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이 본 것은? - 0~3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20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글, 그림 / 보림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달님이 해님에게 투덜거린다. “난 너무 속상해. 한 번도 세상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그래서 해님은 달님에게 낮에 본 것들을 소개시켜주기 시작한다. 도시와 시골과 집과 숲, 숲속의 작은 꽃, 개의 앞모습과 뒷모습, 화려한 문양의 양탄자를 두른 코끼리, 새, 표범, 사자, 하마, 도마뱀, 팰리컨 등등. 해님은 으스댄다. “어때, 재미있지? 난 정말 운이 좋아! 이 세상 모든 걸 다 볼 수 있으니까!” 그러자 격분한 달님 왈, “아니야, 너도 못 보는 것이 있어. 나는 밤마다 보지만, 너는 앞으로도 영영 못 볼 걸. 뭐냐구? 바로 어둠이지”

 

어둠은 그 보드라운 겨드랑이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품고 있나. 비록 도시와 시골과 코끼리와 새와 표범과 사자 등속은 볼 수 없어도 밤에는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들”이 보인다고, ‘봄밤’이란 시에서 김수영 시인은 그랬다. 그래서 따스한 어둠 속에 땅속의 벌레처럼 오래도록 가만히 옹크리고 있노라면 “귀여운 아들” 같은 영감(靈感)이 문득 찾아올 거라고. 그러므로 달님은 해님이 좀 으스대더라도 부디 심기 불편하지 말기를. 이면의 비밀을 감지하고 영감을 낳고 새벽을 열줄 아는 어둠에 대해 좀 더 자부심을 갖기를. 창 너머로 보름달이 다사로운 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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