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만원권 지폐를 주웠다. 내 평생 언제 또 이런 큰 돈을 길바닥에서 줍게 될 날이 오련가 싶어 눈시울을 글썽이며 떨리는 손으로 돈을 줍고 있을 때 등 뒤에서 탄성인지 탄식인지 모를 짧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행운이 따랐다면 간발의 차이로 나 대신 만원을 주웠을 어느 중년 여인이 뱉어낸 소리였다. 괄약근 단속을 소홀히 하여 얼떨결에 방출되어버린, 흡사 방귀 같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쾌감이 배가되어 한 삼만원 쯤 주운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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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1-05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양님 넘 재미나요ㅎㅎ 솔직하게 기뻐하는 심정. 아흑 올해 대박행운의 조짐인거야요.^^

수양 2013-01-05 16:02   좋아요 0 | URL
그런 거라면 프레이야님께도 대박행운을 나눠드릴게요ㅋ

2013-02-24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 뒷사람은 아마 어딘가 블로그에 '간발 차에 의한 불운'을 투덜거리는 페이퍼를 썼을 거예요.

수양 2013-02-25 00:1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마저마저요 그렇겠군요 ㅋㅋㅋ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책세상 니체전집 7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미기 옮김 / 책세상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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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다윈의 자연도태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꼭 그것만이 생태계의 변화를 설명하는 유일한 관점은 아니라고 본다. “퇴화, 불구, 나아가서는 악덕 그리고 신체적 또는 도덕적 결손까지도 다른 한편으로는 때때로 하나의 장점이 되기도”(226) 하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더 심하게 병든 인간들은 아마 호전적이고 침착하지 못한 종족 속에서 혼자 있을 계기를 더 많이 가지게 됨으로써 더욱 침착하고 현명해지며, 외눈을 가진 사람은 더욱 강한 한쪽 눈을 가지게 될 것이고, 눈먼 사람은 한층 더 깊이 내부를 보고 어쨌든 더욱 날카롭게 듣게 될 것이다.”

 

약한 것들이라고 해서 마냥 속수무책으로 도태되지는 않는다. 약한 것들은 약한 것 나름으로 변화하고 적응한다. 변화하고 적응하는 개체가 생존하는 데 있어서 전제가 되는 것은 “새로운 것의 감염을 받아들여 장점으로 동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병원균을 접종받은 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항체를 생산해낼 줄 아는 능력. “운명이 그에게 입힌 상처를 이용”하는 능력. 상처를 통해 “고상”해질 수 있는 능력. 그러고 보면 약하다는 것은 관점주의적이고 일면적인 개념일 뿐, 지금 이 순간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이런 능력을 생존의 기본 조건으로 갖추고 있는 셈이 아닌가. 그러니까 살아있음이 곧 강함의 명백한 실증적 증거가 아니겠는가. 심장이 뛰고 있는 한, 강하지 못한 생명이란 없는 것이다.

 

진화론과 관련해서 니체는 자연도태설보다는 차라리 용불용설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강자’의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겠다. 아마도 니체가 말하는 강한 개체라는 것은, 예컨대 백악기 시대의 티라노사우르스 같은 종류는 결코 아닐 것이다. 니체는 아마도, 좀 더 포괄적으로, 자생자활능력을 가지고 제 고유의 개성과 활기와 기쁨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모든 개체를 강한 개체로 여기는 듯하다. 니체가 말하는 천재란, 이러한 표현이 극도로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개체의 경우를 일컫는 것이리라.

 

“만약 (...) 완전한 국가[사회주의 국가]가 실제로 달성되면, 위대한 지성과 대체로 강한 개체가 성장하던 땅은 유복한 삶에 의하여 파괴될 것이다. 나는 위대한 지성과 강한 개체를 강한 활력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러한 완전한 국가가 이루어지면, 인류는 너무나 힘이 빠져 천재를 더 이상 산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삶이 그 강제적인 특성을 유지하고 항상 새로운 것에 의하여 격렬한 힘과 활력을 불러일으키기를 원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따뜻하고 동정적인 마음은 삶의 강제적이고 격렬한 성격을 제거하고자 한다. (...) 가장 따뜻한 마음은 자기 기초가 제거되기를, 자기 자신이 파멸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 마음은 비논리적인 그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현명하지 못하다.” -p.236

 

