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1 - '사건'전후
신정아 지음 / 사월의책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몰락한 영웅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아니면 사소한 실수나 과오 때문에 놀랄만큼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된 어느 선량하고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라든가. 그리고 가능하면 그것이 오늘 내가 길 가다 마주쳤을지도 모를, 지금 여기 이 땅 위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아무개의 이야기였으면 했다.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라 바로 어제 내 옆에서 일어났던 이야기, 픽션이 아닌 수기로서의 이야기, 이야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야기... 아마도 그런 이야기에 대한 탐욕에 가까운 갈망이 내가 이 책이 출간되기만를 손꼽아 기다렸던 이유였겠다. 그리고 오늘 나는 드디어,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에게 온몸이 물어뜯겨 죽어가는 검투사를 지켜보며 그 모든 각색되지 않은 실제 상황에 즐거운 전율을 느꼈을 고대 로마의 어느 귀족들처럼, 그렇게 신정아의 이야기를 맛있게 뜯어먹었다. 책을 읽다보면 특별히 살 가치가 없어도 부러 사서 읽게 되는 책이 있는데, 내게는 이 책도 그런 경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