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조연미

 

 

손바닥으로 찬찬히 방을 쓸어본다
어머니가 자식의 찬 바닥을 염려하듯
옆집 여자가 울던 새벽
고르지 못한
그녀의 마음자리에
귀 대고 바닥에 눕는다
누군가는 화장실 물을 내리고
누군가는 목이 마른지 방문을 연다
무심무심 조용하지만
숨길 수 없는 것들을
예의처럼 모르는 척 하는 일상
아니다, 아니다 그러나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다
몸의 뜨거움으로
어느 귀퉁이의 빙하가 녹는지
창 너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또 잊혀지는 것들이 생기는 것이다
뻔하고 흔한
세상의 신파들 사이를 질주하며
이번에는 흥청망청 살고 싶어요 소리치며
눈은 내리고
가지런히 슬픔을 조율하며 우는
벽 너머의 당신
찬 바닥에 기대어
누군가의 슬픔 하나로
데워지는 맨몸을 가만 안아본다 

 

큰 시험을 앞두고 학교 앞 고시원에서 5개월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내 앞방에는 동기 친구 하나가 투숙했는데 시험이 목전이라 자주 만나 수다를 떨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 애가 조심히 문을 여닫는 소리, 소지품을 뒤적이는 소리, 이불 덮는 소리 그런 게 참 좋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바로 그 소리들 때문에 그토록 추웠던 시절을 무사히 잘 견뎌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수많은 블로그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고시원 같아서 외로운 사람들이 저마다 각자의 방에 오도카니 앉아 지치지도 않고 연신 무어라 끝없이 읊조리는 것인데, 손바닥으로 찬찬히 방을 쓸어보듯 나도 남의 방에 들어가 글을 읽어보다가 오늘 문득 누군가의 슬픔 하나로 나의 맨몸이 데워져서는, 오랜만에 이 시가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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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5 1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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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5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