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외부 클리나멘 총서
이진경 지음 / 그린비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요하고 부동적인 대지에 균열과 불안정의 틈새를 회복"하려는 푸코의 전복적 사유는 후기에 이르러 자기를 배려하는 윤리적 주체를 강조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책 4장에서는 개인의 윤리적 실천이라는 다소 소박한 결말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푸코 사유의 개념적 난점에 주목하고, 그러한 난점을 극복할 만한 실마리를 모색한다.

이 책에 따르면, 푸코 사유의 한계점이라고 할 만한 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권력 관계에 주목하다보니 권력을 선차적인 것으로 상정해 버린 것. 사실 권력이라는 개념이 정의되려는 순간 이미 논리적으로 필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권력에 의하여 길들여지지 않으면 안 될 무언가, 권력을 통해서 특정한 활동의 형식을 부과하지 않으면 안 될 무언가”의 존재. 그것은 “그대로 둔다면 제멋대로 활동해서 정해진 질서를 깨뜨릴 것이 분명한 위험스럽고 불온하고 무질서한 힘”이다. 리비도나 욕망 같은 것. 푸코는 전제가 되는 이 힘에 대해 미처 간파하지 못한 것.

권력을 정의하고 권력 관계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전제가 되는 그 힘은, 그대로 놔둔다면 어떠한 질서나 형식, 정해진 관계로부터 벗어날 것이라는 점에서 "탈주적인 힘"이다. 권력이란 바로 이 힘에 대해 작용하는 것이고, 이 힘을 길들이고 포섭하는 것이며, 이 힘에 어떤 형식을 부과함으로써 그것을 생산적인 어떤 능력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그것은 ‘저항’으로 정의되기 이전에 이미 ‘선차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힘’이다. (탈주적인 힘의 선차성!)

이 책에서 언급하는 푸코 사유의 두 번째 한계점은 그의 권력 이론에 ‘적대’의 개념이 결여되어있다는 것. 푸코에게 '적대'의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가 말하는 적대란 결코 집단 간의 적대가 아니라, 지배집단과 개인, 혹은 권력의 전략과 개인 간의 적대일 뿐이다. 그는 적대를 모든 ‘개별자 간의 대립’으로써 사유하고, 그러한 사유는 결국, 권력관계나 권력의 배치를 그대로 둔 채 다만, 대상을 개별화하고 억압적인 방식으로 주어진 정체성을 묶는 권력에 대해 저항하는, 또 권력에 의해 이미 주어진 개인적 지위에 대해 저항하는 소극적인 수준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저자는 푸코가 말한 ‘개별자 간의 대립’으로서의 적대와는 또 다른 종류인 ‘집단들 간의 이해관계’로서의 적대 개념을 새롭게 제시한다. 그리고 전자로부터 ‘저항’이 생겨나듯이 후자의 경우에는 ‘투쟁’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즉, 권력과 탈주적 힘 사이에서 ‘저항’이 정의된다면, ‘투쟁’은 다양한 ‘집단 간 적대’에 의해, 나아가 적대하는 생체권력들 사이에서 정의되는 것. 저자는 저항이 개인적인 수준을 넘어서 생체권력을 지닌 집단들 간의 ‘투쟁’과 결부될 때, 비로소 적대적 관계를 전복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가능성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가능성이란 단순히 권력관계의 전복이나 권력의 대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투쟁과 결부된 저항의 진정한 가능성이란, 권력관계의 형태변환, 즉 ‘배치의 전복’을 내다보는 것이다. 새로운 권력기술을 창조하여 기존의 권력기술에 의한 권력배치를 재편하는 것이다.

저자는 집단 간 적대(=몰mole적 적대)에 주목하여 투쟁과 결부된 저항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새로운 권력기술을 창조하여 배치의 재편을 기도하는 생체정치를 제안하지만, 과연 역사상 투쟁이라는 방식에 의해 배치가 재편되었던 기존의 사례가 있는가. 푸코의 고고학적 연구를 살펴보면, 이제까지 존재해 왔던 배치의 변화는 어떤 집단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연대하여 투쟁하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 아니라, 개인들 내면의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인식의 변화, 사유의 변화, 그것의 적층에 의해 이루어져 오지 않았나. 저자는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사유의 변화’를 생체정치에서 기대할 만한 효과라고 보는 걸까.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푸코에 따르면 그 어떤 배치 변화도 당대의 인간의 인식 수준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게 아니었던가. 그런 배치의 변화를 당대의 인간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기획한다는 거 자체가 어불성설 아닌가.  

어쨌든, 푸코한테서 영감을 얻은 저자는 계급투쟁을 생체정치의 차원에서 다시 사고하자고, 미시적인 수준에서 혁명의 문제를 다시 사고하자고 말한다. 계급적 관점에서, 몰적 적대의 관점에서 생체권력의 변환을 사고해보자는 것. 대중과 결합하거나 대중을 장악하는 문제를 생체정치의 문제로서 다시 정립해보자는 것. 생체정치적 효과의 차원에서 계급투쟁을 포착해 보자는 것. 아마도 저자는 자본주의체제 내부의 무수한 맹점으로부터 발아하는 조용한 혁명, 내부 안에 숭숭 뚫린 외부로부터 서서히 번져나가는 혁명, 초유의 혁명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이 챕터에서는 맑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각별하게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맑스와 푸코를 혼합하기에는 서로 간에 층위가 너무 다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