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하철 타고 출근하면서 내가 젊다는 게 새삼 기쁘고 우쭐했다. 나는 젊다. 젊은 씨앗이다. 비밀스런 질료다. 내가 성장할 것이라는 기분 좋은 확신. 서서히 조금씩 울창해리라는 강렬한 예감. 그 자명함. 숨이 턱까지 차도록 뜀박질을 하면서 정말로 오래 살고 싶다고, 오래도록 '살고' 싶다고 되뇌었던 그 옛날 언젠가처럼, 가슴 깊숙이 밀려오는 충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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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유한성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는 인간을, 자신의 유한성을 너무도 예민하게 자각하여 스스로 자기 안에 매몰되어버린 인간을 나는 어떻게 경애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경애 그리고 연민-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갖는 연민이다. 나는 그에게 김소월의 산유화까지 읊조리면서 자발적 고독의 무궁한 잠재력에 대하여,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그 찬란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지지를 표했으나, 그 순간 술자리의 누군가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비루함일 뿐이라고.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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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주체, 욕망 - 정신분석학과 텍스트의 문제
박찬부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라캉의 네 가지 담론 구조를 저자의 설명에 기대어 정리해본다. 먼저 기본 골격이 되는 도식을 살펴보면,

 
  • "담론의 주체" 자리는 의미활동의 시작점이자 개시자가 되는 자리이다. 이 자리에 오는 기표는 담론의 성격을 결정짓는 행위의 지배자가 된다. "담론의 주체"는 "타자"를 호명하고, 그럼으로써 강력한 하나의 질서, 의미, 명제를 만들어낸다. 그런 점에서 이 자리는 위력을 지닌 지배자의 자리다. 발동자, 행위자, 행동자, 작인, 동인의 자리.
  • 화살표는 담론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전달 체계. 의미작용.
  • "타자"가 있는 자리는 담론의 수용자, 접수자, 담론의 주체에 의해 호명되는 자.
  • "진리"가 있는 자리는 담론의 개시자인 주체의 전제가 되는 자리이다. 그것은 담론의 이면에 숨은 진실이며, 주체를 존재하게 하고 추동하는 원인이 되는 자리이다. 그러나 이 '진리'라고 하는 것은 아직 상징계의 질서에 포섭되지 않은(그래서 상징계의 우리가 영원히 불완전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신화적 주체'이며, '전-상징적 의도'라고 일컬어지는 언어 이전의 자리.
  • "생산"의 자리는 주체가 타자로 호명됨으로써 손실되고 배제되는 것, 손실되고 배제됨으로써 생겨나는 것. 부재의 기표. 행위주체의 메시지가 전달된 결과로 드러난 생산물.
  • 이 패러다임의 상부구조는 담론의 명시적인 차원과 관련된다. 의식적인 차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차원. 표면적으로 이루어지는 의미작용. 의식의 심급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활동들. 우리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 기호적 요소.
  • 패러다임의 하부구조는 심리적이고 욕동적인 것들. 언어화되지 못한 요소들. 이야기 되지 못하고 은폐된 것들. 감춰진 것들.

S1, S2, a, $ 가운데 무엇이 주체의 자리에 위치하여 의미작용의 개시자가 되느냐에 따라 각각 아래의 담론들이 나올 수 있다.

 

(1)지배자 담론


네 가지 담론 가운데 가장 원형적인 담론이다. 주체화 과정과 그로 인한 주체의 소외화 과정을 보여주는 담론이기도 하다. 지배자 담론에서 화살표는 '호명, 지정, 명령, 정의내리기' 등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그것은 살구색과 배홍색 사이의 색이다.>라고 정의, 호명, 지정, 명령함으로써 '그것'의 주체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살구색과 배홍색 사이의 색'이라는 기표로서 상징계에 편입되어 비로소 이야기되어질 수 있지만, 이러한 상황은 분열된 주체 $를 야기한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살구색'과 '배홍색'이라는 기표가 동원되고 있음에도 '그것'을 단순히 그 두 가지 색만 가지고 말해버리기에는 미진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배홍색과 살구색 이상의 어떤 색채가 분명히 녹아 있지만 살구색과 배홍색을 끌어들이므로써 놓쳐버린, 배제되어버린 그 오묘한 색깔이 대상 a가 된다.

 

'그것'은 '살구색과 배홍색 사이의 색'으로서 언어 질서 안에 안착하기는 했으나 끝내 해소되지 않는 내면의 불만족 때문에 자신이 잃어버린 그 오묘한 색깔이 도드라지게 나타난 이를테면 주홍 빛깔을 띤 사물에 집착함으로서 $<>a라는 판타지 구조를 만들어 낸다. 이때 S1에서 S2로의 의미작용이 강력하게 이루어질수록 $<>a로 표기되는 판타지 구조는 억압되고, 그래서 더없이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대외적 의미작용이 강렬하게 일어날수록 이 구조 또한 똑같이 강렬해지는 것.

