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관중이 운집해 있는 곳에서는, 어떤 이가 한 가지 행동을 취했을 때 그에 대하여 수만 가지 견해와 수만 가지 평가, 그리고 수만 가지 추측이 나올 수 있다. 그 중 진실은 어떤 것일까. 나는 절대적인 진실은 절대적으로 부재하다고 믿는다. 오직 저마다의 진실, 파편 같은 진실이 존재할 뿐이다. 좀더 냉정히 말하면, 그것은 '진실'이라 명명하기에도 보잘 것 없는, 그저 개인의 욕망의 반영일 뿐이겠지만. 그러므로 나의 진실을 너에게 강요하는 것은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침묵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스윙판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침묵하는 것은 이미 사교계의 속성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윙판이라는 곳은 말하자면 바로크 시대 궁중 사교의 장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파편 같은 진실들이 날마다 무수한 공명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흥겨운 재즈 선율의 장막을 걷어내면, 그곳에는 저마다의 진실들이 수챗구멍의 머리칼처럼 미친 듯이 엉켜있는 것이다. 억측과 소문이 난무하고, 뒷담화와 요설이 끊이지 않으며, 오해와 곡해가 음산한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스윙판에서 우리는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옥 같은 스윙판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미지의 허상을 부유하는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끼면서도, 혹은 표적이 되어 무수한 화살을 맞으면서도, 가십과 구설수의 핵심 인물이 되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도, 그도 아니면 열심히 춤추고 나서 홀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슴 저린 공허에 몸을 떨면서도- 그 모든 비인간적 사태를 감내하며 땀에 절은 스윙화를 꺼내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 때문에 쓸쓸하고 사람 때문에 상처받으면서 또 다시 사람의 소굴로 찾아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춤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누군가 그 까닭을 물어본다면, 진부하지만 나는 그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서라고 말하겠다. 스윙판은 참으로 찬란한 사바세계다. 어쩌면 스윙판에도 프랙탈 구조처럼 소우주가 깃들어있는 게 아닐까. 저마다의 진실들이 수챗구멍의 머리칼처럼 미친 듯이 엉켜있는 형상, 그거야말로 복잡오묘한 만다라이며 눈부시게 다이나믹한 소우주인지도. 며칠 전에 스윙 동호회 '6개월 이후 사람들' 게시판에 처음으로 글을 남겼다. 동호회에서 춤도 배웠지만 인간과 사회도 함께 배운 것 같다고 적었고, 그 세 가지 모두를 동시에 가르쳐준 동호회에 빚진 게 무척 많다고도 적었다. 진심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나만의 진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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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동해가 아니어도 좋았다.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미지의 소도시라면 굳이 동해가 아니라도 별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청량리발 동해행 무궁화호 열차표를 끊고 나자 어쩐지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반드시 동해 여야만 할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비 개인 다음 날이었으나 하늘은 여전히 우중충했고 보도블럭이 꺼진 자리마다 물웅덩이가 복병처럼 숨어있었다. 배낭을 지고 카메라를 목에 맨 나는 누가 보아도 주5일제의 특혜를 얻은 여행객의 차림이었겠지만 나는 어쩐지 나 자신이 유배지로 향하는 유생이나 근신할 곳을 찾아 유랑하는 난민처럼 여겨져서 설레기보담은 그저 담담하고 약간은 헛헛한 기분이었다.

미놀타와 몇 판 남지 않은 일회용 카메라 두개, 샴푸, 린스, 로션 등속을 챙기고 기차간에서 읽을 책으로 이문구의 <관촌수필>과 프리조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을 넣었다. (후자는 아무래도 동해 여행보다는 정독 도서관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였으나 읽던 책이라서 미련을 못 버리고 챙겨 넣었다. 여행지에서 그다지 많은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굳이 들고 간 까닭은 시험 전날 동아전과를 베고 자면 올백 맞는다는 어린 시절의 미신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일까) 그리고 욕심 많게도 CD를 여섯 장이나 넣었다. 버리려고 떠난 여행인데 등짐만 한가득 이어서 여간 볼썽사나운 꼴이 아니었다.  

저녁 여덟 시 쯤에 동해역에 내렸더니 추암 바닷가 가는 버스가 벌써 끊긴 모양이었다. 택시 타고 십분 정도 가니 바닷가였다. 나는 방 하나에 2만 5천 원에다가 대전엑스포 기념 자수가 박힌 초록색 수건을 서비스로 제공해주는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민박집 바깥쪽은 구멍가게랑 연결되어 있었는데, 으슥한 가게 안에 골동품 가구처럼 박혀있던 주인 할머니가 날더러 혼자 왔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였더니 혀를 끌끌 차셨다. 측은해서 그러시는지 한심해서 그러시는지 종시 짐작할 수 없었다. 내가 묵은 곳은 말하자면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 같은 방이었다. 이 작고 괴괴한 낯선 방이야말로 나의 본질에 다름없는 것 같다는 기묘한 기분 때문에 나는 몹시 뭉클했다. (너무 길어져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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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 mir bist du schon- 당신은 아름다워요. 스윙빠에서 틀어주는 음악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곡을 꼽으라면 영화 스윙키즈에 나왔던 이 노래를 꼽겠다. 곡이 중반부에 접어들었을 때 박자가 느려지기 시작하면 우리들의 춤동작은 일제히 슬로 모션으로 바뀐다. 이 때가 장관이다. 그 순간 우리는 마치 바람 부는 방향으로 몸을 누이는 갈대들 같고, 추위를 피해 대열을 이루어 남쪽으로 날아가는 철새 무리 같다. 음악이 되었든 자연의 섭리가 되었든 절대적인 어떤 것에 일제히 조응하는 생명체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숨막히는 풍경이다.

