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철학과 춤은 곧장 간다. 그런 게 좋다. 우회하지 않고 곧장 가는 것. 본질을 향해 직행하는 것. 정수만을 취하는 것. 우주는 광대오묘하고 생계는 시급하고 수명은 유한하니, 우회할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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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혁명 - 녹색마을 자연학교의 참살이 건강 비법
이태근 지음 / 더난출판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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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어쩔 수 없이 먹고사니즘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거라면 이왕 제대로 된 먹고사니스트가 되어보자. 요즘의 화두는 이거다; 내 몸과 마음 먼저 구체제로부터 벗어나는 것. 내 몸과 마음을 상대로 평화 생명 생태 환경 운동하는 것. 내 안의 미시물리젹 영역에서부터 변화를 꾀하는 것. 그러므로 혁명은 밥상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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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훈 內訓 문명텍스트 5
소혜왕후 지음, 이경하 주해 / 한길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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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위엄이란 이런 것인가. 편견을 잠시 제쳐두고 읽어보면 기대 이상으로 뜻깊은 말들이 많다. 내가 사는 시대가 여전히 여러 방면에서 조선 사회의 자취가 남아 있어 그렇기도 하겠지만 원래 화평한 가족 관계를 위해 부녀자가 명심해야 할 사항이라는 것 자체가 동서고금으로 적용되는 보편적 지침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소혜왕후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기만 한다면야 성인군자가 따로 없겠지만 나로서는 영 불가능한 일이므로 그저 몇몇 좋은 구절 곰곰이 옮겨 적어보는 것으로 만족할 따름이다.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 뜻이고 입 밖에 내는 것이 말이다. 말이라는 것은 영예와 치욕의 관건이며, 사람과의 관계를 친밀하게도 하고 소원하게도 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또한 능히 굳은 것을 풀게도 하고 서로 다른 것을 합치기도 하며 원한을 부르기도 하고 적대감을 일으키기도 하니, 크게는 나라를 뒤엎고 집안을 망치며 작게는 육친을 이간시키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현명한 여자는 입을 조심하니, 부끄러움과 험담을 불러들일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혹시 윗사람 앞에 있거나 한가하게 있을 때, 조금이라도 말대꾸하거나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고, 심사숙고하지 않은 말이나 장난하는 말을 하지 않으며, 더러운 일에 간섭하지 않고 혐의를 받을 곳에 가지 않는다.

 

맑고 여유로우며 정숙하고 고요하여 절개와 가지런함을 지키며 행동함에 부끄러움을 알며 움직이고 멈춤에 법도가 있음이 바로 부덕(婦德)이다. 말을 가려서 하고 나쁜 말은 하지 않으며 때가 된 후에 말하여 다른 사람이 싫어하지 않게 하는 것을 바로 부언(婦言)이라 한다. 더러운 때를 씻어서 옷과 치장을 청결하게 하며 때에 맞추어 목욕하여 몸을 더럽게 하지 않는 것이 부용(婦容)이다. 오로지 길쌈에 마음을 두고 놀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술과 밥을 정결히 마련하여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바로 부공(婦功)이라 한다. 이 네 가지는 여인의 큰 덕이므로 폐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행하기는 매우 쉬우니, 단지 그것을 마음에 두면 되는 것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인(仁)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하고자 하면 곧 인이 이를 것이다” 했으니, 바로 이를 두고 말함이다.

-언행장 中에서

 

시부모가 며느리를 얻는 것은 효를 행할 수 있는가에 달렸으니, 진실로 효를 다하지 못한다면 너를 들여 무엇하리오. 며느리 된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경하고 삼가며 터럭만큼이라도 시부모의 뜻에 어긋날까 염려하여야 한다. 시부모의 존귀함은 그 높기가 하늘 같으니, 모름지기 공경하여 자신이 현명하다고 믿지 말 것이요, 혹시 매질이나 꾸지람이 있더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라. (...) 말로써 자신을 해명하려 한다면 이는 곧 시부모를 거스르는 것과 같다. 오로지 자신을 굽히고 좇아서 효와 공경에 더욱 힘써야 한다. 혹시 불러서 시키는 일이 있거든 명을 듣는 즉시 행해야 하니, 비록 몹시 힘든 일일지라도 어찌 감히 자신의 편안함을 구하리오. 평상시에는 봉양을 다하여 시부모가 시장하지 않으실까 염려하고, 병이 나시면 극진히 염려하며 옷의 띠를 풀지 말아야 한다. 후손들도 이를 본받아 너와 같이 할 것이다. 몸으로 가르치면 저들도 따를 것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할지어다.

