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권력이란 무엇인가
한병철 지음, 김남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푸코가 말한 권력의 마지막 테크놀로지는 규율권력이다. 규율권력이란 '습관의 자동주의'이며, 표상과 기호의 게임(율법과 이성의 질서) 이전의 자동적 신체반응이다. 부르디외의 용어를 빌려오면 ‘아비투스의 내면화’. 일상성의 모습을 띤 권력. 이 최종적 권력은 우리의 신체를 형성하고 구조화하는, 상처가 아니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권력이다.
푸코가 말한 규율권력에 의해 우리는 비로소 최종적으로 우리로서의 모습이 가능해진다. 모습을 갖추는 것, 형태화는 곧 권력의 산출 활동이다. 푸코가 얘기한대로 권력에 의해 비로소 의미부여가 가능한, 자기인식이 가능한, 형태화가 가능한 우리는 결코 권력의 장(場)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적어도 사회학적으로는, 우리를 길들이고 가공하는 특정한 '주형틀'을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어떤 권력의 자장에 포섭될 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 자체가 심각한 오독의 산물인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궁금하다. 우리의 운동이 궤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과, 우리가 우리를 구속하는 궤도를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는, 어쩌면 별개의 사안이 아닐까 하고. 즉, 우리는 기존의 권력의 공간으로부터 이탈하여 새로운 권력의 공간에 포섭되려는 일련의 모험을 꿈꿀 수는 없을까. 그리고 그러한 궤도 전환의 기적적 몸부림 속에서, 이탈에서 포섭까지의 과도기적 대변환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주체성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푸코는 왜 변신하고 배반하는 주체, 이탈하는 여분의 주체, 기적을 일으키는 예외적인 주체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았을까.
푸코에게는 논외의 대상이었지만, 변신과 배반과 이탈이 가능한 주체로서 신경증적 주체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매개수준이 높더라도, 아무리 다양하고 촘촘한 매개구조를 갖춘 시스템이라도, 그 안에는 그 모든 매개구조에 불만족을 느끼는, 끊임없이 대상 a를 의식하며 잃어버린 부족분에 과민반응하는, 자기 몰락의 두려움에 떠는, 매개 구조 속에서 자기 연속성이 파괴되었다고 끊임없이 히스테리를 부리는 신경증적 주체가 있다.
신경증자처럼 매개구조에 포섭되기 어려운 존재가 또 있을까. 신경증자처럼 굴복되지 않는, 이물질 같은 존재가 또 있을까. 신경증자처럼 정신의 외화과정에서 눈에 거슬리는 존재가 또 있을까. 그는 결코 '소화'되지 않는다. 철저히 자기 안에 갇혀있는, 흡사 갑각류와도 같은 신경증자는 세계를 쉽게 내면화하지도 않으며, 세계에 쉽게 내면화되지도 않는다. 그는 결코 화해하지도, 화해되지도 않는다. 그는 자꾸만 구멍을 의식하고, 구멍을 가리키며 히스테리를 부린다.
신경증적 주체는 시스템을 불안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신경증적 주체에게도 권력의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미시적 개체의 권력 의지, 생명체로서의 의지, 자기 생장의 의지, 자기 확장의 의지를 간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것이 예측불허의 상황을 낳는 결정적이고도 치명적인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증적 주체의 생명체로서의 생장의지가 궁극에는 계의 오류를 불러일으켜 프로세스를 붕괴시킬 수 있다. 만약 그가 쉽게 배출해 버릴 수 없는, 중금속과도 같은 대단히 악질적인(?) 존재라면, 게다가 그 존재가 타자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존재라면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신은 절대적인 자아 연속체를 세우고 그곳에 거주한다. 그곳에는 신이 자신을 상실할 만한 어떤 간극도, 틈새도 없다. 그 안에는 신이 그 자신이 아니게 할 근본적인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신경증 환자"는 자신의 "작고 협소한 성"에 칩거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도처에서 자기 자신이려고 하는 강박을 가진 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자면 헤겔의 '신'이나 '정신'은 이러한 신경증의 현상일 수도 있다. -p.110
무한한 존재로서의 신이야말로 전형적인 신경증자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신은 완전체다. 그에게는 타자가 없으며 대상 a도 없다. 신경증자들이 끊임없이 신을 열망하는 까닭 역시 신이야말로 신경증자들의 '이상형'인 때문 아닐까. 물론, 이것이 신의 실체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무한한 권력자'로서의 신을 헤겔의 신으로 국한하면서, 헤겔과는 전혀 다른 신성(자신에게 회귀하려는 지향성이 없는 종교적 연속성, 타자를 향해 자아의 경계를 열어놓는 친절함)에 대해서도 동시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