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역사, 사상, 예술을 막론하고 유럽 문명의 세례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하나씩 일별해 나갈수록 어쩔 수 없이 서구문명에 대한 동경심이 내면에 깊숙이 뿌리내려 가는 것 같다. 서구 문명의 저작들 앞에서 지적 압도감을 느낄 때마다 불가피하게 맛보게 되는 사대주의적 열패감은 나로서도 당혹스럽다. 음모와 조작으로 점철된 전형적인 개도국의 발전사라고밖에는 평할 수 없는 오욕과 수난의 한국현대사를 알아갈수록 이러한 당혹감은 배가 된다. 그리고 그와 비견되어 유독 더 찬란해 보이는 서구인들의 전반적인 사고방식, 삶을 대하는 태도, 보편적인 가치관 같은 것들, 그리고 그러한 무형의 것들이 이루어낸 유형의 창조물들... 이런 게 바로 자문화혐오증의 초기 단계가 아닐까 염려되던 차에 읽게 된 소세키 선생의 말씀이 마음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