 

 

(2)대학 담론


이것은 교육, 교리의 담론이다. 지식의 기표 S2는 여기서 지배적이고 명령적인 위치에 오며, 야생으로서의 미개한 어린아이와도 같은 a, 즉 아직 상징계의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a를 가르친다. 즉 이 구조는 탄탄한 지식체계로 무장한 교수들의 지적 담론을 순진한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전수받는 구조. 그럼으로써 생겨나는 생산물인 분열된 주체$. 교육의 결과가 상징질서의 강조로 나타나고, 그것은 또한 의식과 무의식의 분할구도의 심화, 자기모순적 욕망의 발현, 몸통에 빗금이 쳐진 분열되고 소외된 주체성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

주목할 것은 S2의 이면에서 S2의 전제이자 토대이자 동인이 되는 은폐된 진리가 지배자의 기표 S1이라는 사실이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지식 체계로 표상되는 S2가 전면에 부각되는 대학 담론은 그 이면에서 지배자의 의지와 구상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한다. "대학 담론은 지배자 담론의 점증적 폭로행위를 통해서 그 자신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힘과 권위의 상징인 지배자 담론이 억압되면, 체계적 지식으로 무장한 대학 담론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서서 지식 체계 밑에 숨겨둔 지배자 기표를 가동시킨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히스테리 담론


히스테리 담론에서는 지배자 담론과 대학 담론에서 억압되었던 분열과 소외의 주체$가 전면에 부각되어 지배자의 자리에 온다. 분열된 주체 $는 상징질서 안에서 명명된 주체S1을 심문하면서 S1이 S2(S1을 설명하는 각종 지식들)를 생산해내도록 만든다.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여 이를 이론으로 정립하고 그 후 다시 그것을 반박하고 또 다른 가설을 세우는 과학의 성격은, 끊임없이 S1을 심문하여 S2를 생산해내는 히스테리 담론과도 맞닿아 있다.

결핍과 분열, 소외의 주체 $는 힘과 권력의 상징인 S1에게서 불안을 막아줄 안정적 보호막을, 그리고 삶의 무의미성을 덮어줄 의미와 아이덴티티를 끊임없이 구한다. 그럼으로써 분열된 주체는 생산된 지식 S2로부터 잠깐의 쾌락을 얻는다. 이때 대상 a(근본적인 결핍의 요소)는 새로운 지식 S2와 환상구조를 형성함. 히스테리 담론에서 흥미로운 것은 대상 a가 진리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 이것은 이 담론의 숨겨진 진실과 동력이 대상 a라고 하는 근본적 결핍임을 보여준다.


(4)분석가 담론



새로운 이론 또는 새로운 사상에 대한 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지배자 담론이 상하좌우 모두 바뀐 구조. 구조의 의미 역시 지배자 담론과 대극적이다. 즉 지배자 담론이 세계가 구축되는 과정, 주체가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이라면, 분석가 담론은 세계가 균열하는 과정이고, 주체가 외부와 대면하는 과정이며, 그럼으로써 분열과 괴리가 생겨나고 새로운 주체가 생겨나는 과정이다.

분석가 담론에서는 대상 a가 개시자, 작동자, 의미작용의 시작점이다. 지배자 기표들이 포착하지 못한 실재계의 '무엇'을 전면에 부각시켜 의미작용의 개시자가 되는 것. 은폐되었던 것들,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 말해지지 못했던 것들이 비로소 의미화되기 시작하는 상황. "분석가 담론은 기표들, 특히 지배자 기표들이 포착하지 못하는 실재계를 (전면에)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소외의 주체들이 자신의 소외적 상황과 지배자 기표들과의 비일치성을 자각하도록 할 수 있고, 새로운 지배자 기표의 생산(S1)에 추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대상 a의 토대이자 동인이 되는 이면의 요소가 S2, 즉 기존의 지식이라는 것, 진리의 위치를 꿰차고 있던 기존의 불충분한 지식이라는 것. 일단, 전면에 등장한 대상 a가 분열된 주체 $를 불러낸다. 그럼으로써 생산되는 지배자 기표S1. 그러나 이때 생산된 S1은 이전의 S1이 아니다. 새로운 담론, 즉 대상 a가 분열된 주체를 불러내고 그것을 즉물적으로 눈앞에 나타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 내는 것. 정반합적인 과정을 통해 재편 작업을 거친 새로운 S1을 만들어 내는 것. 새롭게 재편된 S1은 진리로 추앙받던 기존의 지식 S2와 행복하게 변증법적으로 결합한다.

