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박정태 옮김 / 이학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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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날 것 같다고, 서슴없이 쓴다. 그 모든 냉정하고 명철한 비관에도 불구하고 돌아보면 사르트르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오는 장수처럼, 이 명제는 끝내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자체로 시지푸스와도 같은 운동을 계속 할 것이다.

 

세계의 지평을 인식하고 윤곽을 가늠하기 위한 인간의 모든 노력이 비록 우리 자신의 미소함을, 비루함을, 부자유를, 출구 없음을 처절하게 증명하는 일이 되더라도 이 무용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희망 없이 나아가야 한다고, 그것만이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유지하는 일인 동시에 또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고, 여전히 믿는다. 실존주의를 과연 한때의 유행이었다고, 사르트르를 철 지난 철학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실존주의를 철학 사조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실존주의는 그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준칙이며 행동 강령이다.  

 

쉽게 흥분하고 들썽대는 내 가벼운 천성 덕분에 책을 덮고 마음이 동해 모처럼 책장을 정리했다. 앙드레 지드, 키에르 케고르, 하이데거, 사르트르, 까뮈들을 이곳저곳에서 빼내어 양지바른 곳에 한데 모아두었다.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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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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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신앙의 지혜는 온 인류의 것"이므로 우리가 꼭 신을 믿지 않더라도 기존의 종교 문화로부터 얼마든지 삶에 유용한 아이디어를 얻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종교를 믿지 않은 사람이 여러 개의 신앙들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차용하는 것이야말로, 예를 들면 문학 애호가가 수많은 고전들 중에서 자기가 특히 좋아하는 작가 몇 명을 골라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코 범죄가 아니다." 

 

무신론자 용으로 개발된 '보통'식 종교는 어떤 모습일까? 이 종교는 인류의 정신 문명과 과학 기술을 낙관하는 인문주의자 모두를 위한 종교라 해도 무방하겠다. 우선, 이 종교의 신도(?)들을 진리의 빛으로 이끄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역사, 문학, 철학, 예술을 망라한 인문학이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이들 역시 나름의 계율 속에서 평생에 걸쳐 인문학을 탐구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들이 일생 동안 공부하게 될 경전은 프로이트, 마르크스, 무질, 오에 겐자부로 기타 등이 써낸 일체의 저작들이다.

 

한편 이 가상의 종교에서는 성 베네딕트나 성 세바스챤 대신에 구텐베르크, 셰익스피어, 데카르트 등 문명의 역사가 한 걸음씩 도약하는 데 공헌을 세운 인물들을 세속 성인으로 추앙한다. 이 세속 성인들은 '자비의 신전이'라든가 '고요함의 신전'이라든가 하는 이름을 가진 신전들 안에 각각 성화로 제작되어 모셔져 있다. 가정집 거실에서도 역시 세속 성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나 휘트먼, 링컨, 처칠, 스탕달 등이 미니어처로 제작되어 여기저기에 장식품으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딱히 섬기는 신이 없는 이 종교에서는 봄이면 아내와 어머니를 기념하는 축하 행사가 열리고, 여름에는 "철강 산업이 인류의 진보에 미친 중대한 기여"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며, 겨울에는 개와 돼지와 닭 같은 가축에게 감사하는 잔치를 벌인다. 또 이 종교에서는 "산업용 면방적기를 발명한 아크라이트 경을 기념하는 날"이라든지 "무려 16년이나 허탕을 친 끝에 중국산 도기의 유약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인내의 모범이 된 베르나르 팔리시를 기리는 날" 따위가 석가탄신일이나 부활절을 대신한다.

