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 통합적 사유를 위한 인문학 강의 1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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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와 <정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로크의 <통치론>을 개관하고 있다. 정치사상에 대한 다이제스트식 이해가 아니라, 이들을 개관함으로써 근본적으로 고전독법을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려는 저자의 마음이 곡진하게 와닿는다. 고전독법이라고는 하지만 꼭 고전이 아니더라도 <난이도가 높고 낯선 분야임에도 집요하게 읽어서 기필코 소화시켜야만 하는 책>이라면 어떤 것이든 적용해 볼만 한 독서 방법인 것 같다.  

저자가 안내하는 고전 읽기의 방법으로는 (1)고전의 저자와 그의 시대를 철저하게 이해하기 (2)전체를 통독하고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해보기 (3)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서와 구조를 상상해보기 (4)독특한 표현과 비유들을 찾아내기 (5)소리내어 읽기 (6)문장을 다시 써보기 (7)핵심만 추려내어 요약문 써보기 등이 있다. 고전을 읽을 때는 기본 개념을 철저하게 익히고, 이때 반드시 그 개념의 원어와 우리말 번역어를 함께 익히라고. 요약문을 쓸 때는 서문과 목차를 꼼꼼하게 읽는데, 책 읽을 시간이 정 없을 때는 서문만 정리하거나 목차만 적어두라고 한다. 서문과 목차를 살핀 후에는 대강 읽을 부분과 집중해서 읽을 부분을 나누어 읽을 계획을 짜고, 요약문을 쓸 때는 단문으로 짧게 끊어 쓰라고.     

이 책에 언급된 사상가들을 편집본이나 요약본이나 개론서가 아니라 뚱뚱하고 딱딱한 진짜배기 고전으로 만나볼 수 있을 만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앞으로 나에게 과연 허락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지금보다 훨씬 깊이 있고 논리적인 사고 체계를 갖춘 상태에서 그러한 여유마저 허락된다면 금상첨화이겠으나 현재로서는 도무지 언감생심일 뿐이다. 그러나 언젠가 정말로 그런 때를 만나게 되면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와 같은 강유원 씨 책들이 광맥을 탐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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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100장면 - 가람역사 9
김형석 지음 / 가람기획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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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상에 대한 소개보다도 각각의 사상을 낳은 역사적, 시대적 배경과 철학자 개인의 일대기에 더 초점을 두고 있는 책이다. 백과사전식(?) 구성이라서 철학사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개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데다가 저자의 철학적 관점 역시 현대의 철학사조와는 다소 동떨어진 구석이 있어서 근대 이후 장면 부터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저자는 이 시대를 아직 근세의 시기로 여기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100장면의 편집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언어철학은 비트겐슈타인이 아주 잠깐 등장하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소쉬르-라캉-푸코-들뢰즈-데리다로 이어지는 후기구조주의에 대한 언급은 아예 빠져있다. 대륙철학은 실존주의까지, 영미철학은 프래그머티즘을 설명하는 선에서 100장면이 끝나고 있는데, 아무래도 가람기획의 백장면 시리즈가 꾸준히 이어지기 위해서는 약간의 보완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을 마무리 지으며 서양철학적인 방법으로 한국철학도 체계적으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저자의 제언은 새겨들어 봄직하다. 우리도 조선후기 실학에서 북한의 주체철학과 남한의 80년대 민중운동까지의 사상적 흐름을 체계적으로 엮어 통사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미 이런 책이 나와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만약 나와 있을 정도라면 아무리 그 양이 빈곤하더라도 응당 고등학교 윤리 교과 과정에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다음 챕터로 한국철학이 언급되어야지만 정상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약용, 박지원, 강일순, 함석헌 등 국내에도 탐구해 보아야 할 사상가들이 참 많은데, 이들을 통틀어 시대사적으로 일별할 수 있는 마땅한 책이 나오게 된다면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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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 기념시선집 창비시선 300
박형준 외 엮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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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번부더 299번까지의 창비시선집 각 권마다 시 한 편씩을 뽑아서 엮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아흔 아홉 걸음 걸었던 자리마다 유독 빛나는 시들만 추린 모양이다. 지난 달 초순부터 겨드랑이에 품고 다니면서 자기 전이나 밥 먹기 전이나 하는 무렵에 한 두 편씩 아껴가며 읽었었다. 정복의 야심을 품고 전투적으로 읽었던 책은 읽고 나면 개운하고 의기양양해지는 반면에, 시집은 다 읽고 나면 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마냥 헛헛한 기분이 든다. 김선태 시인의 <조금새끼>는 제일 마지막에 실린 시이다. 아쉬워서 옮겨적어 본다.   

   
 

조금새끼 / 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은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나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새 눈물이 나는 건 왜 일까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 일까요? 아무래도 그건 예나 지금이나 이 한마디 속에 은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있기 때문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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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Gotan Project - La Revancha Del Tango
Gotan Project 노래 / IYA BASTA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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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음반이다 듣고 있으면. 야릇한 긴장이 흐르는 사이로 문득 음흉하고 사악한 종류의 흥이 난다. 음반을 듣는 내내 수상한 무언가에 놀아나는 기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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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15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 책세상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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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모 토론 모임에서 신자유주의 흐름에 배치되는 발제문을 적어야 할 일이 있었다. 어떤 발제든 참혹하게 난도질 당하는 게 예사인 그 모임의 분위기상 아무래도 논거를 탄탄하게 해둘 필요가 있어서 '칼 폴라니'라는 석학의 권위에 호소하기로 작정, 참고도서 명목으로 구입했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러나 참고로 읽기에는 예상치 못하게도 난이도가 너무도 높았던 나머지 결국에는 참고가 아니라 재고가 되어버리고 만 책이기도 하다. 일 년 가까이 지나 재고를 처분할 요량으로 다시 펼쳐들었으나 여전히 독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고 그런 곳은 어쩔 수 없이 건너 뛰었다. 아래는 이 책을 이해되는 선에서 조악하게나마 요약한 것. 

