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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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송논쟁 당시 서인들의 발언을 꼭 왕권을 위협하는 권력욕의 표현으로만 볼 것인가. 최대한 선의를 가지고 발언에 담긴 진정성을 참작해서 해석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단지 노회한 정치꾼이 아니라, 이념에 단단히 매몰된 근본주의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 인용된 그들의 주장에서는 종교나 이론에 깊이 경도되어있는 자들만이 보여주는 특유의 배타성과 극단적 결벽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논쟁에 가담한 인물들 가운데는 권력의 향방에 따라 표변하는 인간에서부터 원칙과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 철저히 도그마에 사로잡힌 인간까지 온갖 부류들이 다 있었을 테고, 각각의 정치적 태도의 저의를 밝히기란 참으로 모호한 일인 만큼 논쟁의 성격 역시 해석이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 여러 왕들이 갖가지 정황 속에서 비명횡사했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인물은 소현세자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오백 년 왕실의 역사에서 그의 죽음은, 조선 후기의 국운이 좌우되는 운명적 기점 같은 것이 아니었나. 아, 소현세자야말로 조선 역사에 갈림길을 만들어낼 인물이었는데. 하나의 숨막히는 가능성이었는데.

 

3 이 책은 독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왕의 죽음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배경에 무게를 싣고 있는 책이다. 픽션도 아닌데 굳이 제목을 이렇게 자극적으로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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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개정증보판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8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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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유기체적으로 보는 관점이 흘러간 유행인지도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조선왕조의 역사는 마치 생물체의 한살이처럼 와닿는다. 조선의 성쇠에 비추어보면 광복 반세기를 넘긴 대한민국은 이제 갓 신생국의 티를 벗은 상태라고 봐야겠다. 정치 전반을 주도하는 우파 세력이 보여주는 철학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미비하게 느껴지는 점이 그렇고, 정국에 영향을 미치는 자생적인 사상의 흐름이랄 만한 것이 부재하다는 점이 그렇고, 사회 변동이 가라앉으며 계급 구조가 점차 견고해져가는 상황도 그렇고... 기시감이 느껴지는 사건들 하며, 당대의 인물과 오늘의 인물들은 또 얼마나 닮아있는지... 역사는 정말 반복되는 것인가.

이 책을 덮고 나면, "조선은 우리가 쉽게 단정하듯이 지극히 폐쇄적이고 고리타분한 그런 사회가 아니라 대단한 정열과 무게가 내재되어 있는 깊이 있는 세계"였으며, "그 세계 속에 새로운 어떤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고, 우리는 미처 그 점을 발견하기도 전에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과 그 이후 강제된 서구 문명으로 인해 너무나 쉽게 그 세계를 놓쳐버렸다는" 저자의 지적에 절실히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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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책세상 니체전집 7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미기 옮김 / 책세상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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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분석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인간들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 모든 원인을 제거하고 자신들을 구원해줄 외부적 개입자로서 ‘신’이라는 표상을 창조해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리스도교 인간들은 필요에 의해 스스로 만들어낸 이 ‘신’이라는 표상에 의해 짓눌리기 시작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신과 모든 면에서 그렇지 못한 자신을 비교하게 되면서 자신의 본질이 왜소하고 비루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신을 죽여버린다. “신의 표상이 없어지면 신의 명령에 대한 위반으로서의 그리고 신의 손에 있는 인간의 오점으로서의 ‘죄’의 감정도 없어진다.”

 

구원을 통해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제거하여 구원의 서사 구조 자체를 붕괴시켜버림으로써 해방될 것. 니체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신은, 함부로 죽여 버리기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유용한 존재가 아닐까. 신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굴욕과 죄책감, 공포와 불안과 비루함의 감정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신이라는 것은 동시에 우리에게 안정감과 충만감을 주고, 자극적 흥분과 희열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적 측면에서 신은 마치 어른거리기는 기미를 느끼기는 하지만 도저히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대상 a 같고, 도둑맞은 편지 같고, 마력적인 요부 같다. 관계를 끊을래야 끊어버릴 수 없는 애증의, 미지의 대상.

 

사랑이 다른 가치보다 높이 평가되는 까닭이 그것의 이타적 본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발휘하는 효용과 유익성에 있다는 니체 자신의 논리대로, 신 역시 그 본질과 상관없이 우리에게 만족감과 쾌감을 주기 때문에 신을 폐기하는 문제는 재고되어야 한다. 신의 존재감이 과도할 때 인간은 신에 짓눌려 신경쇠약이 되어버리고 또 그러한 신경쇠약에 대항하려는 수단으로서 자기를 학대하는 전형적인 그리스도적 인간이 되어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을 없애버리면 아마도 인간은 따분하고 권태로워서 살 수가 없을 것이다. 혹은 기준점을 상실함으로써 또 다른 신경쇠약에 걸리게 될 것이다.

 

신은 폐기될 수 없다. 신이 우리에게 안락한 느낌을 선사하기 때문에. 또 신이 우리를 고무시키고 황홀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래서 신은 '필요하다’. 그러나 단지 그뿐일까.

