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주제는 '근대를 파헤치기'다.
여기서 근대는 단순히 역사적인 시간 개념만은 아니다.
계몽기 지식인들의 열렬한 찬사와 숭배의 대상이었고, 지금도 그러한, 아니 오히려 일상의 곳곳에 뿌리박힌 근대의 신화를 파헤쳐 그것을 해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근대성의 확보만이 살길이요. 문명의 길이요. 유토피아의 도래라고 곳곳에서 공공연하게 아니면 은밀하게 외치고 속삭이는 구속에서 이제는 벗어나보자고 얘기한다.

오직 출발지와 목적지만이 존재하는 기차를 닮은, 아니 기차와 함께 온 근대적 시간 개념
그 단선적인 시간개념과 목적지를 위해 산을 뚫고 강물을 통과하는 기차의 공간의 파괴는 오로지 생존경쟁에서의 우승열패라는 신화를 낳는다.
제국주의는 닮아야 할 모델이며, 식민지 조선은 부끄러운 존재가 된다.
근대가 낳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가른다.
지금은 아니라고 말할까?
이론으로서 제국주의는 더 이상 도덕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도 일상의 곳곳에 숨어있는 승자에 대한 찬미와 열망, 경쟁승리에 대한 예찬을 보라.
근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근대에 들면 더 이상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아니다.
만물의 영장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한다.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은 인간이다.(이 오만방자한 인간의 신화에 대해 이미 자연은 응분의 대응을 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을 가르고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근대의 공간에 들어서게 되면 무엇도 그곳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성적욕망도 연애도...
근대성이 낳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위생학이라는 명분으로 인간의 몸 마저도 국가의 통제하에 두며,
인간의 존귀함의 이유를 뇌에 두면서 이성중심주의의 사고로 우리를 이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너무나도 흔한 대답을 상기하게 한다.
뇌의 절대화는 아마도 신체의 다른 모든 부분을 소외시키고 그것의 활동인 노동도 소외시키는 거겟지.
여전히 이 사회에서 노동이란 단어가 천시받고 있는걸 보면 뭐 틀린 말은 아닌듯하다.

이 책의 근대에 대한 해부는 통쾌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미심쩍다.
왜냐고? 나는 여전히 근대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내용과 말들을 여전히 논리로 맞는가 아닌가로 판단하는 습성에서 여전히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으로 허준에 대한 얘기는 뜬금없다.
고미숙씨 당신 말이 틀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정말 그렇다고 맞장구쳐주기도 참 힘들다.
온몸으로 소통하고 생각하는 탈근대적인 사고방식이 없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근대에서 근대적 삶에서 벗어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저자는 모든 것의 경계를 지우고 모든 경계의 사이공간을 복구하는 것.
그리고 그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
공동체적 삶의 복원,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소통의 복원을 얘기하는듯하다.
책의 그 방대한 역사적 사례와 논증들을 생각한다면 결론은 너무 평범한 게 아닐까?
하지만 원래 진리란 평범한게다.
누구나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지 않는가?
한마디로 근대를 벗어나자고 얘기하는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삶의 어떤 부분을 일일이 규정하고 있는가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그 속에 퐁당 빠져 있으니 말이다.
하늘이 안보이는 숲 한가운데 있으면서 그 숲 이외의 것을 하늘을 보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저자 고미숙씨가 얘기하는건 바로 그 숲에서 바로 그 하늘을 보자는 것일게다.

아직도 숲에 파묻혀 있는 나에게는 길잡이 같은 책이 되었다.
다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 하늘을 볼 수 있을런지....
그리고 그 하늘을 보는게 맞는 것인지....

************ 읽는데 정말 오래 걸렸다. 가장 바쁜 시기에 이 책을 잡았다는 불행도 있었고, 하지만 무엇보다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는게 힘겨웠다. 이래 저래 고민도 많이 되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책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별점은 후하게 주자. 뭐.... 딱히 모든 걸 동의해야 좋은 책은 아니지 않은가? 나에게 공부를 좀 더 해야할 것 같다는 의욕을 불태우게 했고, 또 고민거리를 잔뜩 안겨줬으니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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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6-07-20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탈근대와 관련된 담론들을 엮어본 건데 저는 한편으로 이해하면서도 조금은 납득이 가지 않던 부분도 많았습니다. 마지막 부분의 연암과 다산을 비교할 때도 저는 연암의 경계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사고도 분명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다산의 '전투성'도 중요하다 봅니다. 자칫 지적 유희에 젖어드는 것은 아닌 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

바람돌이 2006-07-21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납득이 가지 않던 부분이 꽤 있었던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전체적인 논의가 결론적으로 어디로 흘러갈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미심쩍었다고나 할까요? 이게 까딱 잘못하면 탈정치화 내지는 도인의 경지로 가지 않을까 싶기도 했구요. 다만 그동안 이런 류의 책을 상당히 오랫동안 안봤던 저에겐 뭔가 고민거리를 던져줬다는게 제 나름대로의 의미였던거죠. 연암과 다산의 비교에서는 저는 딱 80년대적 감수성과 전투성이 다산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감수성과 전투성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시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발휘되는 방법, 공간 하여튼 뭐라 말하긴 좀 힘든데(아무래도 공부가 짧아서겠죠) 그런게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제기로 받아들였습니다.