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결혼이야기 1 또하나의 문화 11
또하나의문화 편집부 / 또하나의문화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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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등을 보거나 여러 인간 관계를 경험하면서 근본적으로 남녀 간의 감성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영화 <클레어 온 더 문>(Claire on the moon)에는 "이방인과 낙원을 나누어 가질 수는 없을 거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다른 종족 사이만큼이나 다른 남녀 사이에서 긴밀한 감정 교류를 원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없어서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나는 나의 내부에 어떤 이성에 의해서 내 외로움이 이해되면, 완전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든지 내 삶의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짝짓기의 신화를 내 안에서 깨뜨리며, 남자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느낀 나의 심리를 분석했다. 피해자이어 온 여성의 속성을 가지지 않은 남자의 이해를 필요로 했다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어 온 남성적 속성을 더 우위에 두었다는 증거이다. 나는 내 소외감의 원인이 나의 여성성을 부끄럽게 또는 억울하게 여기는 잘못된 인식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장하은, <삶의 각본을 찾아가는 과정> 中에서

 

글쎄, 꼭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진단할 필요가 있을까. 여성주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경도된 가혹한 자아비판이 아닐까. 호연재 김씨(1681~1722)의 글이 떠오른다. 그는 딸에게 주는 가르침을 적은 <자경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편이 비록 멀리하더라도 스스로 잘못이 없기를 생각하면 사람들이 비록 알지 못하나 푸른 하늘의 밝은 해를 대해도 부끄러움이 없으니, 무슨 까닭으로 깊이 스스로 걱정하여 부모님께서 주신 몸을 상하게 하랴? 오직 날마다 그 덕을 높이고 스스로 자기 몸을 닦을 뿐이니, 참으로 장부(남편)의 은의(恩義)와 득실만 돌아보고 연연하여 여자의 맑은 표준을 이지러지고 손상하게 한다면 또한 부끄럽지 않겠는가?" 소외감을 타기하고 자긍심을 고취하는 데 있어서 김씨의 호방한 태도는 귀감이 된다.   

 

이들 여성들이 소위 '바람'이라는 '연애'를 하게 되면서 자식에 대한 애착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지면 자식에 대한 생각도 멀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가족 간에 '정'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없다고 한다. 특히 남편이 먼저 '바람'이라도 나면 여성들은 남편은 물론 자식들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즉 남편과 자녀를 같은 차원에서 간주하면서 일반적으로 '모성'이라고 하는 자녀에 대한 집착은 살펴보기 힘들다. 자식은 남편 것이며, 자신은 남편 집에 와서 식모 같이 일만 해주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남편과 자식을 두고 나가 버리는 주부가 나올 수 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조옥라, <주부들을 위한 사람의 부적> 中에서

 

'외도'는 가장 접근이 쉽고 또 그만큼 환상에 젖어있는 기간이 짧아 허무를 빨리 느낀다는 점에서 급이 낮은 쾌락 같다. 부부 간의 감정 소모를 격하게 일으키는 등 쾌락의 추구에 따른 괴로운 부산물을 너무 많이 발생시킨다는 점에서도 역시 그렇고. 가정을 파탄내지 않고 배우자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누려볼 만한 개인적인 쾌락으로는 뭐가 있을까. 종교나 사상 또는 예술에 빠지는 길이 있을 것이다. 직업이나 육아, 사회 운동, 하다 못해 화초 가꾸기라도 역시 그것이 당사자에게 창조적 활동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면 얼마든지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무언가에 빠져든다는 건 좋은 일이다. 사람을 살아있게 만드니까. 보들레르가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항상 취해 있으라고. 시간의 중압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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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결혼이야기 1 또하나의 문화 11
또하나의문화 편집부 / 또하나의문화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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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결혼하면서 동시에 이혼할 준비를 하였다. (...) 이런 이야기가 '편안해야 할' 결혼 생활을 살벌한 것으로 들리게 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이혼이라는 거점이 결혼 생활을 신선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또한 언제나 '혼자 살 준비'를 하는 것을 의미함으로써, 나를 보다 독립적인 사람으로 그리고 자원이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노력으로 연결되었다. 결혼은 둘이 사는 것이지만 또 자신이 살아 내는 것임을 두고두고 일깨워 주었으므로. -신해순, <결혼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살기> 中에서

 

'이혼을 준비하며 사는 것'은 '죽었다 생각하고 사는 것'과 결과적으로는 동일한 효용을 낳는 태도일지도. 삶의 강밀도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죽음을 염두하며 사는 것과 삶 자체를 매순간 의식하며 사는 것이 결국은 똑같은 강박증인 것처럼. 

