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능력 문학과지성 시인선 336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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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시인은 퇴고할 때 시를 무슨 탈곡기 같은데다가 한번씩 집어넣는 모양이다. 아니면 종이에 활자들을 뿌려놓고 선풍기를 초고속으로 돌려서 웬만한 것들은 다 날려버리는지도. 그러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그만의 어떤 희한한 작법의 비결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간유리에 맺힌 상처럼 하얗고 흐릿하고 아스라한 시들. 슬픔도 기쁨도, 곤란한 마음도 애매한 마음도 모두들 부끄러운 듯이 숨었다. 그래서 언뜻언뜻 꼬리만 비치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흐릿함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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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비르투를 모른다면서 이죽대고 경멸하다가 정작 활자를 마주할 시간조차 귀해지면 다시 또 시만 찾게 된다. 사막에서 물 찾듯이 온몸 헐떡이며 오로지 시만을 구하게 된다. 종일토록 허겁지겁 시를 퍼마셨던 오늘 나는 얼마나 비굴했던가. 시가 창녀는 아닐 텐데. 더럽다고 욕하면서 자꾸만 찾아가는 그런 창녀는 아닐텐데. 나는 왜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할까. 왜 욕하고 침뱉고 짓밟고 뺨을 때릴까. 그리고 또 왜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고 달아나려 할까. 마음 속에 든 것과는 무조건 반대로 행하라는 저주에 걸렸나. 이 고질적인 심리가 나 자신을 평생토록 힘들게 할 것 같다. 위악의 병폐가 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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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1 - '사건'전후
신정아 지음 / 사월의책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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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몰락한 영웅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아니면 사소한 실수나 과오 때문에 놀랄만큼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된 어느 선량하고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라든가. 그리고 가능하면 그것이 오늘 내가 길 가다 마주쳤을지도 모를, 지금 여기 이 땅 위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아무개의 이야기였으면 했다.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라 바로 어제 내 옆에서 일어났던 이야기, 픽션이 아닌 수기로서의 이야기, 이야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야기... 아마도 그런 이야기에 대한 탐욕에 가까운 갈망이 내가 이 책이 출간되기만를 손꼽아 기다렸던 이유였겠다. 그리고 오늘 나는 드디어,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에게 온몸이 물어뜯겨 죽어가는 검투사를 지켜보며 그 모든 각색되지 않은 실제 상황에 즐거운 전율을 느꼈을 고대 로마의 어느 귀족들처럼, 그렇게 신정아의 이야기를 맛있게 뜯어먹었다. 책을 읽다보면 특별히 살 가치가 없어도 부러 사서 읽게 되는 책이 있는데, 내게는 이 책도 그런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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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마키아벨리적인 virtue를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 독서가 문학에서 출발했음에도 문학이 가엾다. 아, virtue! 이 얼마나 매혹적인 단어냐! 나는 우리가 virtue의 무한한 발산이 이루어지는 시기인 삼십 줄에 들어섰다는 게 생각할수록 신나고 설렌다. 우리 앞에 펼쳐진 삼십 대를 가늠해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함의하는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과 에너지로 인해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는가. 나는 삼십 대야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이루려 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시기라고 확신한다.

 

훈육과 양성, 그 지긋지긋한 길들여짐의 과정을 통과하고 나와서 이제는 내적인 방황과 삽질의 상처마저도 단단하게 아문 시기, 정신적으로는 의연하고 단단해진 한편으로 세속의 이치를 충분히 파악하여 적당히 교활하고 영리해진 시기, 요령이 생기고 눈치가 여물어 그것을 수완있게 사용할 줄 아는 시기, 그러면서도 열정과 의욕이 팽배하고 체력적으로도 완벽한 시기- 이것이 바로 우리의 30대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이 세계에 뛰어들어 우리 자신의 권능을 발휘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니 삼십 대란 대체 얼마나 살맛나고 재미나는 시기일 것인가.

 

어젯밤에 대강 이런 내용의 취중연설을 했던 것 같은데, 비록 단 한명 뿐이었으나 청중의 반응이 매우 좋아서 연설한 보람이 있었다. 청중과 나는 오래도록 자뻑의 기쁨에 취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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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1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2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쓴 글이 도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우쭐하다. 도용한 이가 보기에는 내 글이 뭔가 있어 보였던가 보다. 계속 도용하시라. 이 글을 보는 즉시 이 글도 도용하시라. 나는 내가 쓴 글에 대해 배설물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으니 배설물이 재활용되고 있다는 소식은 나를 피식거리게 만들 뿐이다. 나를 계속 웃게 해달라. 그리하여 이토록 터무니없는 내 오만함에 타당한 근거가 되어 달라.         

요즘은 열심히 머리를 깎고 있다. 가끔은 대밭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지껄이기도 해야 마음의 체증이 가라앉겠지만, 한편으로 나는 사회에서 쓸모로 하는 좋은 이발사가 되고 싶기도 한 것이다. (또 그래야만 하고.) 야간에 자꾸 대밭에 들어가 악 지르는 일로 기력을 탕진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유구무언. 쓰고 싶은 일상의 이야기들이 많이 있고, 나는 또 그런 것들을 배설의 쾌감을 느끼는 항문기 유아처럼 혼자서 신나게 풀어낼 자신이 있는데, 그러니까 좀, 아니 많이

피곤하다.   

자판 칠 기운도 없다. 손가락이 근질거리는데 긁을 힘도 없으니 요즘은 그저 손가락 혼자 근질거리다 지칠 때까지 놔두자는 주의로 산다. 손가락 끝에서 소란대는 나의 이야기들은 결국 활자의 형상을 얻지 못한 채 유산되고, 끊임없이 유산되고... 오만한 나를 길들일 수 있는 유일한 기제는 역시 직업적 노동이라는 생각.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는 활자적 배설의 욕구라는, 나로서는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까지 드렸다는 생각. 나로서는 혓바닥까지 잘라서 내어준 셈이니 이 이상 무엇을 더 바칠 수 있으리. 피곤하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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