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비르투를 모른다면서 이죽대고 경멸하다가 정작 활자를 마주할 시간조차 귀해지면 다시 또 시만 찾게 된다. 사막에서 물 찾듯이 온몸 헐떡이며 오로지 시만을 구하게 된다. 종일토록 허겁지겁 시를 퍼마셨던 오늘 나는 얼마나 비굴했던가. 시가 창녀는 아닐 텐데. 더럽다고 욕하면서 자꾸만 찾아가는 그런 창녀는 아닐텐데. 나는 왜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할까. 왜 욕하고 침뱉고 짓밟고 뺨을 때릴까. 그리고 또 왜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고 달아나려 할까. 마음 속에 든 것과는 무조건 반대로 행하라는 저주에 걸렸나. 이 고질적인 심리가 나 자신을 평생토록 힘들게 할 것 같다. 위악의 병폐가 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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