 

(...) 결혼 생활은 둘이, 아니 여럿이 사는 것이지만 결국 자신이 사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독신과는 다른 방식의 '혼자 살기'라고 말하고 싶다. (...) 결혼에도 역시 외로움과 공포가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심리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독립되어 있는 것이 결혼의 준비라는 것을 말한다. 사실 남자에게서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이란 곧장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으로 생각되는데, 여자의 경우에도 그것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남성 및 그의 가족에의 종속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자기 지원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의 사회 조직 성격상 가족 역시 중요한 사적 지원의 네트워크가 될 수 있겠지만, 가족 바깥으로 눈을 돌려서, 여성들의 다른 네트워크를 키우고 보살펴야 한다. 친구, 이웃, 직장 관심사 등으로 연결된 여성의 네트워크는 여성에게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지원을 주는 일종의 대항 네트워크가 되어 줄 수 있다. 가족은 이때 많은 의무와 부담의 판을 여성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이들 네트워크는 다른 종류의 판을 만드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려면 여성들은 거기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먼저' 자신의 일과 시간과 관심의 판을 만들어 놓을 때 저쪽의 판은 이 판과 협상할 수밖에 없어질 것이다. -같은 곳

 

남편은 나와 대화하지 않고 나의 감정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편이 나의 감정을 이해하느냐, 아니냐가 나의 삶의 방향과 목표에 궁극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대답은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족이 좀더 서로 이해한다면 내 삶의 색깔이 더 다양해지고 따뜻해지겠지만, 내가 지향하고 책임져야 하는 부분을 덜어 주거나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혼자 져야 하는 책임의 몫은 여전히 나의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 스스로 행복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누군가의 이해와 몰이해가 더 이상 나의 행복 여부를 좌우하지 않는다.

 

(...)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사랑을 원한다.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것이 내 가정에서 주어지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사랑을, 그리고 관계를 원한다. 나는 내가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내가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먼저 남을 받아주고 이해해주고 사랑을 나누어가는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남편과의 밀착된 관계가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더 큰 공동체를 향한 사랑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 나도 비슷한 편안한 느낌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는 (...) 자신이 삶의 주인이고자 노력하면서 중년에 이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 나이를 먹었다는 것과 마음에 여유를 얻은 것, 또 직업상 정진이 있었던 것 등은 행복하게 사십대를 맞이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소들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원 중 하나는 항상 주위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지원과 신뢰가 내게 있어 왔다는 사실이다.

 

(...) 나의 삶의 과정에서 결혼이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각본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서는 길목을 열어준 것이었다. (...) 돌이켜 보면 자신의 삶의 각본을 완성해 가는 길목에서 결혼하느냐 마느냐, 어떻게 하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갈림길은 아니다. 어떻게 삶의 주체(주인공)가 되어서 자신 안에 있는 여성적인 힘을 키워 내느냐 하는 선택이 중요하다. 그 여성적인 힘이란 우선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을 돌보는 힘이다. -장하은, <삶의 각본을 찾아가는 과정>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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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EMICHI (a path between rice fields), 1991, 73 x 52

 

칭따오, 하면 뭐니뭐니해도 이 그림이 떠오른다. 내가 생각하는 칭따오 맥주와 가장 부합하는 이미지라고 할까. 아이다 마코토(Aida Makoto)는 기괴하고 엽기적인 작품을 많이 그린 모양이지만 이 그림 만큼은 예외적으로 몹시 서정적이어서 계속 들여다보고 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양희은의 <들길 따라서>라는 노래도 생각난다. 들길 따라서 / 나 홀로 걷고 싶어 / 작은 가슴에 고운 꿈 새기며 / 나는 한 마리 파랑새 되어 / 저 푸른 하늘로 날아가고파 / 사랑한 것은 너의 그림자 /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

 

허풍이 아니라, 정말이지 믿을 수 없게도 칭따오를 마시다 보면 문득 눈앞에 푸르른 들판과 함께 소녀의 고운 가르마가 지평선까지 펼쳐지는 것이다. 가르마 끝에 당도하면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라도 어렴풋이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은 칭따오로 막장까지 달려본 적은 없으니 단정은 못 짓겠다. 칭따오+양꼬치 혹은 칭따오+골뱅이무침 혹은 칭따오+교촌치킨이 생각나는 저녁이다. 먹어?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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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2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2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4-05-22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먹어봐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콸콸콸 따라서 벌컥벌컥 마시면 안될 것 같은 이 느낌은..

맥주 리뷰도 신선한데 저 그림(아닌 줄 알앗어요)을 같이 걸다니..