 

니체는 형이상학적 예감 혹은 직관이라는 것은 단지 ‘그랬으면 좋겠다’는 내적 바람일 뿐, 그 자체가 형이상학적 진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리고서는 진리의 출생지를 표방하는 철학을 위시한 모든 학문들을 망치로 깨부수려 했지만, 그럼에도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형이상학적 진리에 대해 인식했던 철학자였으며, 어떤 면에서는 니체 자신이야말로 또 다른 형이상학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니체 자신이야말로 “자신의 두려움과 부들부들 떨리는 무릎을 극복하기 위하여 가장 높은 산맥으로 위험한 길을 오르”다가 추락해버린 자가 아닌가. 내가 보기에 그는, 그 자신이 비난하고 혐오하는 것과 너무도 닮아있다.

 

부정은 언제나 우리를 쉽게 피로하게 만든다. 부정은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산출해내지 못한다. 부정은 대개 겉으로는 파괴하는 척 하면서 실은 부정의 대상과 공모한다. 신을 부정하는 것보다는, 신이 아닌 '신성'을 탐구해보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니체는 이마저도 의심하고 경계한다. 이 책 3장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성마저도 은근히 부정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살아가는 날이 다할 때까지 시간을 두고, 깊이 있게, 장기적으로, 인식의 노력을 기울여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니체가 아닌 다른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편이 낫겠다. 니체는 도발적이고 자극적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뭔가 불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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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산다 심플하게 산다 1
도미니크 로로 지음, 김성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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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정신을 찍어 내는 게 바로 집이며, 인간은 자신이 사는 장소의 지배를 받는다. (...) 환경은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고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이 살고 있거나 살았던 장소를 보면 그 사람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삶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 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물건을 가지고 사는지도 중요하다. (...) 물건은 ‘많이’ 가지는 게 아니라 ‘좋은’ 것을 가져야 한다. 적게 소유하되 제일 좋은 것을 소유하자. (...) 좋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물건들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일체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심플하다는 것은 꼭 필요한 약간의 물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물건은 꼭 그것이 아니면 안 되는 것과 유용한 쓰임새가 있는 것만 두자. 그 물건이 없으면 우리 삶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런 것 말이다. (...) 여백이 충분한 집에 산다는 것은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있다는 뜻과 같다. 그런 공간 안에서는 물건에 소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아하게 살면 삶이 훨씬 더 풍요롭다. 우아하게 산다는 것은 아침을 먹기 전에 부스스한 머리부터 빗고 밥상에 앉는 것을 말한다. 밥을 먹는 동안 감미로운 음악을 틀어 놓는 것을 말한다. 주변에 플라스틱과 비닐 제품은 가능한 한 두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쁜 고급 식기를 찬장에만 넣어두는 게 아니라 매일 쓰는 것을 말한다.”

 

“삶에는 미학적 가치와 철학적 가치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생활에 소박한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몸짓, 물건, 옷매무새, 행동 방식이 정신과 하나가 되어야 하며, 그 속에 예술이 담겨 있어야 한다.”

 

“정말 필요한 것은 생각하고 느끼면서 먹는 것이다. 잘 먹는다는 것은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음식과 우리 몸을 존중하면서 먹는 것을 뜻한다. (...) 잘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매 순간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을 뜻한다. 먹는 순간에도 의미는 중요하다. (...) 혼자 밥을 먹더라도 아름답게 먹자.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매만지고 몸을 깨끗이 하자. (...) 포만감은 양이 아니라 질에 의해서, 즉 음식의 질과 음식을 먹는 장소의 질,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 우리 마음 상태의 질에 의해서 좌우된다.”

 

“좋은 음식을 소식하고, 일찍 자고, 운동하고, 배움을 멈추지 말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고, 매일매일 자신이 찾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즐거움을 찾아내자. 검소하게 차려입고, 자신에게 걸맞은 정직한 친구들을 사귀고, 정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책을 읽고, 좋은 환경을 만들고, 상식을 실천하자. (...) 하루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한 가지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 한 가지는 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하자.”

 

“책의 내용에 대해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식으로 선을 그으면서 읽을 필요는 없다. 현명한 사람은 책에서 모순을 찾아내는 대신 사실 자체를 이해한다. (...) 읽을 수 있는 이상의 책을 소유하지 말자. (...) 책만 많이 읽기보다는 읽기와 쓰기를 병행하자. (...) 이해하면서 읽고 쓰는 것은 자기 것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것이 된 내용은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일들을 더욱 풍성하게 느끼고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 읽기와 쓰기, 생각하기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꿀을 모으는 꿀벌처럼, 이런저런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것을 ‘수확’하자. 다양한 새로운 지식을 모아서 자기 자신을 보다 견고하고 완전하게 만드는 데 정성을 기울이자.”

 

“배운다는 것은 머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을 적극적으로 변하게 만드는 것이다. 몸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학습한 모든 것의 물리적 결과에 해당한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배움, 새로운 능력은 몸과 마음을 성장시킨다. (...) 배움의 궁극적 목적은 좀 더 풍요롭고 유연한 삶을 사는 것이다.”

 

“심플한 삶은 물질의 가치를 바르게 평가하고, 행복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돈과 시간, 물건을 현명하게 쓰는 균형 잡힌 삶이다. 심플하게 산다는 것은 단지 간소한 삶에 만족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플한 삶은 보다 고결한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동경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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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쇼팽 & 리스트 : 피아노 협주곡 1번 - DG Originals
리스트 (Franz Liszt) 외 작곡, 클라우디오 아바도 (Cladio Abbado) / DG / 196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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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헤리치의 쇼팽 피협.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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