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는 미쳤다 - 성격장애와 매력에 대한 정신분석 리포트
보르빈 반델로 지음, 엄양선 옮김 / 지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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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자아상(나르시시즘 한편에 극단적 자기혐오 성향이 공존), 불안정한 대인관계(상대편을 지나치게 이상화했다가 일시에 평가절하함), 충동제어장애(자해행위, 갖가지 중독증, 감정조절불능), 만성적인 불만과 참을 수 없는 공허감, 혐오감과 권태, 공포, 조울증, 이드의 유혹에 쉽게 이끌리지만 그만큼 엄격한 초자아가 형성되어 있어 쾌락추구와 자기처벌이 극단적으로 이루어짐, 타인을 혼란에 빠트리고 미칠 지경으로 만들어 관심을 끌어냄.  

스타가 미친 이유이자 경계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특징이다. 경계성 성격장애ㅡ 언젠가 네이버를 샅샅이 뒤진 끝에 나의 정신 상태는 필경 '경계성 성격장애'라는 게 확실하다고 자체 진단을 내린 바 있다. 단지 선정적인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이 책에서 경계성 성격장애라는 용어를 또 다시 접하게 될 줄이야. 이 책에 의하면, 경계성 성격장애는 성인기 초기에 그 증상의 발현이 활발하지만 이 시기를 잘 넘기면 이후로는 나이듦에 따라 증세가 수그러든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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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 - 예술의 최전선
진중권 엮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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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론>에서 플라톤은 미술을 가리켜 이데아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활동으로 낙인찍는다. 미술은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한 현실 세계를 또 다시 모방하기 때문에 이데아로부터 떨어져도 한참이나 떨어진, 다분히 저급한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플라톤이 20세기 추상미술회화를 만났더라도 여전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19세기까지도 가시적 외부 세계를 묘사하는데 충실했던 미술은 추상표현주의 화파의 등장 이후 비로소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미술은 더 이상 대상의 재현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고유한 대상이 된다. “미술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추상회화의 포문을 연 클레가 남긴 말이다. 예술가는 이제 창조된 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 자체를 모방한다. 

모사에서 창조로 나아갔던 근대 이후 회화미술의 흐름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갖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20세기의 사진과 영화가 실재를 모사한 가상으로서 기술복제시대를 열었다면, 21세기의 디지털 이미지는 실재와는 상관없이 자체 합성된 가상으로서 기술복제시대의 다음 단계인 '기술합성시대'를 열었다고 선언한다. 근대 회화미술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매체예술 분야에서도 동일한 방향의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사진과 영화가 모더니즘의 두 축인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을 낳았다면, 이 시대의 혁신적 매체인 디지털 이미지는 어떤 미학적 현상과 사조를 낳게 될 것인가. 이 책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러 미디어아티스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의문을 풀어나가고 있다.  

첫 번째 인터뷰이로 등장한 로이 애스콧은 가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가변현실 속에서 21세기의 자아는 '생성적 이고 창발적'인 성격으로 변모한다고 말한다. 가상현실 속에서 새롭게 구축되는 자아는 '분열'이나 '상실'이 아 니라, '생성'과 '해방'을 의미한다. 이제 자아는 양자물리학에서 전자나 아원자의 상태와 마찬가지로 가상과 현실에 다중적으로 혼재한다. 또한 그는 가상현실이 종내에는 인간의 영적 세계까지도 담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 단계를 '식물현실'이라고 정의하는 그는, 물리적 현실과 가상현실, 그리고 식물현실의 경계가 최종적 으로 무화되어 인간 의식이 이 세 가지 장(場) 사이를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상태야말로 기술합성시대의 인류가 도달해야 할 궁극의 지점이라고 말한다.  

반면, 사이버 페니는 가상현실을 다중자아 생성의 장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세계로 본다. 그에 따르면 가상현실을 비롯한 컴퓨터 기술은 그 사상적 토대를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두고 있기 때문에, 세계에 대한 직관적인 인식과 심신의 통합을 추구하는 예술과는 도저히 맥락이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논리-수학적 기호체계, 보편성, 효율성, 최적성 등을 근본적인 가치로 하는 과학기술은 예술의 내재적 특질이나 그것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상극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미디어 아트 작업을 논하기 전에 미디어라는 기술이 그 도구적 적합성을 가지고 있는가, 과연 그것이 예술의 도구로 쓰이기에 적합한가 하는 점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한다. 