 

아들이 그 아내를 매우 마땅하게 여기더라도 부모가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그를 내보내야 한다. 아들이 그 아내를 마땅하게 여기지 않더라도 부모가 말씀하기를 “이 아이가 나를 잘 섬긴다” 하시면, 아들은 그와 부부의 예를 행하여 죽을 때까지 쇠하지 말아야 한다.

-효친장 中에서

 

공경하고 삼가고 중히 여기고 바르게 한 뒤에 친해지니, 이것이 예의 대체(大體)이다. 이로써 남녀의 분별을 이루어 부부의 의리를 세운다. 남녀가 분별이 있은 후에야[남녀가 각각 정해진 짝이 분명하여 다른 사람과 어지럽게 섞이지 않아야] 부부가 의리가 있으며, 부부가 의리가 있은 후에야 부자가 친함이 있으며, 부자가 친함이 있은 후에야 군신이 바름이 있다. 그러므로 “혼례는 예의 근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무릇 혼례는 만 세대의 시작이니 (...) 정직과 신의로써 고하여야 한다. 신의는 사람을 섬기는 도리이며, 그것이 바로 부덕(婦德)이다. (...) 분별이 없고 의가 없음은 금수의 도이다.

 

혼인할 때 재물을 논함은 오랑캐의 도이니, 군자는 그러한 마을에 들어가지 않는다. 옛날에는 남자와 여자의 집안이 각각 덕이 있는가를 가렸을지언정 재물로써 예를 삼지는 않았다.

 

무릇 혼인을 의논할 때는 마땅히 그 사위와 며느리 될 사람의 성품과 행실, 가법이 어떠한가를 먼저 살펴야지, 구차하게 그의 부귀함을 흠모하지 말아야 한다. 사위가 진실로 어질다면 지금은 비록 빈천해도 이후에 부귀해지지 않을 줄 어찌 알 것이며, 진실로 불초한 자라면 지금은 비록 부유하고 번성해도 이후에 빈천해지지 않을 줄 어찌 알리오. 며느리는 집안이 성하고 쇠하는 이유가 된다. 진실로 한때의 부귀를 흠모하여 맞이하면, 그 부귀함을 믿어서 남편을 가벼이 보고 시부모에게 오만하게 굴지 않는 자가 드물다. 교만하고 투기하는 본성을 기른다면, 훗날 우환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가령 아내의 재물을 이용하여 부를 이루고 아내의 세력에 의지하여 귀함을 취한다 한들, 진실로 장부의 뜻과 기개를 가진 자라면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혼례장 中에서

 

아내가 비록 남편과 대등하다고 하나 남편은 아내의 하늘이다. 마땅히 예로써 공경하여 섬기되 아버지와 같이 해야 하니, 몸을 낮추고 뜻을 나직이 하여 거짓으로 존대하지 말고, 오로지 순종함을 알아서 감히 그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남편이 가르치고 경계하는 말씀을 들을 때는 성인의 글귀를 듣는 것같이 하고 남편의 몸을 구슬이나 옥돌같이 소중하게 여기고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지켜야 하니, 감히 마음놓고 제멋대로 하랴. (...) 남편에게 허물이 있으면 자세하게 간하되, 그 이로움과 해로움을 진술함에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말을 완곡하게 해야 한다. 만약 남편이 크게 화를 내거든 진정이 된 후에 다시 간해야 하니, 비록 매를 맞는다 해도 어찌 감히 원한을 품으리오. (...) 서로 의지하며 함께 늙어가야 하니, 하루만 살고 말 것이 아니다. 사소한 일이라도 반드시 여쭈어야하니, 어찌 잠시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오. 제멋대로 한다면 사람이 아니다. (...) 남편 집안의 허물을 친정 부모에게 말하지 말아야 하니, 이는 단지 부모에게 근심을 끼칠 뿐이다. 이야기한다고 해도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시집가는 것을 ‘돌아간다’[歸]고 말하니, 죽고 사는 것이 그로써 결정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니저러니 떠든다면 그것은 말이나 소만도 못한 짓이다. 집안을 일으키고자 한다면 온화하고 순종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데, 무엇으로써 여기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역시 공경하는 자세에 달려 있다.

