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 (검정색 표지) - 내 안의 광기가 때로는 인생에 도움이 된다
케빈 더튼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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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 소시오패스>(M.E.토머스, 푸른숲, 2014)에 이어 읽었다. 이 책의 말대로 사이코패스라는 것이 '성격'이 아니라 '상태'에 가까운 것이라면 자기계발의 일환으로 내 안에 잠든 사이코패스성을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 적극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키아벨리식 자기중심성, 비순응성, 비난 외재화, 태평한 무계획성, 겁 없음, 자신감과 매력, 스트레스 내성, 낮은 불안감과 냉정함(평정심), 고도의 집중력, 성과와 자극 추구 경향 등 살아가는데 여러 모로 유용한 점이 많은 기질이 아닌가. 특히 후반부에 사이코패스적 경향을 동양의 명상 수행이 도달하려는 마음 상태에 견주는 대목이 인상적인데,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충동이라든가 위버멘쉬의 경지 이런 것도 실상은 대단히 사이코패스적인 상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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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 Best Of The Best
심수봉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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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단기 알바와 장기 알바가 있고 단기 적금과 장기 적금이 있듯이 하긴 그런 것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역시 세상에는 단기 슬픔이 있고 장기 슬픔이 있는 게 아닐까. 단기적인 슬픔은 예컨대 두 시간 짜리 최루성 영화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보고 나면 일요일 아침 목욕탕에라도 다녀온 것 같은 슬픔이다. 그런 건 참 좋다. 개운한 슬픔이 아닌가. 그런데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지속되는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 장기적인 슬픔은 목욕탕은커녕 점차적으로 인간의 낯빛을 칙칙하게 만들어버리는 아주 강력하고도 사악한 종류의 슬픔인 것 같다.
 
오랫동안 안 씻어서 땟국물에 찌든 사람 옆에 가면 특유의 냄새를 맡아볼 수가 있듯이 장기적인 슬픔에 찌든 사람에게서도 어찌할 수 없이 시큼한 냄새가 난다. 아무리 호쾌한 표정을 가장해도 결국에는 이상한 냄새가 온몸에서 스물스물 번져 나와버린다. 절여지는 것이다. 음식이든 사람이든 절여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존재론적으로 완전히 비가역적인 변형이 일어나서 발산하는 기운조차도 전연 새로운 종류가 되고 마는, 그런 무시무시한 현상인 것이다. 
 
장기적인 슬픔은 원, 눈물도 안 나온다. 눈물이 안 나온다는 거야말로 정말이지 눈물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화가 안 된다는 거니까. 중금속이 축적되듯이 누액이 체내에서 찐득하게 농축되어 가고 있다는 거니까. 눈물 대신 나의 경우에는 명치 끝에서 종종 이상한 기미가 느껴지고 그런 걸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그러니까 가슴 속에서 무슨 웨하스 같은 게 서걱서걱 부서진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증세로 미루어 짐작컨대 배출되지 못한 모종의 독성 물질로 인하여 나의 내장기관 어느 부위가 서서히 부식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단순히 건강 염려증 환자의 헛소리라고만은 치부할 수 없는 어떤 강력한 직관적 예감마저 드는 것인데 
 