근대 문명도 겨우 적응해 가고 있는 처지에 첨단 기술문명에 대한 논의를 파악하려니 다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인터뷰 대담이라는 형식이 주는 박진감 덕분에 주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재미있게 읽힌다. 특히 저자가 인터뷰어로 나선 챕터를 읽다 보면 문득 백분토론의 한 장면이 연상되기도. 일례로 컴퓨터 게임 기술의 가능성에 무한한 기대를 품고 있는 어느 미디어아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뷰어로 나선 저자는, 비디오게임이 제공하는 모험의 기회들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당면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물질의 저항이 없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가짜 체험이 아닌가, 전쟁게임에 몰입한 학생들이 분절되지 않은 원시적 언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점은 오히려 시대를 퇴보한 듯이 느껴지지 않는가 등등 공격적인 질문을 연신 쏟아내는데, 이에 대한 인터뷰이의 답변도 질문 못지않게 체계적이고 적확해서 관전의 묘미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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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 통합적 사유를 위한 인문학 강의 1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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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와 <정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로크의 <통치론>을 개관하고 있다. 정치사상에 대한 다이제스트식 이해가 아니라, 이들을 개관함으로써 근본적으로 고전독법을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려는 저자의 마음이 곡진하게 와닿는다. 고전독법이라고는 하지만 꼭 고전이 아니더라도 <난이도가 높고 낯선 분야임에도 집요하게 읽어서 기필코 소화시켜야만 하는 책>이라면 어떤 것이든 적용해 볼만 한 독서 방법인 것 같다.  

저자가 안내하는 고전 읽기의 방법으로는 (1)고전의 저자와 그의 시대를 철저하게 이해하기 (2)전체를 통독하고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해보기 (3)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서와 구조를 상상해보기 (4)독특한 표현과 비유들을 찾아내기 (5)소리내어 읽기 (6)문장을 다시 써보기 (7)핵심만 추려내어 요약문 써보기 등이 있다. 고전을 읽을 때는 기본 개념을 철저하게 익히고, 이때 반드시 그 개념의 원어와 우리말 번역어를 함께 익히라고. 요약문을 쓸 때는 서문과 목차를 꼼꼼하게 읽는데, 책 읽을 시간이 정 없을 때는 서문만 정리하거나 목차만 적어두라고 한다. 서문과 목차를 살핀 후에는 대강 읽을 부분과 집중해서 읽을 부분을 나누어 읽을 계획을 짜고, 요약문을 쓸 때는 단문으로 짧게 끊어 쓰라고.     

이 책에 언급된 사상가들을 편집본이나 요약본이나 개론서가 아니라 뚱뚱하고 딱딱한 진짜배기 고전으로 만나볼 수 있을 만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앞으로 나에게 과연 허락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지금보다 훨씬 깊이 있고 논리적인 사고 체계를 갖춘 상태에서 그러한 여유마저 허락된다면 금상첨화이겠으나 현재로서는 도무지 언감생심일 뿐이다. 그러나 언젠가 정말로 그런 때를 만나게 되면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와 같은 강유원 씨 책들이 광맥을 탐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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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100장면 - 가람역사 9
김형석 지음 / 가람기획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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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상에 대한 소개보다도 각각의 사상을 낳은 역사적, 시대적 배경과 철학자 개인의 일대기에 더 초점을 두고 있는 책이다. 백과사전식(?) 구성이라서 철학사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개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데다가 저자의 철학적 관점 역시 현대의 철학사조와는 다소 동떨어진 구석이 있어서 근대 이후 장면 부터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저자는 이 시대를 아직 근세의 시기로 여기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100장면의 편집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언어철학은 비트겐슈타인이 아주 잠깐 등장하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소쉬르-라캉-푸코-들뢰즈-데리다로 이어지는 후기구조주의에 대한 언급은 아예 빠져있다. 대륙철학은 실존주의까지, 영미철학은 프래그머티즘을 설명하는 선에서 100장면이 끝나고 있는데, 아무래도 가람기획의 백장면 시리즈가 꾸준히 이어지기 위해서는 약간의 보완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을 마무리 지으며 서양철학적인 방법으로 한국철학도 체계적으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저자의 제언은 새겨들어 봄직하다. 우리도 조선후기 실학에서 북한의 주체철학과 남한의 80년대 민중운동까지의 사상적 흐름을 체계적으로 엮어 통사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미 이런 책이 나와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만약 나와 있을 정도라면 아무리 그 양이 빈곤하더라도 응당 고등학교 윤리 교과 과정에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다음 챕터로 한국철학이 언급되어야지만 정상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약용, 박지원, 강일순, 함석헌 등 국내에도 탐구해 보아야 할 사상가들이 참 많은데, 이들을 통틀어 시대사적으로 일별할 수 있는 마땅한 책이 나오게 된다면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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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 기념시선집 창비시선 300
박형준 외 엮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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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번부더 299번까지의 창비시선집 각 권마다 시 한 편씩을 뽑아서 엮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아흔 아홉 걸음 걸었던 자리마다 유독 빛나는 시들만 추린 모양이다. 지난 달 초순부터 겨드랑이에 품고 다니면서 자기 전이나 밥 먹기 전이나 하는 무렵에 한 두 편씩 아껴가며 읽었었다. 정복의 야심을 품고 전투적으로 읽었던 책은 읽고 나면 개운하고 의기양양해지는 반면에, 시집은 다 읽고 나면 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마냥 헛헛한 기분이 든다. 김선태 시인의 <조금새끼>는 제일 마지막에 실린 시이다. 아쉬워서 옮겨적어 본다.   

   
 

조금새끼 / 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은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나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새 눈물이 나는 건 왜 일까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 일까요? 아무래도 그건 예나 지금이나 이 한마디 속에 은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있기 때문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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