수양 2014-05-22 22:10   좋아요 0 | URL
맥주 리뷰를 연재해볼까 싶습니다ㅋㅋㅋ

왜 알라딘에는 술을 안 파는 걸까요... 술과 책의 케미를 모르는 무식한 작자들 같으니라고...;;

컨디션님 칭따오 한번 잡솨보셔요 컨디션 님한테 한잔 따라 드리고 싶네요 ㅋㅋ 원격으로라도... 한잔 받으셔요..ㅋㅋ
 
새로 쓰는 결혼이야기 1 또하나의 문화 11
또하나의문화 편집부 / 또하나의문화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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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실 우리 나라에서의 결혼이 도구적인 관계들의 결합이라면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면들을 다른 곳에서 해결한다는 것이 반드시 결혼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이 매우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유대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위기지만 결혼이란 기본적으로 역할의 조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다른 문제지요.

조혜정 내가 볼 때는 그래서 오히려 못 쓰는 것 같은데요. 결혼을 역할의 조합이라고 생각하니까 별로 문제 의식을 못 느끼는 것이지요.

김은실 그렇지요. 한쪽은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데 다른 한쪽은 문제를 느끼고 글을 쓰겠다고 하니까 골치가 아파지는 거죠. -23쪽

 

그러나 고백하자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승하기로 마음을 고쳐먹게 된 배경에는 나 역시 결혼이 ‘기본적으로 역할의 조합’이며,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면들을 다른 곳에서 해결하는 것이 반드시 결혼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적인?) 쪽으로 생각이 전환된 바가 크다고 해야겠다. 물론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유대는 중요하다. 그러나 기본적인 역할의 조합이 상호 간에 만족스럽게 이루어진 이후라야, 다시 말해 기능적이고 도구적인 차원에서의 관계가 충족이 된 이후라야, 그러한 유대 역시 차후적으로 지속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몇 번의 연애 경험을 통해 나는 역할 수행이 관계의 지속에 있어서 좀 더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전제가 된다는 걸 통렬하게 깨달았다. 상대에게 바라는 기본적인 역할 수행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혹은 역할 수행에 있어서의 견해 차가 갈등의 요소가 된다면, 처음에 견고했던 정서적인 유대마저 종내에는 파탄날 수밖에 없더라. 이 문제와 연관하여 근래에 나 자신에 대해 내린 결론은, 나 같은 인간 유형이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순응하기로 결정했다면 정서적인 유대는 필연적으로 다른 곳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며 그렇다면 그것이 되도록 건전하게 승화된 형태일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다.

 

이소희 이번 호를 진행하면서 30대 친구들과 결혼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결혼 구조 속에 들어갔다가 너무 괴로우니까 빠져나갈 것인가, 그대로 있을 것인가 열심히 주판알을 퉁겨 보는 거였어요. 그러다가 결혼에서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고 그대로 결혼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치열한 과정을 겪고 난 후 결혼에 안주한 친구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네가 왜 결혼에 안주하기로 했는지를 풀어내 보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 이야기는 결혼이 내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니, 서로의 필요에 의한 기능적인 관계일 뿐이라는 겁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결혼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었다는 거지요. -24쪽

 

서로의 필요에 의한 기능적인 관계. 나는 이런 관계가 냉소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데. 씁쓸하게 생각되지도 않고. 그거야말로 결혼의 본질이 아닌가.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에서 법륜 스님이 그 지점을 매우 정확히 꼬집고 있다. 그는 부부라는 관계 자체가 원래 대부분의 경우 극도의 이기심으로 맺어지는 관계라고 하면서, 이기심으로 누군가를 만나면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강조한다. 결혼이 괴로운 것은 인과응보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니, 이미 네가 그 괴로운 길을 스스로 택한 이상, 애당초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이 전적으로 포기한 채 오로지 죽었다 생각하고 시작하라는 것이다. 최대한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그저 수양하며 사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족

그렇다면 나는 왜 필연적으로 괴로움이 동반되는 이 새로운 기능적 관계 맺기를 자발적으로 택하고자 하는가. 무엇보다도 출산에 대한 본능적인 욕망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뭐, 꼭 결혼을 안하고 애를 낳을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지나치게 전위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좀처럼 엄두가 안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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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캔들 만들기 - 천연 재료라 더 착한 양초
이송희 지음 / 한빛라이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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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쉽다. 재미있고. 앞으로는 향초 안 살듯. 재료를 대량 구입할수록 경제적이므로 앞으로는 지인들과 날 잡아서 김장 담그듯이 대규모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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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9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