인간이 이익을 얻기 위해 노동을 하게 된 것(정확히 말하면 '이익을 얻기 위해 노동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인류 역사상 최근의 일이다. 유사 이래 노동의 동기는 실로 다양했다. 공적 의무와 사적 책임, 종교적 계율의 준수와 정치적 충성, 서열과 신분, 법적 강제와 처벌의 위협, 공적인 찬양과 사적인 명성 등등. 그런 다양한 동기 가운데 하나로서 '이익추구'가 끼어 있었던 것.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은 놀랄 만큼 복합적이고 다양한 동기에 근거해 노동하고 있지만, 노동의 동기로 오로지 이익을 떠올리는 까닭은 우리가 전적으로 시장경제체제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익추구경향이라는 것은 기실 고유한 생물학적 본능이 아니라, 시장경제체제라고 하는 특정 체제가 가동되기 위해 잠정적으로 전제된 인간의 행동양식에 다름 아니다.   

   
  "일단 사회가 그 성원들의 일정한 행동 양식을 예측하게 되고 지배적인 사회 제도들을 통해 그 행동 양식을 대충 강제해내기에 이르면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들은 그 행동 양식의 이념형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그 이념형이 현실에 부합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상관없이 말이다. 굶주림과 이익도 이와 같은 식으로 경제적 동기로 규정되었으며 인간은 매일매일의 삶에서 그 동기들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것이라 가정되었다. 반면 그 밖의 동기들은 천상계에나 속하는 영적인 것으로, 범속한 존재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p.38)    
   

시장경제체제는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의의가 경제적 이익을 통한 쾌락 추구에 있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지만, 인간은 결코 경제적 이익 추구라는 하나의 본질로 환원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기 이전에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소속되고 인정받기 위해 행동한다. 때문에 시장경제체제 이전의 경제는 일반적으로 호혜성, 재분배, 교환이라는 형태로 인간의 사회관계들 속에 묻어들어가 있었고(ex. 국가간 조공풍습, 품앗이 농경문화, 친척간 선물 교환 등), 시장은 경제 생활의 부속물 이상의 것이 되어본 적이 없다. 사실 경제적 동물로서의 본성이 시장경제를 만들어내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시장 신화'일 뿐이다. 시장은 이익 추구 본능을 가진 인간들이 경제적 교환을 하다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거래에 앞서 사회적인 관계, 즉 '지지구조'에서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시장이 성장하면 어느 순간 경제가 사회의 부속물이 아니라, 사회를 뚫고 나와 오히려 사회를 포섭하는 역전이 일어난다.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는 것. 이때부터는 사회가 반대로 경제체제의 부속물이 된다. (시장 경제는 노동, 토지, 화폐를 포함한 산업의 모든 요소를 포괄한다. 하지만 노동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자체이며, 토지란 그 안에 사회가 존재하는 자연 환경이고, 화폐는 그저 구매력의 징표일 뿐이다. 그것들은 말하자면 '허구상품'이다. 이들을 시장 경제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로서 시장 메커니즘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곧 사회의 실체를 시장의 법칙 아래 둔다는 뜻이다.) 

시장에서의 교환은, 호혜성이나 재분배와는 달리 어떤 인격적, 사회적 관계도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물적 관계이다. 따라서 시장이 주요한 경제제도가 될 때 기존의 사회적 관계는 심한 타격을 입게 된다. 일례로 자기 조정 시장의 작동이 요구하는 '탄력성'이라는 것은 인간과 자연에게 매우 고통스런 존재론적 불안정성을 안겨준다. 이렇게 시장은 사회적 관계와 모순적 관계에 있고, 이런 점 때문에 시장경제체제에 놓인 사회는 시장제도가 사회에 위기와 긴장을 조성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반작용으로서 여러 가지 법적 사회적 금기를 마련한다. 허구적 상품들에 대한 제한, 보호, 규제조치가 그런 것.  

그러나 본질적으로 (1)사회 전체를 시장의 자기 조정에 순응시키기 위한 운동과 (2)시장 경제에 개입하여 시장으로부터 사회 조직을 지키려고 애쓰는 운동은 상호 모순적이고 양립 불가능하다. 시장경제체제는 이러한 내부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경쟁적인 무역 전쟁, 식민지 확장, 제국주의의 방식으로 내부의 모순을 외부로 표출하게 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세계 체제 차원의 위기가 불가피하다. 즉, 시장자본주의는 자신의 터전인 사회 기본 조직의 파괴라는 모순을 그 안에 품고 있기 때문에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유토피아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부딪히는 체제 차원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사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파시즘이다. 전자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경제에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이는 재산과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진보적으로 철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민주적인 정치영역이 사회 전체를 뒤덮게 된다. 반면 파시즘의 해결책은 민주적 정치영역을 철폐해버리고 사회에는 경제 생활만을 남겨놓는 것이다. 파시즘 아래서는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자본주의가 남는다. 이때 인간은 그저 경제적 생산자라는 성격만을 부여받게 되며, 파시즘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마지막 안전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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