니체는 사회주의자들을 비난하면서 이렇게 말했지만, 시장자유주의자를 비난하는 데도 위와 동일한 논리를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근본적으로 수치화할 수 없는 가치들이 자본의 강압적 폭력에 의해 물질적 척도로 환산되어 갈수록, 자유경쟁 속에서 독점시장이 비대해져 갈수록, 비교불가한 고유의 개성을 자랑하던 개체들은 점차 그 활력이 감소할 것이며, 소수성과 다양성은 위축되고, 그 결과 ‘위대한 지성과 강한 개체들이 성장하던 땅’은 자본의 수탈구조 속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황폐화될 것이다. 니체는 사회주의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 “따뜻하고 동정적인 마음”이 삶의 격렬한 성격을 제거해버림으로써 자기 자신의 파멸을 자초하고 있다고 일갈하지만, 자본주의의 미덕인 자유경쟁 역시 공동체의 다채로운 존재방식을 파괴함으로써 '삶의 격렬한 성격'을 고갈시키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파멸을 자초하는 화근이 될 요소이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니체가 비난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사회주의라기보다는 국가체제가 되었든 시장질서가 되었든 개체를 통제하고 표준화시키고 순응화, 획일화시키는 모든 구조적 강제력 그 자체라고 봐야 하겠다. “국가란 개인을 서로서로 보호하게 하려는 현명한 실행이다. 만약 국가가 지나치게 고상해진다면, 개인은 결국 국가에 의해 약화되고 해체된다. 즉 국가의 근본적인 목적이 가장 철저하게 무효화된다.”(237) 여기서 말하는 국가 역시 꼭 사회주의국가로 국한하여 생각하기보다는 모든 사회적 질서와 체제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이는 편이 옳겠다. 어떤 사회 체제든 그것이 지나치게 고도화되고 정교해질수록 개체의 자유정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모순과 모호함으로 점철된 니체를 관통함으로써 우리는 니체를 이해하게 되기보다 도리어 우리 자신의 내적 지향과 마주하게 된다. 언젠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뉴라이트식 독법으로 니체를 해석해놓은 글을 읽고 식겁한 적이 있다. 아무리 니체가 우리의 내적 풍경을 정치하게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해석은 해석의 마지노선을 넘어선 오독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자연도태설을 불완전한 이론으로 보는 니체의 견해가 그 명쾌한 반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니체는 정치적으로는 차라리 좌우를 초월한 아나키스트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는 민주주의를 비롯한 모든 '정의로운' 근대 정치개념 자체에 회의적이며, 정치적 주장들의 올바름을 논하기보다 그것들 저마다를 하나의 힘으로서 가치평가하고 그 힘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국가체제 자체의 붕괴를 전망하는, 어찌 보면 정치적 염세주의자, 견유주의자에 가까워 보인다. <반시대적 고찰>에서 니체가 전망한 이상 국가는 "천재공화국"이었다. 천재공화국이란 아마도 거리에의 파토스를 지닌 강자들로 이루어진, 에고이스트들의 느슨한 연합체 같은 형태가 아닐까 싶다. 그런 니체를 뉴라이트식으로 이해한다면, 그건 니체를 해석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도용한 것이리라. 이 또한 내가 니체를 통해 바라본 내 얼굴에 불과한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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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2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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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란 나라는 덕치를 치세의 모범으로 여겼지만, 그 전성기는 정작 영조와 정조 같이 마키아벨리적인 군주들에 의해 구가되었다. 역사가 역설적으로 말해주듯이 조선 사회에서 유교적 가치란, 끊임없이 칭송되면서도 정작 그 존재는 좀처럼 증명되지 않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의상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근대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가 그렇듯이. (명쾌하게도 니체는 그런 것들을 '사랑스런 허영심'이라 불렀다.)

 

존재하지 않는 의상을 실재하게 만드는 것은 제스처다. 마치 옷을 입고 있는 듯이, 지금 여기 소매에 달린 레이스가 몹시도 거추장스러운 듯이 행동하는 과장된 제스처. 이 책에서 예를 들면, 정조가 대신들 앞에서 아버지 사도세자를 떠올리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지극히 효성스런 제스처. 그러니까, 중요한 건 제스처다. 허구를 기능하게 만듦으로써 더 이상 허구를 허구가 아니게 하기 때문에. 이때의 제스처라는 것은, ‘허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하는’ 시지푸스 식의 비장한 류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추구함으로서 비로소 허망한 걸 허망하지 않게 만드는 거니까. 

