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언니랑 음악회에 갔었다. 포르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의 밤이라는, 여간 해선 외우기 힘든 긴 제목의 음악회였다. 그날 무대에 오른 바이올린 연주자는 예순 살의 정형외과 전문의였고 포르테 피아노를 연주했던 할머니는 아무개 대학의 음대 교수였다. 연주회 팜플렛에는 남매가 한 무대에서 연주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씌어있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무대에 서 있는 내내 경직된 상태였다. 그는 연주를 쉬는 동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에 난 땀을 닦곤 했다. 아마도 그는 무대에 선 것이 처음이었을 테고, 어쩌면 그것이 그의 평생의 소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날 바이올린 연주자는 평생의 소원 중 하나를 성취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누구나 생의 전복을 꿈꾸지만 많은 이들이 그저 단편적이고 일면적인 삶을 산다. 그래서 나는 잘 나가는 대기업 간부가 별안간 일식 요리사가 되었다거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평범한 회사원이 직장을 작파한 뒤 가족을 이끌고 세계 여행을 떠났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스레 오금이 저린다. 뭐랄까, 우리네 삶의 다원성과 입체성에 대한 어떤 희망적인 가능성을 그들을 통해 엿보게 된다고 해야 할까.    

그날 무대에서 정열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노년의 정형외과 전문의는- 일식요리사가 된 대기업 간부와 세계여행을 떠난 회사원 못지않게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잠시 마음 깊은 곳에서 뭉클한 경외감마저 일었던 것 같다.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우렁찬 갈채가 터져 나왔다. 나도 손바닥이 아프도록 손뼉을 쳤다. 그것은 바이올린 연주자의 인생을 향한 박수였다. Bravo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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