 

그런데 왜

 

보통이 말하면 재밌는데 내가 말하면 재미없을까. 머리가 안 벗겨져서 그런가. (역시 보통과 비교되는 나의 유머 드립은 여기까지) 아무리 써도 맛보기에 불과한 데다가 쓰면 쓸수록 보통의 매력을 깎아먹기만 하는 장광설이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기 전에 얼른 그만 써버리는 게 낫겠다. 다정하고도 위트 넘치는 보통의 포교 연설을 경청하다 보면 누구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 귀의하지 않고서는 배겨날 도리가 없겠다. 그래, 딱 이 한 문장이면 족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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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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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풍 코믹 환타지 대하 고전 소설이라는 엉터리 이름마저도 붙일 수 없는 이 희한하고 독특한 소설이 겨우 사백 페이지 남짓에서 끝나버린 것은 순전히 인내심 부족한 독자를 위한 작가의 배려가 아니었을는지.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 작가는 셰헤라자드처럼 영원히 이야기를 계속해 나갈 기세다. 가히 '이야기'에 대한 도착증적 열정마저 느껴지는 이 작가는 <고래> 한 권으로 이미 이야기꾼으로서의 저력, 아니 괴력을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은 것 같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서사의 유장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유할 만한 내용이 빈곤하다는 사실은 다소 맥빠지고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 <고래>는 마치 놀라운 괴력을 지녔으되 지나치게 '무구'했던 소설 속 주인공 '춘희'와도 닮아있다. 소설에서 의미를 구하는 일의 의미 없음을 지적하며 소설의 가장 큰 덕목이란 무릇 재미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나는 철학이 빠진 소설은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다는 데 한 표를 던진다.

 

철학이 반드시 작품 속에서 어떤 메시지로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철학은 그저 모나리자 같은 표정으로 소설 전반에 스며들어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독자를 끝까지 붙잡아 둘 수 있는 결정적 요소는 유장한 서사의 힘이 아니라, 바로 그 미묘하고도 알 수 없는 '표정'에 있는 것일 테니. 그리고 '꾼'과 '대가'의 차이 역시 거기서 비롯되는 것일 테니. 재미난 이야기를 일껏 경청해 놓고서는 이제와서 표정을 만들어내라고 주문하는 이 괴팍한 트집쟁이 독자는, 이 작가가 앞으로 좀 더 깊은 사유로 무장하여 '무구함'으로부터 벗어나길 원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욕심을 내자면, 이 작가가 단지 소설이라는 장르에 갇혀있지 않고(사실 <고래>와 같은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활자 매체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다소 비효율적인 일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고래>는 마치 시나리오집이나 줄거리 요약본 같기도 해서, 반드시 소설이어야 할 어떤 형식적 당위성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더 너른 장소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는 모습을 보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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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과 폭력 - 성을 통해 본 인간 본능의 역사 한길 히스토리아 7
한스 페터 뒤르 지음, 최상안 옮김 / 한길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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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문명화’ 정도가 높은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욕정이나 공격성과 같은 감정의 자기통제 기제가 발달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 책에서는 문명 발달 수준이 낮은 소규모 부족 사회에서 자연발생적인 감정분출이나 공격적 충동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더 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규모 문명사회의 ‘수천 개의 눈’보다는 ‘마을 사람들의 눈’이 훨씬 더 완벽한 감시 도구가 된다는 것. 저자는 인간의 충동과 폭력성이 문명의 발달과는 하등의 상관관계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장장 800여 페이지에 걸쳐 유사 이래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났던 다양한 풍속과 역사적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생식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해괴하고 잔혹하고 기이한 인간 역사를 일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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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란 무엇인가
한병철 지음, 김남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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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가 말한 권력의 마지막 테크놀로지는 규율권력이다. 규율권력이란 '습관의 자동주의'이며, 표상과 기호의 게임(율법과 이성의 질서) 이전의 자동적 신체반응이다. 부르디외의 용어를 빌려오면 ‘아비투스의 내면화’. 일상성의 모습을 띤 권력. 이 최종적 권력은 우리의 신체를 형성하고 구조화하는, 상처가 아니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권력이다.

