였는가". [우리교육]. 1992년 1월.

참고로 "FBI 비밀문건"에 실렸던 듀이(문건에는 이름이 삭제되어있음)의 신체특징은 아래와 같으며, 그는 1916년 결성된 미국교원노조연맹(AFT)의 가입등록 제1호였다고 한다.

나이:     83세
출생:     버몬트 버를링톤 1859년 10월 20일생
주소:     뉴욕시 서부 89번가 1번지
체격:     키 크고 마름
눈동자:   검은색
머리모양: 부주의하게 빗어넘긴 회색 머리카락
외양:     단정치 못한 옷 차림
태도:     내향적이고, 온화한 태도, 신사적임
안경:    착용
말투:     단조로운 말투
수염:     늘어진 코밑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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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티키Kon Tiki>를 기억해두고자 아래의 서평을 옮겨둔다. 아울러 다음의 말도 함께, "학교 역시 그곳에 콘티키호의 모험가들을 지니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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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콘티키>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잉카문명의 흔적을 찾아서 남태평양을 건너는 이 이야기는 꿈과 낭만을 잃어버린 현대인을 놀라운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 책은1948년 초판이 나온 뒤 스웨덴어, 네덜란드어, 핀란드어, 독일어, 덴마크어, 이탈리아어, 영어 등 수많은 언어로 번역돼 전세계적으로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미국에선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필독서로 추천되고 있다.

필자는 50년대 일본 유학시절 이 책을 처음 접했다. 그때 다음 장면이 궁금해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새웠던 기억이 새롭다. 잉카의 전설을 입증하기 위해 9개의 뗏목에 목숨을 맡긴 채 태평양의 망망대해를 건너가는 그들의 용기에 사뭇 압도되었고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펼쳐지는 모험은 내 상상력의 한계를 넘는 것이었다.

이 책 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저자를 비롯한 6명의 동료들이 1천5백년전 페루에서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폴리네시아로 간 태양신의 이름을 따서 붙인 뗏목 콘티키호를 타고 1947년 4월28일 페루의 카야오항을 출발해 8월7일 동폴리네시아 군도에 도착하기까지 1백1일간의 항해일지다.

이 책은 여행기이면서도 소설 못지않은 흥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모험이 보통사람이 가질 수 있는 상상의 정도를 넘어서기 때문일 것이다. 곁들인 사진도 생생해서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저자 헤이에르달은 페루에 살던 신비스런 태양신 `비라코차`에 대한 잉카의 전설을 알게 되면서 페루의 문화로부터 폴리네시아의 종족신 티키의 기원에 대한 여러 자취를 발견했다. `비라코차`는 콘티키의 다른 이름이다. 콘티키는 페루 중서부 티티카카호반에 거대한 유적을 남긴 잉카의 태양신이다. 헤이에르달은 콘티키가 동태평양 제도의 주민들이 그들의 시조로 받드는 태양의 아들 티키와 같은 인물이라고 확신했다.

마침내 그들은 옛 페루 인디언들의 뗏목과 똑같은 뗏목으로 태평양을 건넜다. 상상해 보라.12m의 발사나무 뗏목에 의지해태평양 한가운데에 마치 하나의 점처럼 붙어 온갖 폭풍우에 맞선 그들의 모습을. 그 당시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뗏목이 폭풍우로 수천 마일 바닷속으로 파묻혀 버릴거라며 미친 짓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헤이에르달은 아래 위로 이빨이 3천개나 있다는 바다 괴물 고래상어, 어둠 속에서 도깨비불처럼 파란 눈을 반짝이는 뱀고등어, 날아다니는 문어 이야기, 섬주민의 훌라춤, 그리고 귤모양을 한 섬쩍지근한 사람머리 이야기까지 1백여일간의 항해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극적으로 묘사해 놓았다.

이들을 목숨건 모험으로 내몬 것은 무엇일까.이들의 모험은 인류학적 가치뿐 아니라 그 용기와 대담성 때문에 더 많은 갈채를 받았던 것이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일상의 삶에 파묻혀 살면서 놓치고 있는 어떤 것, 다시 말해 인간을 보다 인간적이게 하는 넓고 깊은 상상력이 내게도 아직 남 아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 (1995-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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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둘만한 몇 구절을 발견했다.

"첫번째 거짓: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설교했다?"

: 그는 사람들에게 자연으로 되돌아 가라고(return)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연으로 '향하라(turn)'고 요청했을 뿐이다.

"두번째 거짓: 루소는 미개인을 '고상한 야만인'으로 찬양했다?

: 루소는 이 말을 쓴 적이 없다. 그는 미개한 사회보다 스파르타와 공화정 로마, 그리고 자기 조국인 주네브에 더 많은 기대를 걸었다.

"세번째 거짓: 루소는 감정 숭배의 효시였다?

: 감정숭배는 그 당시 한창 진행중인 것이었으며, 그는 인간의 삶에서 인위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싶어했고, 자신을 따른다고 하면서 기괴한 짓을 일삼는 사람들에 대해 우려와 경멸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

"네번째 거짓:  루소는 자기 시대의 이성주의에 반대했고, 이성보다 감정이 삶의 지침으로 우월하다고 보았다?"

: 루소가 거부한 것은 주지주의와 그에 수반된 오만이었다.

"다섯번째 거짓: 루소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선구자였다?"

: 프랑스 혁명 초기 지도자들은 루소보다는 토머스 제퍼슨과 미국 독립선언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그린 사회가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지만, 그가 현존하는 제도의 폭력적 전복을 옹호하지 않으리라는 점만은 명백하다.

루소의 문제의식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사회제도란 참된 법이 아니라 권력에 근거한다. 법과 관행은 가진 자들의 부와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갖지 못한 자들은 점점 더 종속적 위치로 몰아 넣는다. 현행 사회제도 아래서 사람들은 공동선을 위해 연합하는 이점을 얻지 못한 채 자연상태의 자유를 포기했다"는데 있다.

-> 이에 "인간은 이 비참한 상태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가-이것이 루소의 사상적 원숙기에 집필된 위대한 두 개의 저작 <사회계약론>과 <에밀>의 주제였다." 곧, 그는 "인간의 타고난 선한 본능이 교육을 통해 어떻게 육성되고 계몽될 수 있으며, 선한 사회에 합당한 시민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여기서 선한 본능이란 "자기애(amour de soi, 자신의 생명을 지속하고 보호하려는 충동)와 동정심(pitie)"일 뿐 도덕적, 사회적 의미의 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고, 고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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