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나물 밥상 차리기
이미옥.김건우 지음 / 성안당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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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침이나 볶음 반찬에 들어가는 다진마늘이란 화장으로 치면 아이셰도와 같은 아이템이라고 해야 할까, 마지막에 가볍게 살짝만 더해주면 사뭇 그윽한 느낌이지만 욕심이 과해 계속 손대다보면 자칫 이제까지 해놓은 걸 완전히 망쳐버려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야 마는 것이다. 이 책을 식탁 옆에 펼쳐두고 무나물볶음(68쪽)을 했는데 의욕이 과했는지 다진마늘을 너무 많이 넣어서 무나물이 아니라 마늘나물이 되어버렸네? 아무튼, 집에 요리책이 아무리 많아도 실제로 자주 꺼내보게 되는 책은 몇 권 없는데 이 책이 그 소중한 몇 권 가운데 하나이다. 아무래도 평소에 나물요리를 좋아하는데다가 맨 끝에 가나다 순으로 색인이 나와있어 그때그때 찾기 편해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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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수업 - 다정 선생님의 다정 선생님 수업 시리즈
최정화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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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기법으로 제조한 다채로운 천연 양념장과 맛국물, 정확한 계량법의 준수 등 요리의 과학적 엄밀성에 대한 고집과 신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식탁 위에 펼쳐놓고 얼른얼른 재빨리 대충 봐가면서 만들기에는 영 까다로운 요리책이다. 흡사 실험실 연구원이라도 된 양 투철한 과학정신에 입각하여 조리를 해야 되는 이 난감한 상황은 뭔가. 서양학문의 폐해가 요리책에까지 미친 건가;; 요리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정확한 계량법과 이색적인 조합의 양념장이 아니라 그날그날의 날씨, 요리사의 기분과 마음 자세, 각종 양념들의 마법과도 같은 우발적 마주침,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늘의 도우심- 이 모든 것들의 총화라고 믿는 신비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어머니의 손맛'을 무의식적으로 배척하고 있는 듯한 이 요리책은 깔끔한 편집에도 불구하고 시종 뭔가 팍팍하게 느껴진다. 무릇 요리책이라면 책에서부터 일단 좀 감칠맛이 나야 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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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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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언제나. 남의 일기를 읽는 것은. 설령 글쓴이가 문서의 출판을 의식하여 공적인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글만을 남기고 사적 기록의 대부분을 지워버린 탓에 일기가 온통 (나는 미처 들어보지도 못한) 시 소설에 대한 건조하고 전문가적인 단평 일색이라 할지라도. 어쩌면 일기야말로 가장 에로틱한 장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

 

"타자의 철학: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165)

 

"파시즘이란 가만있게 내버려두지 않는 강요이다. 무엇을 말해야 한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무엇에 대해 가만히 있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 파시즘의 본질이다. / 권위주의의 특성은, 자기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믿음'에서 연유하는 오만과 뻔뻔함에 있다. 나는 옳으니까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뻔뻔함과 나는 옳으니까 내가 틀릴 리 없다는 오만함은 동어반복에 기초하고 있다. 권위주의는 동어반복이다. 나는 권위 있으니까 권위 있다!"(178)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25)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강력하게 자기 주장을-자기 주장을? 남들의 주장을 서툴게 엮어놓은 것을- 내세우는 데서 생겨나는 치기"(202)

 

"미개인들에게서의 시간은 세속적 시간과 신성의 시간으로 갈라져 있었다는 것이다. 세속적 시간이란 일상의 시간으로서, 그것은 노동의 시간이자, 금기를 준수하는 시간이었다. 반면 신성의 시간이란, 축제의 시간, 다시 말해 금기를 위반하는 시간이다. 종교적인 차원에서 볼 때, 축제는 제물 헌납의 시간, 다시 말해 살해 금기를 위반하는 시간이다."(250)

 

"철학이 어떤 극단성에 그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다면, 철학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가능성의 극단, 극단적 삶, 철학적 극단을 포용하지 못하는 철학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250)

 

"사회학자들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로 읽지 않고 자료로 읽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회학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폄하하는 것은 우스꽝스런 일이다. 소설가들이 사회학자들에게 구체적 감각이 없으며 소설적 상상력이 없다고 비판한다면 펄쩍 뛰리라. 그러나 진리를 쥐고 있는 사람은 없다. 쥐고 있는 척할 뿐이다. 이름있는 사회학자들의 거의 모든 책은 죽었으나 소설들은 살아 남았다. 기억하라, 진리는 숨어서 드러나지 그대로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것을."(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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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10-2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지금 짬내서(금기를 어기고 몰래-이를테면 화장실-_-) 수양님 올린 글 읽는데 도저히 그냥 갈수 없네요 김현 꼭 읽고 싶어요. 인용하신 구절구절이 어쩜 이리도!

