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가 책에서 얼만큼의 지식을 구할 수 있을까. 어쩌면 책에서 얻는 깨달음이란 우리 의식 체계 안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관념의 재확인 같은 게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가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재확인에서 비롯한 기쁨일 거야. 진짜 깨달음은 언제나 활자 너머의 실재하는 삶 가운데 날것으로 있다. 진정한 지적 성취는 오로지 실천과 체험을 통한 의식의 확장으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을 거야. 대략 이런 말을 내뱉고 나서 S는 조만간 몽골로 떠날 거라고 했다.

S가 했던 말을 <이 사람을 보라>에서 니체도 똑같이 한 적이 있다. "결국 어느 누구도 책이나 다른 것들에서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얻어들을 수 없는 법이다. 체험을 통해 진입로를 알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들을 귀도 없는 법이다." S가 딱히 니체에 열광하거나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니체를 구태여 탐독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는 충분히 니체적이다. 말하자면 S는 니체를 사는 사람이고 나는 니체를 쓰는 사람인 것이다. 읽고 꿈꾸고 실천하는 세 가지 절차에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그의 과감성이 잠시, 부러웠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 먹기로 한다. 비록 모험가의 것보다 외양은 화려하지 못하겠지만, 조금은 갑갑한 현재 나의 삶도 나름의 실천과 체험으로 받아들여볼 수 있겠지. 우리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하루를 살아가든 삶을 대하는 데 있어서 핍진한 태도를 잃지만 않는다면, 깨달음의 밀도는 지리적 활동 반경보다도 세월의 무게에 좀 더 비례하기 마련이리라. 이런 걸 자기 위안이라고 하는 걸까마는. 아무래도 나는 시험에 떨어진 이후 부쩍 체념조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상황이(체념의 정서까지도) 어쩐지 자꾸만 막강한 미지의 권력에 의해 아주 오래전부터 부여된 내 몫의 역할인 듯한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