 

여자의 수신은 경(敬)만한 게 없고, 강하게 되지 않으려면 순(順)만한 게 없다. 그래서 경순(敬順)의 도를 부인의 큰 예라고 한다. 무릇 경(敬)이란 다름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함’을 말하고, 순(順)은 다름 아니라 ‘넓고 크며 조용함’을 말한다. 오랫동안 지속한다는 것은 ‘만족하는 데서 그만 둘 줄 아는 것’이고, 넓고 크며 조용하다는 것은 ‘공손하게 아래에 처함을 숭상하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 좋으면 종신토록 헤어지지 않는데, 방 안에서 함께 기거하다 보면 만만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긴다. 만만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면 말이 지나치게 되고, 말이 지나치면 필시 태도가 방자해진다. 태도가 방자해지면 남편을 무시하는 마음이 생기니, 이는 만족하는 데서 그만둘 줄 알지 못함에서 기인한 것이다. (...) 남편을 무시함이 정도를 넘으면 꾸지람을 듣게 되고 분노가 그치지 않으면 회초리가 뒤따른다. 무릇 부부가 된다는 것은 의리로써 화친하고 은혜로써 화합하는 것이다. 매질이 있게 되면 무슨 의리가 있을 것이며, 비난이 난무하는데 무슨 은혜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은혜하는 마음과 의리가 다 없어지면 부부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

 

<여헌>에 이르기를 “한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이른바 영원히 함께하다가 삶을 마치고, 한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이른바 영원히 관계가 끝난다”고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말하건대, 그[남편]의 마음을 얻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마음을 구하는 방법이 아첨하고 아양을 떨면서 구차하게 친해짐을 말한 것은 아니다. 진실로 마음을 올곧게 하고 용모를 단정하게 하는 것, 즉 ‘전심정색’(專心正色)만한 것이 없다. 예와 의를 함께 갖추어서, 귀는 더러운 말을 듣지 않고 눈은 비뚤어진 것을 보지 않으며, 외출 시에 지나치게 치장하지 말고, 들어와서 차림을 아무렇게나 하지 말며, 사람을 모아 무리를 짓지 말고 문틈으로 엿보지 말 것이다. 이와 같다면, 마음을 올곧게 하고 용모를 단정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행동이 가볍고 보고 듣는 것이 일정치 않으며, 집에서는 헝클어진 머리에 아무렇게나 하고 있다가 밖에 나갈 때는 요조숙녀와 같은 태도를 지으며,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본다면, 이것은 마음을 올곧게 하고 용모를 단정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해야[얻어야] 할까? 진실로 곡진히 따르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 시어머니가 그르다고 여기지 않아 ‘네가 옳다’고 말해도 진실로 명을 따라야 하고, 시어머니가 ‘네가 틀렸다’고 말해도 그 명에 순종하여야 한다. 시비를 따지거나 곡직을 분별하지 말아야 하니, 이것이 이른바 곡진히 따르는 것이다.

 

온갖 일이 부인들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많으니, 사납게 투기하고 독을 품고 원망하게 되면 크게는 집안을 허물어뜨리고 작게는 몸을 망치게 된다. 눈을 들어 살펴보면 모두가 도도히 그러하다. 오직 관대하고 자비로우며 편파적이지 않음을 가리켜 이른바 덕을 지녔다고 하니, 그러면 응당 집안은 저절로 화락해질 것이다.

 

정태중의 부인 후씨는 시부모를 섬김에 그 효성과 삼가는 태도로써 칭송을 받았으며, 태중과 더불어 마치 손님처럼 서로를 대하였다. 태중은 그 내조에 힘입어 예의와 공경이 더욱 지극하였고, 부인은 겸손과 순종으로 스스로를 다스려 비록 사소한 일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한 적이 없고 반드시 여쭈어본 후에야 행하였다.

-부부장 中에서

 

맏며느리와 작은며느리는 형제와 같으니 정과 의리의 돈독함이 남과 같을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는 어진 사람을 만나서 감동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힘써 선을 행하여 함께 늙어감을 기약한다. 어떤 경우에는 모질고 사나운 사람을 만나서 망령된 뜻을 서로 더하기도 하지만, 이때는 오직 자기의 잘못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 어느 겨를에 남을 근심하리오. 두 개의 굳센 것이 싸우면 필시 하나가 꺾이게 마련이니, 부드러움으로써 대응하여야 이지러진 것을 거의 온전하게 만들 수 있다. 내가 오직 공손한 태도로 그의 노하고 업신여김을 무던히 여기고, 내가 오직 먼저 베풀고 그 보답을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작은 이익을 다투어 지친(至親)의 관계가 어긋나게 해서는 안 된다. 지친은 얻기 어려우니 어찌 이익을 말할 수 있으리오. 단명하고 장수함은 미리 헤아릴 수 없으니, 힘으로 빼앗아 가진들 후에 누가 이을 줄 어찌 알리오. 함께 사는 백 년이 잠깐 사이에 지나가니, 길고 짧음을 다투어 무엇 하겠는가.