 

푸코가 말한 규율권력에 의해 우리는 비로소 최종적으로 우리로서의 모습이 가능해진다. 모습을 갖추는 것, 형태화는 곧 권력의 산출 활동이다. 푸코가 얘기한대로 권력에 의해 비로소 의미부여가 가능한, 자기인식이 가능한, 형태화가 가능한 우리는 결코 권력의 장(場)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적어도 사회학적으로는, 우리를 길들이고 가공하는 특정한 '주형틀'을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어떤 권력의 자장에 포섭될 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 자체가 심각한 오독의 산물인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궁금하다. 우리의 운동이 궤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과, 우리가 우리를 구속하는 궤도를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는, 어쩌면 별개의 사안이 아닐까 하고. 즉, 우리는 기존의 권력의 공간으로부터 이탈하여 새로운 권력의 공간에 포섭되려는 일련의 모험을 꿈꿀 수는 없을까. 그리고 그러한 궤도 전환의 기적적 몸부림 속에서, 이탈에서 포섭까지의 과도기적 대변환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주체성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푸코는 왜 변신하고 배반하는 주체, 이탈하는 여분의 주체, 기적을 일으키는 예외적인 주체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았을까.

 

푸코에게는 논외의 대상이었지만, 변신과 배반과 이탈이 가능한 주체로서 신경증적 주체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매개수준이 높더라도, 아무리 다양하고 촘촘한 매개구조를 갖춘 시스템이라도, 그 안에는 그 모든 매개구조에 불만족을 느끼는, 끊임없이 대상 a를 의식하며 잃어버린 부족분에 과민반응하는, 자기 몰락의 두려움에 떠는, 매개 구조 속에서 자기 연속성이 파괴되었다고 끊임없이 히스테리를 부리는 신경증적 주체가 있다.

 

신경증자처럼 매개구조에 포섭되기 어려운 존재가 또 있을까. 신경증자처럼 굴복되지 않는, 이물질 같은 존재가 또 있을까. 신경증자처럼 정신의 외화과정에서 눈에 거슬리는 존재가 또 있을까. 그는 결코 '소화'되지 않는다. 철저히 자기 안에 갇혀있는, 흡사 갑각류와도 같은 신경증자는 세계를 쉽게 내면화하지도 않으며, 세계에 쉽게 내면화되지도 않는다. 그는 결코 화해하지도, 화해되지도 않는다. 그는 자꾸만 구멍을 의식하고, 구멍을 가리키며 히스테리를 부린다.

 

신경증적 주체는 시스템을 불안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신경증적 주체에게도 권력의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미시적 개체의 권력 의지, 생명체로서의 의지, 자기 생장의 의지, 자기 확장의 의지를 간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것이 예측불허의 상황을 낳는 결정적이고도 치명적인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증적 주체의 생명체로서의 생장의지가 궁극에는 계의 오류를 불러일으켜 프로세스를 붕괴시킬 수 있다. 만약 그가 쉽게 배출해 버릴 수 없는, 중금속과도 같은 대단히 악질적인(?) 존재라면, 게다가 그 존재가 타자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존재라면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신은 절대적인 자아 연속체를 세우고 그곳에 거주한다. 그곳에는 신이 자신을 상실할 만한 어떤 간극도, 틈새도 없다. 그 안에는 신이 그 자신이 아니게 할 근본적인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신경증 환자"는 자신의 "작고 협소한 성"에 칩거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도처에서 자기 자신이려고 하는 강박을 가진 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자면 헤겔의 '신'이나 '정신'은 이러한 신경증의 현상일 수도 있다. -p.110

 

무한한 존재로서의 신이야말로 전형적인 신경증자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신은 완전체다. 그에게는 타자가 없으며 대상 a도 없다. 신경증자들이 끊임없이 신을 열망하는 까닭 역시 신이야말로 신경증자들의 '이상형'인 때문 아닐까. 물론, 이것이 신의 실체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무한한 권력자'로서의 신을 헤겔의 신으로 국한하면서, 헤겔과는 전혀 다른 신성(자신에게 회귀하려는 지향성이 없는 종교적 연속성, 타자를 향해 자아의 경계를 열어놓는 친절함)에 대해서도 동시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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