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날이었다. 귀기를 품은 바람이 머리칼을 헝클어놓을 때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곤 했다. 음침한 날씨 때문이었을까. 목구멍까지 가득 찬 깔깔한 감정들이 하루종일 기분 나쁘게 넘실댔다. 감전이라도 된 고양이의 곤두선 털처럼 하루 종일 온몸의 신경이 빳빳했다. 이런 날의 상념이란 대체로 비생산적인 생각의 연속일 뿐이고, 언제나 그 끝은 우울이다. 내 안의 음침한 곳에 썩은 물처럼 고여있는 우울. 아무리 건조한 곳에 두어도 좀처럼 제거되지 않는 습기마냥 끈질긴 성질의 그것.

 

오후 내내 나의 직업이 죽음에 기식하는 사업이 아닌가 냉소했고, 장사치 특유의 위장된 친절과 가식적인 호의를 베푸는 데 익숙해진 내 모습을 한없이 자조했다. 날마다 끊임없이 어디론가 함몰하는 시간들은 대체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는지 분개했으며,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나의 파멸을 공모하는 것만 같은 공포에 몸을 떨었다. 끝없는 자기비하와 비애의 한편에서 외부를 향한 알 수 없는 적대감과 공격성은 종양처럼 자라나고. 다감한 격려와 온갖 종류의 호의도, 냉소와 독설로 무색하게 만들어버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서 하루를 보냈다.

 

결국 안부를 물어온 소중한 이의 전화마저 거칠게 받고 말았다. 청소를 핑계로 전화를 끊었으나 방 안의 티끌 하나 줍지 않았다. 간다던 모임도 가지 않았고. 글을 쓰고 나니 조금은 살 것 같다. 은밀하고 어두운 감정일수록 활자로 배설할 때 묘한 해방감과 기쁨을 느낀다. 아, 그러니까 오늘은 날씨 탓이다. 날씨를 핑계로 악의적 인간을 자처하는 고약한 심사의 배후가 대체 무엇일까만은 그래도 날씨 탓이라고 둘러대자. 오늘은 지나치게 날씨가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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