-돈목장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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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컴을 통해 소개되는 일반적인 스윙댄스(린디합)의 모습은 기예적인 요소를 특징으로 하는 신나고 경쾌한 복고풍 커플댄스 정도인 것 같다. 항상 그게 아쉽다. 그렇게밖에 비춰지지 못하는 게. 스윙댄스는 단지 기운이 넘치고 신나기만 한 춤이 아니다. 이 춤의 곳곳에는 촌철살인의 유머와 재치가 번뜩이고, 낭만과 에로스가 넘쳐 흐른다. 정신이 달아날 만큼 역동적이지만 느린 템포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우아하고 품위있고 서정적인 춤이기도 하다.

 

스윙댄스야말로 니체적 의미에서 진정한 그리스인들의 춤이자 강자적인 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춤이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은 오로지 자유와 기쁨, 해방과 발산이다. 이 춤 어느 구석에도 한恨이나 원한감정 같은 건 없다. 스윙댄스는 승화시킬 응어리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비장미라든가 심오한 정신성 같은 걸 보여주지는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깊이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바로 그 점이 곧 이 춤의 지극한 건강성을 입증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살사가 교미를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 같다면, 스윙댄스는 그 어떤 초자아로부터도 짓눌려본 적 없는 천진무구한 아이들의 유희 같고, 절도와 엄숙함이 느껴지는 탱고는 중력의 영靈에 짓눌려 내면이 비대해진 문명인들의 제의祭儀 같다. 물론, 언젠가 탱고를 배우게 되면 순식간에 표변하여 탱고야말로 인류가 창조해낸 모든 춤의 종착역이라 예찬할 지도 모를 일이므로 이런 인상평은 함부로 내뱉을 것이 못 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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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0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0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윙판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 가운데 하나로 '스윙감'이라는 게 있다. 댄서가 스윙댄스 특유의 탄성력을 온몸으로 발휘하게 되면 마치 탱탱볼이나 젤리처럼 그의 육체적인 물성이 전적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같은 상태에서 댄서의 탄성운동이 스윙 음악의 리듬과 선율 그리고 파트너의 움직임과 완벽한 삼위일체의 조화를 이루면 소위 그 '스윙감'을 느끼는 상태가 된다. 스윙감이 최고조에 달할 때의 느낌은 가히 무당이 접신했을 때의 순간과 견줄 만 하다고 여겨져 스윙판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스윙신과 접신했다고 혹은 스윙신이 강림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스윙감을 느끼지 못하는 춤은 춤이라고 할 수가 없다. 춤의 흉내만 내고 있는 기계적 운동일 뿐. 그러나 춤 실력이 일정 고도에 오르고 커넥션이니 모멘텀이니 하는 춤의 물리적 운동 기술에 대해 이론적으로 조예가 깊어진다 해도 스윙감을 영구적으로 획득할 수 있느냐 하면 또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춤판의 고수라도 스윙감이 떨어져 오랫동안 슬럼프를 겪기도 한다. 다른 모든 '감'들처럼 스윙감 역시 노력하는 자에게 어느 날 문득 축복처럼 찾아왔다가 또 그렇게 예고 없이 달아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플로어에서 파트너와 정신없이 춤추다가 어느덧 스윙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러니까 마침내 '접신'하게 되었을 때의 그 황홀한 기분, 일순간 춤의 진리를 터득한 듯한 그 짜릿한 기분은 결코 영구 소장할 수가 없다. 감동적인 책이나 진귀한 물건은 금전적으로 각혈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입수하여 소장할 수가 있는데, 춤판에서 느끼는 절정의 순간은 소유의 차원을 넘어선다. 마치 무수한 광선 입자들의 끊임없는 운동 속에서 홀로그램이 비로소 하나의 상으로 떠오르듯이, '이것이 진정 춤이다'고 말할 수 있는 바로 그 접신의 순간은, 오로지 부단한 발동작과 현란한 춤사위 속에만 일시적으로 찾아올 뿐이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춤은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현상한다. 철저히, 가차없이, 냉엄하게 그러하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결코 지닐 수가 없다는 것. 그저 일시적으로 체험하거나 추억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 너무나 찬란하면서도 영원히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환영 같은 그런 속성 때문에 춤은 그토록 황홀하고 또 그토록 허무한 것이리라. 춤에 관해 이런 생각이 들면 나는 정말로 마음 한구석이 푹 내려앉는 것만 같고, 내려앉아버린 그곳이 뭉근하게 아려오고, 그럴수록 더욱 더 춤에 열광하게 된다. 손아귀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어떻게든 움켜 쥐어보려고 안달하는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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