 

덧_

이 책을 읽어봐도 역시 이덕일은 역사학계의 황우석인 듯. 학계의 자정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등장한 인물인 듯. 어쨌든 그의 책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어떻게 의심을 할 수가 있을까!)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독자로서는 뒤통수 맞은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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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힘 - 조선, 500년 문명의 역동성을 찾다
오항녕 지음 / 역사비평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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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부활하는 광해군> 편에서 저자는 광해군의 대후금 정책을 내정 파탄 속에서 불가피하게 전개된 기회주의 외교로 평가하고 있다. 비전도 원칙도 실종된 광해군의 외교 정책이 오늘날 탁월한 실리주의 전략으로 미화된 데는 명분과 실리가 대립한다고 여기는 편견, 그리고 보다 기저에 사대주의 콤플렉스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묻는다. 대체 사대주의라는 게 무엇이며, 그게 왜 나쁘며, 그것을 꼭 조선만의 특질이라고 할 수 있는지.

 

'사대(事大)'에서의 사(事)는 '인정하다', '존중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원래 맹자는 '사대' 뿐만 아니라 '사소' 또한 언급했다고 한다. 강자를 존경하고 섬기는 것이 사대라면, 약자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은 사소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맥락 속에서 나온 사대 개념을 조선 패망의 요인이 된 전근대적 담론으로 각색해낸 이들이 다름 아닌 식민지 시절의 일본 역사가들이다. 사대주의는 구차한 게 아니다. 진짜 구차한 것은 비전도 이상도 철학도 명분도 부재한 실리주의다. 광해군의 외교가 그러했다.

 

광해군이 기회주의적 외교를 펼칠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 (혹은 그 짝패로서) 저자는 내치의 파탄을 들고 있다. 합의의 절차를 무시하고 폭력적으로 왕좌에 오른 광해군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과중한 세금과 인력을 동원해 무리하게 추진했던 궁궐 재건 사업이 문제였다. 궁궐 공사에 전념하느라 저자세 외교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궁궐 공사는, 꼭 광해군이 아니었더라도 사명을 가지고 밀어부쳤을, 왕조국가의 군주로서는 가장 시급했던  전후 복구 사업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한국 정부의 국가 예산 지출 규모를 기준으로 당시 투입된 공사비 지출 상황을 분석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왕조국가체제에서의 씀씀이를 오늘날 근대국가의 상황과 단순비교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 또한 저자가 말하는 '아나크로니즘'(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역사인식)이 아닌지.

 

광해군의 외교정책이 급변하던 국제 정치 상황에서 기민하게 반응해야 했던 당시 조선의 처지에 결과론적으로 시의적절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주체적이며 실리적인 대응이었다는 평가가 다소 지나치다고 한다면,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는 식의 평가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다. 광해군이 철학이 부재한 기회주의적인 군주였다는 평가는 성리학적 관점에서라면 재론의 여지가 없겠지만, 인(仁)과 의(義)보다는 이성과 합리주의의 가치를 중시하는 오늘날에 와서는 좀 더 융통성있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책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광해군에 대한 저자의 지나치리만큼 박절한 평가는 아무래도 현 정권을 겨냥하고 있는 듯하다. 북인을 제외한 정파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종친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데서 보여주는 소통 부재의 강압 정치(촛불과 명박산성), 민생을 제쳐두고 무리하게 추진했던 대규모 궁궐 토목공사(4대강 사업), 비전과 철학이 부재한 기회주의 외교 정책(대북 외교)에 이르기까지 광해군의 행적 곳곳에서 MB의 망령이 느껴지지 않는가.

 

덧_ 

최근 읽어본 조선 역사 관련서 중에서 가장 진중함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조선의 사회상을 가십거리 다루듯 단편적으로 나열하고 있지도 않고, 조선의 역사를 자극적인 권력투쟁으로만 그리고 있지도 않다. 오백년 문명의 역사를 단지 정치적 알력 다툼의 차원에서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권력의 이합집산과 이전투구 그 표면적인 격변의 기저에 도저한 광맥으로 흐르는 웅대하고 심오한 사상과 철학이 있었을 것이다. 공통의 지향점과 보편의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힘에 대해 상기할 것을 주문한다. 독서의 맥락과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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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2-12-23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 책에서 광해군보다 더 '멘붕'이었던 건 이덕일에 대한 부분이다. 이덕일은 과연 역사학계의 황우석인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O.S.T. [코리안 캐스트] - The Korean Cast
김소현 외 노래, 앤드류 로이드 웨버 (Andrew Lloyd Webber) 작곡 / 유니버설(Universal)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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