수양 2014-10-22 19:23   좋아요 0 | URL
네 재미있는 대목이 많네요. 뭔소린지 모르겠는 부분은 그냥 건너뛰었지만... 좋은 작가들도 많이 소개받았네요... 생각보다 별로 옛날 책 같지 않은 걸요^^
 
짙은 - diaspora : 흩어진 사람들 [EP]
짙은 노래 / 파스텔뮤직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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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허무와 애수의 목소리. 한껏 흐느끼고 난 뒤 비로소 눈물 닦고 의관을 정제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애이불비의 격조가 있다. 이런 가수 곁에서 함께 나이 먹어갈 수 있다는 것도 복이겠다. 꾸준히 계속해서 어떤 노래든 불러주었으면. 몇 년 전에 '실라버스(syllabus)'라는 제목으로 첫 공연을 했던 모양인데, 뒤늦게 이 가수의 블로그를 보니 실라버스에 대해 이렇게 적어놓았다.

 

“실라버스라는 단어를 요즘엔 잘 안 쓰는 거 같더라. 하긴 강의계획표라는 예쁜 우리말을 놓고 왜 그런 단어를 써야 하겠는가. 하지만 요 단어엔 묘하게 봄, 가을 신학기의 미풍이 느껴진다. 특히 봄의 시작 그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날아오르다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은 처음의 그 높은 기상 같기도 하고, 아련한 꽃향기 같기도 하다. 친구들과 ‘실라버스 받았어? 복사해줄까?’ 하는 그 대화가 왠지 좋았고 그걸 보고 있으면 (실제로는 매우 실망적이었지만) 앞으로의 한 학기 수업이 흥미진진할 것만 같은 좋은 쪽으로의 상상을 펼쳤던 것 같다. 그러한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첫 공연은 ‘실라버스’라고 이름 지어보았는데(...)”

 

실라버스를 받아볼 때마다 이번 학기 수업이 얼마나 흥미진진할 지 상상했다던 이 가수는 필경 첫 공연을 찾아온 관객들에게 앞으로 자신이 해나갈 음악의 실라버스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나 나로서는 그 공연에 못 간 게 다행이다(라고 합리화시켜 본다). 실라버스를 나누어주는 첫 수업 때면 나는 으레 오늘 수업은 일찍 끝나겠구나 후후 대충 흘려듣고 얼른 (당시의) 오빠나 만나러 가자 생각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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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조연미

 

 

손바닥으로 찬찬히 방을 쓸어본다
어머니가 자식의 찬 바닥을 염려하듯
옆집 여자가 울던 새벽
고르지 못한
그녀의 마음자리에
귀 대고 바닥에 눕는다
누군가는 화장실 물을 내리고
누군가는 목이 마른지 방문을 연다
무심무심 조용하지만
숨길 수 없는 것들을
예의처럼 모르는 척 하는 일상
아니다, 아니다 그러나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다
몸의 뜨거움으로
어느 귀퉁이의 빙하가 녹는지
창 너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또 잊혀지는 것들이 생기는 것이다
뻔하고 흔한
세상의 신파들 사이를 질주하며
이번에는 흥청망청 살고 싶어요 소리치며
눈은 내리고
가지런히 슬픔을 조율하며 우는
벽 너머의 당신
찬 바닥에 기대어
누군가의 슬픔 하나로
데워지는 맨몸을 가만 안아본다 

 

큰 시험을 앞두고 학교 앞 고시원에서 5개월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내 앞방에는 동기 친구 하나가 투숙했는데 시험이 목전이라 자주 만나 수다를 떨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 애가 조심히 문을 여닫는 소리, 소지품을 뒤적이는 소리, 이불 덮는 소리 그런 게 참 좋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바로 그 소리들 때문에 그토록 추웠던 시절을 무사히 잘 견뎌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수많은 블로그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고시원 같아서 외로운 사람들이 저마다 각자의 방에 오도카니 앉아 지치지도 않고 연신 무어라 끝없이 읊조리는 것인데, 손바닥으로 찬찬히 방을 쓸어보듯 나도 남의 방에 들어가 글을 읽어보다가 오늘 문득 누군가의 슬픔 하나로 나의 맨몸이 데워져서는, 오랜만에 이 시가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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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5 1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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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5 15: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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