*

도식에 등장하는 기호들이 무의식의 언어를 구성하는 기표들이라는 점에서 라캉의 담론 도식은 무의식적 욕망의 작동 메커니즘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식의 원리를 응용하여 언어(기호, 의식, 표층)적 요소와 심리(육체, 무의식, 심층)적 요소가 상호적으로 긴밀하게 맞물려 일어나는 각종 사회적 현상들을 분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거대하게 움직이는 사회적 무의식의 작동 양상을 분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라캉이 제시한 도식이 그저 설명의 필요를 위해 도입된 하나의 허구적 가능성일 뿐 그 자체로 절대적 이론은 아니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 이 도식을 가지고 '도식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넌센스이고, 또 그럴 수도 없다고. 사실 위의 다이어그램에서 $, S1, S2, a 네 가지 기호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담론 모형은 총 24가지다. 저자는 라캉이 아마도 네 가지 요소들의 순서(지배자 위치에 어떤 기호가 오느냐 하는 순서)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그 순서에 따라 네 개의 담론만 설명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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率路 2010-03-10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이 대학원에서 보드리야르니 푸코니 데리다니 떠드는게 이해가 하나도 안간다고 그래서 대략 저도 아는대로 구조주의니 후기 구조주의니 차연이니 에피스테메니 하는 개념을 제 아는만큼만 짤막하게 설명해주고는 입문서 몇개를 찝어줬는데 얘가 글쎄 '오빠 근데 라캉은?'이러는거에요. 그래서 주저하다가 걍 어차피 그거 제대로 아는사람 없으니깐 그냥 너도 아는척하고 아무말이나 해버리라고 그랬죠-_-;;;;; 아니 라캉은 매번 다시 읽고했는데 어째 남은건 하나도 없는게 완죤 법학(?!)같아요ㅠㅠ

수양 2010-03-1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뭐 읽어도 도무지 오리무중이라 이렇게라도 적어놓는 거예요 긁적;;;

도다리맨 2011-01-0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너무 알기 쉽게 잘 설명해주셨네요 맨날 네 가지 담론 이곳 저곳에서 봐도 완전히 이해가 안되서 너무 답답했는데 님의 글 덕분에 앞으로 좀 더 잘 이해할 것 같습니다.

수양 2013-03-28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답답해서 정리 해본 건데 도움이 되셨다니 쓴 보람이 생겨서 기쁩니다. 그런데 제대로 정리한 것인지는 저도 장담할 수가 없어요 >_< ;;
 



카지노에 다녀왔다. 재미있었던 것은 주사위 세개를 가지고 하는 '다이사이'라는 게임. 너무나 재밌어서 절대 안 잊어버리려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림판에서 두 시간 동안 작업해서 저 위의 표를 만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다. 아무튼 테이블 위에 저렇게 생긴 커다란 표가 깔려있고 원하는 칸에 돈(코인)을 얹어놓으면 배팅이 된다. 동시에 여러 칸에 돈을 얹어놓아도 상관없다. 배팅이 모두 끝나면 기계가 세 개의 주사위를 굴려서 그 결과에 따라 배당금이 지불된다.

이 게임을 하러 굳이 강원도까지 또 찾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차라리 위의 표를 전지에 그대로 옮겨서 술자리에서 해보는 게 더 재밌겠다. 사람들이 잃은 돈을 모아서 1차 술값을 계산하고 돈을 많이 딴 사람은 2차를 쏘면 참 훈훈하겠다. 아니면 이 게임을 가정에서 해봐도 재미있지 않을까. 배당금 대신에 세탁기 돌리기 3회, 설거지 5회, 청소기 밀기 10회 등등으로 바꿔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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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H정신수련원’ 편을 뒤늦게 찾아서 봤다. 작년에 나는 H수련원 모母단체인 '마음수련원'의 수련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적이 있다. 방송에서는 H수련원이 원래 마음수련원의 광주 지부였으나 사이비 짓을 많이 해서 쫓겨난 단체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지만, 경험상으로는 H수련원이나 마음수련원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냉소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냉소하는 것은 ‘사이비’라는 용어 자체다. 기실 ‘사이비’라는 용어야말로 ‘미개하다’는 용어만큼이나 미개한 게 아닐까. 내가 인류학자라면 아프리카 부족보다도 더 연구해보고 싶은 게 전국의 사이비 단체다. 사이비 단체야말로 인류 문명을 연구하는 하나의 완벽한 샘플이라고 확신한다.

 

소위 사이비라 불리우는 단체에도 그 근원에는 분명히 강력한 힘과 에너지를 지닌, 원천이라고 할 만한 어떤 참신한 발상이 존재한다. 옳은지 그른지는 논외로 하고, 다만 힘이 있는지 없는지만 따지자면 이 발상 자체에는 엄청난 힘(영향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강력한 발상(사상이라고 해도 좋을)이 내뿜는 에너지의 자장에 포섭되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사상에 대한 각종 주석이 수없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의식이 고안되고, 조직과 단체가 형성되고, 사이비라 불리우는 분파가 생겨나기도 하고, 건물이 올라가고, 회비가 걷어진다. 사회와 문화가 발달하고 그들만의 인간사가 펼쳐진다.

 

지난해 마음수련원이란 곳에 우연히 수련하러 갔을 때는 워낙에 예상치 못한 문화충격을 받은 나머지 정작 구심점이 되는 새로운 사상 자체를 제대로 파헤쳐 보지도 못했었다. 하나의 사상이 태동함으로써 벌어지는 온갖 기이한 인간사에 관심이 팔려 수련원에 들어갔던 본래의 취지를 망각하고 시종 얼치기 인류학자 흉내나 내면서 열심히 삽질만 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당시에는 도저히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가끔 궁금하다. 인간 사회에 그토록 강력한 자장을 형성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신통한 수련법이. 최초의 씨앗이었을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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