이런 증세는 누적된 슬픔의 원인이 워낙 복합적이라 그런지 완치도 힘든 것 같다. 그러니 만성 비염이나 만성 편두통에 시달리듯이 일평생을 시큼한 냄새가 진동하는 웨하스 부스러기들과 더불어 동고동락하며 살아갈 밖에는. 무식한 건지 축복인 건지 이십대에는 몰랐다. 영혼의 등뼈로 견뎌야 하는 그런 장기적인 종류의 슬픔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그것의 존재를 눈치챘을 즈음에야 비로소 심수봉이 들렸다. 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했다는 그 간곡한 고백이 불현듯, 믿을 수 없이 구성지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것도 일종의 득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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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en Souza - Essentials
카렌 수자 (Karen Souza) 노래 / 씨앤엘뮤직 (C&L)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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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 아, 수자. creep을 이토록 '데카당'하게 부를 수도 있구나. 재즈 편곡된 creep에는 쉬 런런런- 하는 절정부가 빠져있다. 뇌쇄적인 목소리의 그녀는 절규하기에는 너무도 나른한 걸까. 노래의 마지막 가사인 i don't belong here는 중의적으로 들린다. don't는 실은 want이기도 하며 will이자 will not이기도, should이자 shouldn't이기도 할 것이다. 정확히는 그 사이 어디 쯤일 것이다. 혼돈과 불안과 자조로 범벅이 된, 종잡을 수 없는 그 사이 어디 쯤의 미묘함일 것이다. 역시 데카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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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레닌
볼프강 베커 감독, 다니엘 브륄 외 출연 / 영화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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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철한 인민정신으로 무장한 주인공의 어머니는 그 자체로 동독의 상징이다. 쇠약해진 그녀의 건강을 보전하기 위한 명목으로 주위 모든 혈육과 이웃이 총동원되어 벌이는 끝없는 조작과 기만적 연출. 눈물겹다 못해 차라리 희극적인 거짓말의 향연 속에서 어머니는 내내 정신 못 차리다 결국 한줌 재가 되어 폭죽으로 화(化)하고. 한 편의 요란한 부조리극 속에서 동독은 패망했지만 동독이 꿨던 꿈은 그렇게 밤하늘에 흐르는 별이 되었다. 동독에 바치는 애틋한 송가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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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 (1888~1889) 책세상 니체전집 15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백승영 옮김 / 책세상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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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예술가는 자신의 무엇을 전달하는 것인가? 그가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끔찍한 것과 의문스러운 것 앞에서의 공포 없는 상태가 아닌가? -그 상태 자체가 지극히 소망할 만한 것이다; 이런 상태를 알고 있는 자는 이것에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그가 예술가라면, 그가 전달의 천재라면, 그는 그 상태를 전달하며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강력한 적수 앞에서, 커다란 재난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문제 앞에서 느끼는 용기와 자유- 이런 승리의 상태가 바로 비극적 예술가가 선택하는 상태이며, 그가 찬미하는 상태이다. 비극 앞에서 우리 영혼 내부의 전사가 자신의 사티로스의 제의(祭儀)를 거행한다; 고통에 익숙한 자, 고통을 찾는 자, 영웅적인 인간은 비극과 더불어 자신의 존재를 찬양한다- 오직 그에게만 비극 시인은 그런 가장 달콤한 잔혹의 술을 권한다. -163쪽

 

니체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삶이 비극으로 느껴지는가? 비극이란 가장 달콤하고도 잔혹한 술이다. 맛보라. 견뎌보라. 견디면서 음미하고 즐겨보라. 쾌감을 느껴보라. 승리감에 도취되어보라. 너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은 너를 강하게 할지니, 네게 비극을 권한다. 서서히 입안 가득 퍼져나가는 고통과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비로소 얻어지는 황홀한 승리의 무아경을 만끽해보라.

 

고통을 신성화하며 마치 독주에 취하듯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의 비극성에 응하는 강자적 방식이라면, 반대로 분노와 원한 감정에 젖어 비극적 삶의 배후 원인을 추적하고 책임을 추궁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약자적 태도다. 비난하는 일 그러니까 궁핍한 모든 악마를 욕하는 일은 즐거움을 준다. 그러한 행위가 다소간의 권력의 도취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심리, 그리하여 복수욕의 대상을 찾으려고 하는 심리- 그 이면에는 이렇게 은밀한 쾌락을 얻고 권력에의 도취를 만끽하려는 교활한 충동이 깔려있다.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주의자와 그리스도교인들이야말로 이 같은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데카당들이다. 전자가 자신의 고통스런 삶의 원인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린다면, 후자는 원죄 개념을 창안하여 그 원인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다. 전자가 '사회'를 유죄 판결하고 비방한다면, 후자는 '세상'에 유죄 판결을 내리고 비난한다. 전자가 꿈꾸는 복수의 최종 목표 지점이 '혁명'이라면, 후자가 꿈꾸는 복수의 최종 지점은 '최후의 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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