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시인은 퇴고할 때 시를 무슨 탈곡기 같은데다가 한번씩 집어넣는 모양이다. 아니면 종이에 활자들을 뿌려놓고 선풍기를 초고속으로 돌려서 웬만한 것들은 다 날려버리는지도. 그러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그만의 어떤 희한한 작법의 비결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간유리에 맺힌 상처럼 하얗고 흐릿하고 아스라한 시들. 슬픔도 기쁨도, 곤란한 마음도 애매한 마음도 모두들 부끄러운 듯이 숨었다. 그래서 언뜻언뜻 꼬리만 비치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흐릿함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