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2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이란 나라는 덕치를 치세의 모범으로 여겼지만, 그 전성기는 정작 영조와 정조 같이 마키아벨리적인 군주들에 의해 구가되었다. 역사가 역설적으로 말해주듯이 조선 사회에서 유교적 가치란, 끊임없이 칭송되면서도 정작 그 존재는 좀처럼 증명되지 않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의상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근대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가 그렇듯이. (명쾌하게도 니체는 그런 것들을 '사랑스런 허영심'이라 불렀다.)

 

존재하지 않는 의상을 실재하게 만드는 것은 제스처다. 마치 옷을 입고 있는 듯이, 지금 여기 소매에 달린 레이스가 몹시도 거추장스러운 듯이 행동하는 과장된 제스처. 이 책에서 예를 들면, 정조가 대신들 앞에서 아버지 사도세자를 떠올리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지극히 효성스런 제스처. 그러니까, 중요한 건 제스처다. 허구를 기능하게 만듦으로써 더 이상 허구를 허구가 아니게 하기 때문에. 이때의 제스처라는 것은, ‘허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하는’ 시지푸스 식의 비장한 류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추구함으로서 비로소 허망한 걸 허망하지 않게 만드는 거니까. 

 

덧_

이 책을 읽어봐도 역시 이덕일은 역사학계의 황우석인 듯. 학계의 자정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등장한 인물인 듯. 어쨌든 그의 책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어떻게 의심을 할 수가 있을까!)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독자로서는 뒤통수 맞은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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