 

늘어난 박자에 맞추어 느릿느릿 몸을 움직이는 동안 누군가는 땀을 닦고 누군가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때로는 손을 맞잡은 상대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음악이 장난을 걸어서 웃음이 나고, 무언가에 심취하여 땀 흘리는 서로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웃음이 난다. 아니면 느려진 음악에 스텝을 헛밟아서 민망한 웃음이 새어나오거나. 어떤 연유로든- 잠깐의 여유를 부리며 웃을 수 있는 그 때가 나는 참으로 좋다. Bei mir bist du schon에 맞추어 춤을 출 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다.

 

그다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고 심지어는 말 한번 주고 받은 적이 없는데도, 바에서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치는 동호회 사람들에게는 일방적인 친근감이 생기는 것 같다. 상대를 속속들이 알지 못해도 무한한 호감과 신뢰를 가지고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아마도 춤과 음악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견고하게 만드는 매개가 되어주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스윙에 심취하는 까닭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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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언니랑 음악회에 갔었다. 포르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의 밤이라는, 여간 해선 외우기 힘든 긴 제목의 음악회였다. 그날 무대에 오른 바이올린 연주자는 예순 살의 정형외과 전문의였고 포르테 피아노를 연주했던 할머니는 아무개 대학의 음대 교수였다. 연주회 팜플렛에는 남매가 한 무대에서 연주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씌어있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무대에 서 있는 내내 경직된 상태였다. 그는 연주를 쉬는 동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에 난 땀을 닦곤 했다. 아마도 그는 무대에 선 것이 처음이었을 테고, 어쩌면 그것이 그의 평생의 소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날 바이올린 연주자는 평생의 소원 중 하나를 성취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누구나 생의 전복을 꿈꾸지만 많은 이들이 그저 단편적이고 일면적인 삶을 산다. 그래서 나는 잘 나가는 대기업 간부가 별안간 일식 요리사가 되었다거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평범한 회사원이 직장을 작파한 뒤 가족을 이끌고 세계 여행을 떠났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스레 오금이 저린다. 뭐랄까, 우리네 삶의 다원성과 입체성에 대한 어떤 희망적인 가능성을 그들을 통해 엿보게 된다고 해야 할까.    

그날 무대에서 정열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노년의 정형외과 전문의는- 일식요리사가 된 대기업 간부와 세계여행을 떠난 회사원 못지않게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잠시 마음 깊은 곳에서 뭉클한 경외감마저 일었던 것 같다.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우렁찬 갈채가 터져 나왔다. 나도 손바닥이 아프도록 손뼉을 쳤다. 그것은 바이올린 연주자의 인생을 향한 박수였다. Bravo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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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날짜가 자꾸만 미루어져 요 근래 몹시 짜증이 났었다. 후임 약사를 구할지 말지 애매한 지경이 되어버린 약국의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나 나 또한 나름의 개인 일정을 침해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약국을 그만두고 딱히 뚜렷한 계획이 잡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나의 휴가가 사악한 외부 세력의 공작에 의해 느닷없이 박살 난 것 같아 억울하기조차 하였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국장님과 퇴직 문제로 의견을 나눌 때마다 놀랍게도 내 입에서는 억울한 속사정과는 전혀 관계없는 말들이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아, 그건 조금, 저는, 음, 그렇기도 하지만... 예... 어쩔 수 없지요, 뭐... 끄덕끄덕. 퇴직 날짜가 미루어질 때마다 나의 졸렬한 협상 능력이 얼마나 저주스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왜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할까 하는 자책감에서부터 혹시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나를 만만하게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억지로 근무를 하는 동안 무수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 머릿속에서 이미 국장님은 제 잇속만 챙기는데 급급한 자본가의 전형으로 낙인 찍혀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헤매고 계신지 오래였다.

그런데 약국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 국장님이 나를 부르더니 원래 금액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월급을 주시면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또 예의 그 졸렬한 협상 능력을 발휘하여- 아, 이건 조금, 저는, 음, 그렇기도 하지만... 예... 어쩔 수 없지요, 뭐 끄덕끄덕 하고는 흰 봉투를 넙죽 받아들었는데, 그 순간 국장님의 머리 뒤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나 볼 수 있는 광휘의 오로라가 잠시 번뜩였던 것 같기도 하고.

격려와 감사 말씀이 오가고 난 후 국장님과 마지막으로 뜻깊은 악수를 나누었다. 골고다 언덕을 헤매던 국장님은 어느새 이기적인 속물 자본가의 누명을 벗고 사회에 귀감이 되는 약업계의 원로 유지로 거듭나 계셨다. 꼭 두둑한 흰 봉투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만(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그동안 내가 속이 너무 좁았구나 싶어 멋쩍었다. 졸렬한 건 협상 능력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던 걸까. 흰 봉투가 인간의 정신을 이렇게나 고양시키다니 웃어야 할 일인지 울어야 할 일인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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